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유년생활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그는 난민으로
생명의 위협을 피해가며 이곳 저곳을 떠다녀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이동이 수월해진 시대에도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셉은 당대 최고 권력자의 위협을 피해
막 태어난 아이와 출산으로 약해질만큼 약해진 아내를
데리고 한밤중에 급히 이집트로 떠나야 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생애조차 이렇게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한 후에
포악한 헤롯왕은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육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시간 같아 보입니다.
이 사건은 마치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과 같아 보입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모세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빛 하나 없는 어두운 시대, 이 시대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주님은 스스로 당신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그 피 아래 있는 당신의 백성을 속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집트로 떠나시고,
헤롯의 잔인한 살륙과
다시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들어갈 때마다
성경은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극적인 승리뿐 아니라
당사자들 조차 두려워 떠는 순간에도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아켈라오가 유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우리 역시 수많은 뉴스와 삶의 정황들을 듣고?두려워 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현실이 이상적이지 않다는 말과 같습니다.
현실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주인이 이 땅에 도래한 순간에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말이 더이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그 분이 일하시지 않는 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우리 인생속에
주님은 여전히 일하시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두려워 떠는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