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n Photo | 사랑은 여기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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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기 있으니

영이라고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분별하라.

분별의 시금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믿느냐이다.
내가 믿는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성육신 교리는
가장 핵심적인 진리이며
교회를 교회 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믿는 이들 중에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믿지 않는 이들이 어디에 있는가?

이는 요즘 뉴스를 보면서
꼬일 대로 꼬여 버린,
무척 회의적인
시선에서 던지는 내 질문이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사랑을 말한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궁금했던 문장들이 있다.
성령님이 아니면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지 못하는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할 수 있고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면서
예수님이 없는 것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은가?

동일하게
예수님이 이 땅에
육체로 오셨는가?
그렇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요한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대조해서
이야기한다.
진리의 영과 대칭점에
있는 것을
거짓의 영이라 말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진리에서 어그러지게
만드는 유혹이나 속임, 미혹이
그 반대편에 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사랑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주님의 사랑은
구원을 위한 화목 제물로
찢기고, 죽임 당함으로 증명되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신령한 것만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의 뉴스를 보고
한동안 마음이 어려웠다.
그러면서 답을 찾기 위해
말씀이신 주님께 계속 묻게 된다.
개인의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지금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