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보다 나은 인류의 변화의 증거를 소망한다고 해서,
미래에 대해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기독교는 낭만적이 아니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어떤 형식의 낙관적 휴머니즘과도 분리되어 있는 극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주의와는 다르다.
허무주의는 정확하게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자신의 질병에 대해
적합한 치유책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적절하게 대처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치유책을 가지고 있고,
…
낭만주의는 죽었다.
만일 반정립(즉 A는 A이고, A는 비-A가 아니다. )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기회이다.
이미 사람들은 복음의 절반은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인간은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 중에서 최대의 반정립은
그 분의 부존재(무신론과 같은)와 대립하여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이다.
그 분은 실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프란시스 쉐퍼 <존재하시는 하나님 중>
쉽게 풀어달라는 분들이 계셔서
조금이라도 설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낙관적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긍정적인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연인과 가정은
낭만적이거나 목가적이지만
우리 실제 삶에서 만나는 그 풍경은 그렇지도 못합니다.
그런면에서 그런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적이지는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낭만주의는 한 세기 동안 엄청나게 정치, 경제, 사회에서의 변화를 통해
인간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긍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것처럼 그것은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리면
현실도피적이 되거나, 회의론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현실적이긴 하지만 허무주의와 다른 것은
기독교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서 말한 반정립 정의는
헤겔 이후 다원주의적인 물결로 인해
수많은 영역에서 절대적 존재는 결여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에 대해 쉐퍼는 절망선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 부분은 책을 살펴야 할 것 같네요.
쉐퍼가 주장하는 것은 모든 무신론에 대립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해는 그 시대 상황을 조금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