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 3의 십일조 (신26:12-19)
곧 매 3년마다 드리는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말씀하셨다.
이는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는 단순한 긍휼이 아니라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의 당연한 의무이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구제하는 것은
내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며, 내가 긍휼이 넘쳐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은혜를 받았느냐에서 출발한다.
인생을 짧게만 보면, 나는 내가 유리한 모양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내 인생의 키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무언가를 말씀하시면
그 분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긴 인생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내 안에서 수많은 싸움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과 사단이 주는 마음.
이 격한 싸움 때문에라도 나는 기도해야 한다.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이다. (신26:13)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 교회만 드리는 것을 거룩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이원론을 깨뜨려야 한다.
사람에게 대하는 것을 하나님은 판단하신다.
내가 얼마나 거룩한 자인가
내가 얼마나 신실한 자인가는
나와 함께 거하는 사람이 나를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판단하실 지 모른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내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예배하느냐이다.
잠시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보이는 것은 조금 외식하면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다.
주신 말씀에 순종했을 때
나는 하나님께 복을 요청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분의 계명을 순종했을 때
구할 수 있는 권리다.(신26:15)
복을 얻기 위해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백성이기에 계명을 순종하고, 그 분의 백성이기에 복을 구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3: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