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년 연초가 되면
복지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연속된 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머릿속은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합니다.
복지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연속된 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머릿속은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합니다.
과연 내가 준비한 말씀이 정말 내 입술로 음성이 되어 나올 것인가?
나는 아직도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유약한 사람입니다.
청년 시절, 임원으로 섬길 때
예배를 마치면 나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광고를 했습니다.
광고를 하기 위해, 나는 주보에 빡빡하게 문장을 적어 놓았습니다.
문장의 마침을 ‘했습니다.’라고 해야 할까? ‘했어요.’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그것이 정말 고민이었습니다.
그냥 광고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가끔 농담도 준비했는데, 이런 농담까지도 주보에 완성된 문장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일이 내게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시간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광고를 적어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입니다.
더군다나 매 해마다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더욱 곤욕스럽기까지 한 시간입니다.
더욱 곤욕스럽기까지 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과연 내가 준비한 말씀이
정말 내 입술에서 세 시간 동안 흘러나올 것인가?
걱정하며 내게 묻지만, 결국 주님께 묻는 질문입니다.
“주님, 여전히 유약한 사람이지만
말씀 전하는 일에 나는 ‘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드린 주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내 기질과 성격과 상관없이
말씀을 전하는 일에 거절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말씀 전하는 일을 모두 마치고
나는 그제서야 안도하게 됩니다.
주님이 부끄러운 건 아닌데
나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몸에서 진이 다 빠지고 나면,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