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동안 헉헉대며 많은 짐을 날랐다.
빌라 오층높이에 살고 있어서
용달로 짐을 나르시는 분도, 함께 돕는 나도 다리가 후덜거렸다.
그냥 걸어서 올라가는것도 힘들때가 있는데
스무박스 이상을 날랐더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육체노동의 힘겨움을 연말마다 느끼게 된다.
하지만 캘린더가 잘 나왔다.
박스를 다 나르고 처음 열어본 순간,
지지대와 Band와 여러 구성품들이 세련미가 있었고
원했던 감성까지 담았다.
지지대의 두꺼운 질감위에 박이 얹혀진 느낌도 좋았고
펜에 새겨진 인쇄도 만족할만했다.
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오늘 약속이?이렇게 저렇게 변경되면서
후배가 아이를 데리고 방문했다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고, 어른들은 뜻하지 않게
종일?함께?일하게 되었다.
감사한것은,
일하다 묵상한 것을 나누고
일하다 묵상한 것을 가지고 또 기도했다.
일하던중에 러셀실버증후군으로 아픈 찬영이와
영상통화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연출하신 뜻밖의 시간들도 보내게 되었다.
함께 동역하는 후배에게서 메일이 왔다.
미안한 마음이 나를 흔든다.
하지만 웃으며 격려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열등감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열등감이랄것도 없을만큼
내가 가진 특별함을 찾을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끔 잊을때도 많지만
두려움은 내게 두 가지의 생각을 던져준다.
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데도 쓸데 없는 나,
또 하나는 자격없는 나이기에 주님, 나를 사용해주세요.
그래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으며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귀가하는 버스안에서
아주 작은 일을 하고 있을때
창문에 기대어 눈물을 쏟았다.
나도 할 수 있는게 있네요.
내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미안함이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으로 위로할 수 없는 이유는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자.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기도하자라는 말은
무한한 우주로 뻗어나가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나는 십오년전에 이렇게 기도했다.
가치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가치있는 일들을 해내고 싶습니다.
가치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나는 그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혼자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주님, 지혜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