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조건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면
더 좋은 퀄리티의 예배가 나올 것 같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콘이 나오며
추운 겨울에는 따스한 히터가 나오고
앉아 있기에 피곤하지 않은 의자와…
더 좋은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올려드리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이르면
에발 산에 하나님께 드릴 제단을 만들 되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만들라고 명하신다. (신27:5)
하나님께 드릴 제단이라면
잘 다듬어 보기 좋은 모양이면 좋지 않을까?
당시 철기 문명을 지니고 있었던 블레셋에 부탁해서라도
그렇게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제단은 아름답고 멋진 곳이 아니다.
그 곳에는 짐승의 피가 가득한 곳이다.
그 땅은 저주가 울려 퍼져야 하는 에발산처럼
누군가의 죄값을 해결해야만 하는 처절한 곳이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배를 드리면서 불평할 때마다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무릎 꿇고 기도한 곳에 지금의 교회가 생겨났다.
사실 지금은 너무 흔한 십자가라 마음에 아무 감흥도 없지만
분명 이 곳은 저주가 가득했던 땅이었다.
투박하게 무릎 꿇고 기도했던 선배들로 생겨난 축복이지만
축복을 축복인 줄 모르고 살고 있는 나를 본다.
투박한 싸움, 거친 예배, 숨어 다니던 옛날 가정 예배들에서
로마의 국교화가 되며 그런 예배들은 다 거절당했다.
대신 그 자리에 고상하고 정돈된 예배가 자리하게 되었다.
마치 철연장으로 잘 다듬어 아름다운 제단..
하나님이 아니라 정돈된 제단을 바라보며 환희할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