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하얀 벌판. 빽빽하게 서있는 나무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바람은 세차게 부는데 난 얇은 스웨터 하나만 달랑 입은 채
벌판에 홀로 서있다.
춥고 외롭다. 두렵고 슬프다.
“온기를 가진 누구라도 제발 내게 와줘요.”
소리쳐 보지만 아무도 없다.
나의 소리는 차가운 바람소리에 묻혀 사라져간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전화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며칠 전 약속이 있어 종각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퍼부었다.
우산 없는 많은 사람이 급하게 역 안으로 들어와 비를 피했다.
역 주변에서 노숙을 하던 아저씨들도 비를 피해 역 안으로 들어왔다.
허무한 시선을 가진 아저씨들은 어슬렁어슬렁 자신의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중 눈이 퉁퉁 붓고, 아랫니가 빠진 한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중얼중얼하다, 이 말을 토해내듯 내뱉으셨다.
“나, 이제 죽으려구.”
“죽긴 왜 죽어요, 아저씨.”
옆에서는 대여섯 살 되어보이는 꼬마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 꼬마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들도 저만할 테지.”
그리곤 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하신다.
아저씨 손에는 사탕과 과자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뭐라도 대접해야하는데 사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거라도 줄까?“
“아니요, 아니요. 괜찮아요.”
“아저씨, 술 그만 드시고 밥 챙겨드세요.”
함께 기다리던 언니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며 바닥에 머리가 닿을 만큼 고개를 숙여 인사하신다.
“아저씨, 푹 쉬세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렇게 아저씨와 헤어졌다.
꿈 속, 벌판에 홀로 서있던 그 외로움.
아저씨의 외로움에 비할 수 있을까.
겨울이다. 담아놓았던 온기를 내뿜어줄 때다.
겨울의 예쁜 눈(雪)처럼 주위의 많은 눈(目)들도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백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