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키 크는 꿈이라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꿈이지만 심장이 내려앉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몸이 느끼는 두려움을
짐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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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용기 혹은 인내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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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쯤, 운영하던 홈페이지가
예수님보다 더 소중해지는 것 같아서
서버에서 지워버린 적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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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하고, 용기도 냈지만
막상 서버에서 자료를 지우는
선택을 한참 망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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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한 두 가지 상황만 떠올려봐도
내가 가진 한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은 얼마나 많을까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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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로써
더욱 가난하게 되는 것도
어려울 듯싶습니다.
부요한 자로써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
내어놓거나 내려놓은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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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뛰어내리는 공포만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인데
가장 부요하신 이로써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오신 사건을,
그 간극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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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드셨나요?”
사람들에 의해서도, 나 스스로도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고 손가락질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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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믿을 수 없는 그 사건이
믿어질 때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그 사건을
상상하게 될 때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은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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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서 영원한 깊이의
시간과 공간을 지나 밑바닥까지
내려오셨기에,
그 사랑이 우리의 가치를 재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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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하신 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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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풍경 #1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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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지않는사랑 #자신의전부를주신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