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데까지는 내 몫이고,
내 말에 동의하거나
긍정 또는 부정하는 것은 상대의 책임입니다.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년 내 말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겔3:6-7)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던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겔3:11)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3:17)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
말을 던지는 것으로
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말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수많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말들 앞에
얼마나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릅니다.
임원을 맡고, 주요 직분을 거쳤지만,
나는 아는 척 긍정하지만,
알지 못하는 수만 가지들 때문에
답답했고 불안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예수님을 믿게 될 것에 대해 두려웠습니다.
내가 만난 목회자들이
조금만 더 친절하게 전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전하려 애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자신을 낮추신 것처럼..
[노래하는 풍경 #15]
#낮고낮은우리의수준까지
#낮아지신주님의겸손
#아버지의마음을전할뿐아니라
#이해할수있는언어
#성육신과주님의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