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병든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몇 년간 여러 모양으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필요가 있으면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어릴적부터 몸이 불편해서 노모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생활이 힘이 듭니다.
오늘 아이의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리며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도 몸이 좋지 않으신데
아이의 상태가 코로나를 경험하며
더욱 어려워 져서 몇 번이나
안타까운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전화로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며
함께 울며 기도했습니다.
아내와 이 아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훌쩍 차를 몰아서 아이가 있는 전라도로 향했습니다.
사실 지금 제게는 돈을 주고서라도 사야 하는 것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주까지 제출해야 하는 본심 논문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혼자서 상상을 했습니다.
아이가 혹시라도 내일 혹은 모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한 사람의 영혼은
학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주님이 오늘을, 지금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ㅇㅇ에게 마음 담아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받아온 편지와 정성을
그 아이가 잠시 머무르고 있는 집의 문앞에 두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래 걸렸습니다.
왕복 9시간 정도 걸린 긴 여정을 비효율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게 행하신 모든 일이
비효율에 가까우니까요.
낯선 그 곳에서 아내와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아플적에, 혼자라고 느낄 때, 무능력함을 느낄 때
누군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무능력하다고 생각한 한 사람이 주님안에서
얼마나 존귀한지를 알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