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 순서라 오전부터 오후까지
다른 이들의 발표를 경청했다.
여러 내용들 속에서 질문이 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어서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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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발을 딪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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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보다 더 회의적인 질문이다.
주님의 세계로 걸어가는
큰 방향에 서게 되면
의미 없어도 아무 문제 없다.
걸음이 크지 않아도
때로는 멈춰있어도 속도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호가 아무리 멋져도
멋진 말을 선언해도
마치 동어반복 명제를 말하는 것처럼
말은 참이지만 우리의 걸음이
그 방향과 무관하다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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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생각해 보니
논문 주제를 반 고흐로 삼은 것은
여러모로 감사한 일이다.
논문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걸음을 볼 수 있어서.
그를 향한 여러 비난과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그가 걸었던 걸음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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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고
부르짖었더니. 영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생겨나는
놀라운 일들을 적었다. (시18:6-17)
사실 반 고흐의 편지에도 하나님을 향한
여러 믿음의 상상력이 적혀 있었다.
단발이 아닌, 그의 생애를 던진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은
믿지 않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주님께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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