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그동안 수고했어.
같이 수고했지.
주님이 우리에게 선물같이 주신 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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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차를 타고 가다가
나눈 세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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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아내가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가족의 인생에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도 아내도 각자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내의 출발을 지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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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제 많이 자랐지만
엄마는 자녀에게 빈자리가 생기면
자책하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그 빈자리가 느끼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게 아내의 시간을 함께 하는 거라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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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과 미팅은 탄력적으로 조정하면 되겠는데
외국에 나가는 몇 개의 일정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외국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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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극적으로 빈자리를 채워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아내의 구체적인 하루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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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식사 하나에도
매 끼니를 준비하고, 식사하고 정리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또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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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결국 개학이 연기되었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학원도, 학교도 가지 않았던 시간 동안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챙겨주고
간혹 내 작업용 컴퓨터가 고장이 나기도 하고
사이마다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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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이새어 나왔습니다.
이 일만 하게 되면
낯설고 바빠도, 적응한다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과 작업은
내 손에서 자꾸만 멀어져 갔습니다.
할 일을 하려면 결국
잠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다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책상에 앉아야 했고
피로가 쌓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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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처럼 말씀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온유가 내 뒤로 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오~ 아빠가 음식도 하고, 설거지도 계속 하다보니
실력이 자꾸만 늘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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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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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데
너무 피곤하고 바빠 보여요.
이제 소명이와 하루에 한 번씩은 설거지를 번갈아 가며 도와줄게
그러면 아빠가 그만큼 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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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약속한 대로 설거지를 도왔습니다.
그게 무슨 큰 도움이라고,
정말 그 시간을 도와주는 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눈에 띄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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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준비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매번 달리 식사를 준비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외부 미팅이라도 있는 날에는
아침을 차려놓고,
급하게 외출할 채비와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면
출발시간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어서
“미안, 정말 미안한데. 아빠가 나갔다가
돌아와서 얘기하면 안 될까?”
당부사항들을 이야기하고 도망치듯 나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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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열무 비빔밥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며칠 연속으로 점심 메뉴로 열무 비빔밥을 내준 적이 있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온유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아빠, 너무 맛있는데..
미안하지만 나 구역질 날 것 같아.”
아. 미안함이 밀려 올라왔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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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을 하며
아이들이 차례로 아빠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전혀 느끼지도 못했다지만
나는 진심으로 화를 냈습니다.
“아빠도 지금 해야만 할 일이 있단 말야.
자꾸 부르지 말고,
할 말을 모아서 한꺼번에 물어보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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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스스로에게 놀랐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불러다가 안아주고,
이유를 설명하며 다독여주고
사랑한다 말해주었습니다.
아마도 화가 난 이유는 조바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구 쪼개어져 흩어지는 시간 속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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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 인생의 성공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성공은 반응과 순종입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힌 게 없어도
주님이 내게 맡기신 시간 속에
반응하고 순종하다가
마지막 날, 주님이 나를 안으시고
잘했다. 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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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아내대로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매일 한 시간이 넘는 길을 출근했습니다.
4개월, 우리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지막 퇴근길을 동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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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그동안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이 생각나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말에 웃으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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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는 조금 정돈된 아침이 될 것 같아.”
이 말에 아내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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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동안 수고했어.”
“같이수고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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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에게 선물같이 주신 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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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시간을 매일 만납니다.
낯설었던 시간을 힘껏 보내며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숨은 시간들, 수고로움.
너가 있어 내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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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기간 #4개월 #특별한경험
#주님허락하신 #감사한시간
#너가있어내가있구나 #수고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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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중에 #유튜브준비중 #이번주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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