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가 할 몫은 어디까지인가?
중학교 때,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한다고
온 길거리를 쏘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과연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지쳐만 갔고
나는 밑을 알 수 없는 구덩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성경은 내게?끝없는 숙제와 같았다.
한 예로?예수님은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가장 작은 자는 누구이며,
그런 사람은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마치 온 길거리의 쓰레기만큼이나 많은데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나는 순종하는 것이 두려웠다.
시작했다가 중간에 발을 떼는 것보다는
아애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그런데, 숲에 잘려 나간 나무를 보며, 살아가며 알게 되었다.
완전히 깨끗한 절단면이란 것은 없다.
나는 내가 사진을 찍으며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진을 찍는지,
기록의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지,
고민하는 한 달 간 사진 한 장을 못 찍을 만큼 심각해졌다.
하지만 한 달이 되던 날,
집 근처 흐르는 개천을 사진으로 찍은 후
마법의 봉인이 풀린 것처럼 다시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어떤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답 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라는 것을.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문제 있는 인생이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없는 인생이 문제이다.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내 안에는 주님을 향한 순수한 열망뿐 아니라
수많은 욕망과 절망,?삶의 질척거림이 한데?얽혀 있다.
인생에 깨끗한 절단면이란 것은 없다.
완전히 깨끗한 사람도 없고,
완전히 절망인 사람도 없다.
그래서 완전한 기대도, 완전한 정죄도 있어서는 안된다.
오직 주님만이 완전하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