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보며 많은 경우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아내도 내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오빠는 잘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립니다.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립니다.
밤에 깨어 나의 비천함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 몸을 떨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가 품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66:1-2)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66:1-2)
내가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알라딘의 램프의 거인이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주님의 보좌이며,
이 온 땅이 당신의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온유와 소명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면서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화하며
당신의 말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정상에서 뛰어놀 때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비천함과 주님 앞에 두려워 떨 때
나의 가난함과 심령에 통회한 마음을
두 손에 올려 주님께 나아갑니다.
다른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다만 가난한 마음 하나 주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리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따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5-16)
아멘. 주님 이 마음 그대로 주님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