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야고보서 2: 14-26>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야고보 2:14절의 이 말씀은
종교개혁때 이신칭의를 강조하며
루터로 부터 부스러기 성경으로 취급받았던 이유였다.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이 다른 어떤 말보다 부각된 것은
종교개혁 시대의 로마카톨릭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는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물은 이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행함은 바울이 흔히 말하는 행위와는 다른 말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함이란 것은
하나님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인간의 구원에 이르는 노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에 따르는 열매로써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서 죽은 것이다. 라고 한다.
언젠가 인터넷 예배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그 자체로 죽은 이 것은 누가 죽인 것도 아니요.
원래부터 죽은 것이란 거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약 2:26)
우리가 살아 있는 요소로
영혼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아 있지만 육체만 살았으면
그것이 산 것이 아닌 것처럼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
곧 믿음이 행함을 유발시킨다면
행함이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고 여겨야 한다.
행함은 내가 믿는 믿음을 산 믿음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반드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열매이며 증거이다.
부활절의 기쁨이 어떠했나?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 1:29)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면
내가 주님의 고난에 참여했느냐도 생각해 볼 일 이다.
고난이 없으면 부활의 기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