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나의 첫 변화는 쉼이었다.
지독한 일 중독자였던 때문에
내가 쉴 수 있는 명분, 혹은?주님의 말씀이 필요했다.
안식은 주님의 명령이다.
그것은 쉼이 재생산을 위한 휴식이라는
실용적인 관점을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은 영혼의 날인 동시에 육체의 날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헤셸은 <안식>에서
성경에서 ‘거룩함’이란 뜻을 지난 ‘카도쉬’라는 단어를 가지고
안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 최초의 거룩한 대상은
창세기에서 창조 이야기가 끝나는 대목에서 처음 발견된다.
바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혜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공간이 없는 시간을 소유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없는 공간은 소유할 수 없다.
사람은 공간을 넘어서지만, 시간은 사람을 넘어선다.
시간이 창조의 과정이라면, 공간의 사물들은 창조의 결과물 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진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안식일을 지켜야겠구나.’
율법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주님의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시간 속의 거룩함을 생각하다 보면
마치 이 하루의 전체가 빛으로 둘러싸인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직선운동으로의 우선순위로써 주님과의 만남 이후,
별개의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운동으로 주님은 모든 일의 중심에 서로 이어져 맞닿아 계신다.
마치 모빌에서 많은?이음새들이 그 중심축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노래하는 풍경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