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지만
우리 마음을 잘 살펴보면
추가 이익은 주님의 은혜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원금은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추가 이익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원금에 손상을 입으면 우리는 심각하게 경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 것인 게 있었을까요?
주님의 은혜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할 때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네가 날 때에 탯줄을 자르지도 않았고,
돌보거나 불쌍히 여긴 자도 없었다.
들에 버려졌으며 피투성이로 발짓하는 것을 보고
나는 너에게 “살아 있으라”라고 말하며
너를 돌보았다.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너에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다.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발랐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와 모시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여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다..”? (겔16:4-14)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어떻게 범죄하고 반역했는지를
살피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버려진 피투성이를?
당신의 사랑으로 살리셨습니다.
그가 나를 살피시며 ‘살아 있으라.’
말씀하셨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풍경?#31]
p.s 노숙을 하던?두한이와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 가장 많이 배운 건
‘밑바닥 인생은 두려운 게 없다’는 것입니다.
두한이에게 두려운 것이 왜 없을까요?
호랑이와 사자를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그에게 통장 잔고나 무엇을 시도하는 것 따위의 두려움은 없는 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왕에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게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잃을 게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많아집니다.
그 두려움을 살피면,
아직 내가 갖지 못한 수익들은 주님이 주신 은혜이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유, 무형의 것들은 내 것이라,
내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얄팍함이 작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원금이 처음부터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요..
두한형님은 잘 계실까요…?
넵, 당진에 있는 공동체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