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그 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대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내가 하는 작업들 역시 ‘너도 해봐라’하는 메시지가 있다.
내가 사진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 손잡아주는 역할을 했다면
또 다른 어떤 이도 똑같이 그 모습들을 보고 따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을 보고
‘나도 친구가 되었어요.’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그거 별로 어렵지 않네.’하는 것들을 말해주고 싶었다.
또 하나의 메시지는 내가 찍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찍은 사진이라면,
그 사진이 별거 아닐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로와 힘과 격려를 얻기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사진을 잘 찍지 못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위로를 얻는다.
나는 정말 아파하는 사람을 찍을 때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내 카메라 렌즈에서 치료의 광선이 나와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언젠가 하나님께 ‘진정 구제가 무엇입니까?’ 질문하며 고민하던 때에,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사건을 묵상하게 되었다.
그 사건의 현장은 미문, 말 그대로 Beautiful Gate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아름다운 문 앞에 매우 누추한 풍경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구걸하는 모습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향해 자신들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그러자 그 누추한 풍경이 성령이 거하시는 아름다운 성전이 되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일도 감히 그런 일이기를 꿈꾸며 기도한다.
내게 무슨 능력이나 권세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믿고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기도해주고 떠난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저 순종하고 떠난다.
나는 그저 씨를 뿌리며 다니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이 거두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 사진을 통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예배요, 또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언제까지 사진을 찍을지 모르지만 이 모든 일이 내게는 삶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이기를 기도한다.
작년 겨울, T국을 다녀왔다.
나는 그곳에서 현지 사역자 H에게 사진을 가르쳤다.
내가 만난 H는 15년 넘게 승려로 살았던 사람이다.
H의 고향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10시간 넘게
깎아지른 절벽 길을 달려야지만 만날 수 있는 외딴 곳이었다.
그는 그 곳에 우물을 파주러 온 서양인들이 불러준 찬양을 듣고 난 후,
꿈에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회심한 사람이다.
내가 H에게 사진을 가르칠 때 반복하며 말한 것이 있다.
‘사진기가 치료의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사진 찍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치유해주시기를,
그리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기도하세요.’
몇 달이 지나 선교사님으로부터 H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H가 내가 가르쳐 준데로 정말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픈 이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으며 기도하고,
찍은 사진을 책상에 붙여 두고는 기도한다고 말이다.
그 얘기를 듣는데 참지 않았으면 눈물이 주룩하고 흘러내렸을지 모른다.
H가 있는 지역은 남북한을 다 합친 크기보다도 넓다.
하지만 H같이 예수님을 믿는 현지인은 200여 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작은 자를 통해 아버지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기도하며 기대하게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지난날을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