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헤프닝으로 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상대의 잘못과 실수를, 그 사람의 몫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감정 뿐 아니라,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인식과 기억
가장 객관적이라 여기는 시각적 정보까지도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그 주관적인 사실을 논쟁을 통해 설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성격상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여러 오해를 풀지 않고 지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아들이 내가 가진 이런 성격을 닮았다.
억울한데, 설명하지 않는 아이에게
계속해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다.
다행히 온유가 아이의 언어를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위로했다.
아픔과 갈등속에서 나는 기도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하나님이 내게 가장으로써의
권위를 주셨는데, 이 권위는 나 개인 뿐 아니라
가정의 죄와 문제와 아픔과 눈물과도 관련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별 일 아닌 일에도 주님을 찾게 된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죄 없으신 분이 내게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몸이 피곤하다.
커피를 준비했다가 나무맛이 나는 칡즙으로 대신한다.
늦은밤까지 인권위 회의를 마치고, 정리하고
다시 새벽에 믿사남 모임을,
두 어시간도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계속된 일정을
이어가려니, 몸 하나로 벅찬 것 처럼 느껴진다.
곧 있을 굿네이버스에서의 강의준비와 방송준비까지
오늘 밤에 있을 논문에 대한 논의와 작업들..
그때마다, 내가 책임지려 하는 일상을
주님께 올려드린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었다고 생각할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