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소명이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소명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예상은 했지만 코로나가
이 아이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준 것이다.
소명이의 두려움이
어떤 면에서는 감사했다.
두려움을 매개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었고
매번 이렇게 두려움을 통해
두려움보다 크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소명이와
기도하고 말씀읽고 다시 기도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평강을 찾고 잠들었다.
나는 잠이 깨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말씀 한 구절을 계속 되뇌었다.
“아버지는 너희를 친히 사랑하신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이유는
너희가 나를 사랑했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16:27)
말씀을 단순하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믿음을 이야기할 때
사도는 행함을 강조하고 있고
그 둘은 분리가 아니란 것을 전제한다.
다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을 사랑했고, 믿었다는 말이
성경에는 모두 완료 시제로 사용된다.
얼마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자들은 모두 떠나간다. 아니 도망한다.
믿었고 사랑했다는 말을 쓰기에 부족한 사람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주님이 이루신다.
주님의 뜻 이루어주세요.
부족하고 나약한 지금의 모습을
그저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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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묵상그림 #겨울에도주님이길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