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슬핏 들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온 몸에 물세례가 퍼부어졌다.
창문이 퍽. 소리를 내며 들썩거릴 만큼의 강한 비바람이었다.
순식간에 한 쪽바닥에 물이 고일정도로 물이 들이닥치는터라
난 창문을 부여잡고 애쓰는 방법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칠흑같은 밤에 번쩍이는 번개빛에만 의지해서 상황을 살펴야 했다.
물에 폭삭 젖은 나처럼 날짐승도 쉴 곳을 찾지 못해
창문앞에서 푸덕거리며 날개짓을 하고 있다.
잠금걸쇠가 부서져 버린 창문을 겨우 고정시킨 후에야
젖은 시트며, 옷가지들을 펴말릴 수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한 무서운 기세.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어린양이 아니라 유다의 사자로써 오실 그 분의 모습을 폭풍 속에 상상했다.
아침이 되어 숙소를 나서는데
물바다가 된 마을 풍경이 기가막혔다.
상수도 시설이 구비되지 못해서 하룻밤사이 내린 비로 마을이 엉망이 된 것이다.
어제 다니던 길이 비가 내려 생긴 물 웅덩이로 1시간 이상을 돌아가야 하거나
다른 마을에 들어갔다가 비가 내리면 땅이 마를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려야만 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 곳은 한 나라의 수도이지 않은가.
수도가 이런 상황인데, 외곽지대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홍수로 물이 가득할때면 정말로 마실물은 없을텐데,..
이 역설적인 진리가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