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만 해도
아이들이 흰머리를 하나씩 뽑으면
용돈을 주기도 했는데,
얼마 사이에 용돈을 줄 수 없을 만큼
흰 머리가 덤성덤성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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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리 늙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벌써 삼 십 년 가까이 생각한 소원입니다.
십대와 이십대는 허무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루하루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허무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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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더하여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절망과 무능력,
그 시간이 쌓여 가며
사람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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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다시 이십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여전히 늙고 싶다는 소원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이를 면대 면으로 만나고픈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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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편에서는 생을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아서
고민의 흔적을 훌쩍 뛰어넘고 싶은
얄팍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너무 부끄럽지 않게 주님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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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기사를 보며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자신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서게 되면
나는 부끄러움에 낯뜨거워
얼굴은 들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에
유튜브를 주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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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바빠서 며칠 전부터
해야 할 일이 뒤엉키고 있는데
어지럽고 불편한 마음을
정돈하기 쉬운 방법 하나는
내 기준을 흔들어 놓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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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꼭 해야 하는 마음,
사람들과 아이들이 내가 이끄는 데로
동의해 주고, 따라와 줬으면 하는 마음,
여기까지, 오늘까지, 목표와 기준들..
어질러지고 수습되지 않는 상황들, 문제들,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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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기준들을 흔들어 주면,
내 계획과 결심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조금의 한숨을 쉬고
주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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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급격하게 생겨나는 흰머리를 보며
내 작은 기도가
시간이 흐르며 응답되어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간 속에 내가 고민하는 답들을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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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시간 속에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질문하게 되면
나는 전혀 다른 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여전히 늙고 싶다는 소원을 품고 있지만
나는 운동도 하고, 먼 숲을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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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내게 맡기신 하루,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람들,
주님이 맡기신 인생이기에
나는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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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흰머리 #갑상선기능저하증증상이래요
#유튜브 #준비중이긴한데 #마음의시간이필요해요
#생방송기도회도생각중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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