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메일의 서명란에
이 말씀을 영문으로 적어 두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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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내 소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구절의 앞뒤를 살피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벼랑 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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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떠나서 내가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을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나를 무덤에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주님의 거룩한 자를 죽음의 세계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1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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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명은 죽음의 세력에 삼킴을 당하려
하고 있으며 죽음의 세계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을 노래하지만
그의 현실은 빛없는 어두움으로 가득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막막한 현실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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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노래는 예수님께 향한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시편을
인용한다. (행2:25-28)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완전한 어두움인
음부로 내모셨다. 하나님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려지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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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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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늠할 수 있을까?
지난 금요일에 홍성원 목사님이 아빠의 마음을
아픈 아들과의 시간을 통해 이야기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 분노했지만
자신의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아들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없는 자신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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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부모라고 하지만, 우리의 한계 앞에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옥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를 말한다.
그 구덩이는 내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건짐을 받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벼랑 끝은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
주님이 모든 값을 치루셨기에
오늘의 위기 앞에 비록 흔들릴 수 있지만
그곳은 항상 마지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