아직 알지 못하는 기쁨,
미지의 영역 속에서
제자들은 단순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근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때
주님은 내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기쁨의 이유를
주님에게 찾으라 하셨다.
주님으로 기뻐할 수 있다면
나는 모든 순간에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겠다는 말씀 하신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에 대한
기한도, 의미도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곁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부재를 앞두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시고,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여자가 출산하게 되면 근심하게 되지만
아기를 낳으면
태어난 기쁨 때문에 더 이상 그 고통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요16:21)
여자가 출산하면 근심하지만
그 근심은 생명을 담보하고 있다.
고통, 산통은 보이지 않는 생명을 품고 있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이 시대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선언처럼 들린다.
지금 고통하고 근심하지만
이 시간을 주님의 뜻을 품고 있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가치나 생명을 품고 있어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가치 때문에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해주세요.
지금은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라고 묻는 대신
주님이 하신 일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도록
그저 손을 들어 찬양할 수밖에 없도록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보지 못해도 믿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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