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주희

선약이 있었는데 근처에 친구 주희가 있어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주희는 20년 된 오랜 친구입니다.

마흔이 넘었는데
여전히 아이같이 웃으며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순간순간 처지를 원망하거나
내일을 절망할 때가 많지만
다시 생각하면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웃습니다.
절망과 감사가 이렇게 가깝습니다.

나는 옛날부터 희망의 말을 
잘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책임지지 못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다만 주희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확신하기에
주님의 기쁘신 뜻이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음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초대를 받아 다음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연구위원으로 돕고 있는 꿈꾸는 장학재단과의
콜라보를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감격스런 간증과 
다음세대를 위한 전진기지로써의 역할을 생각했습니다.

건물의 층층을 구경하다가
4층 도서관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이민아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몇 번을 눈물 흘렸는데,
그 도서관은 아버지인 이어령 교수님이
다음학교에 기증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하심은 이렇게 놀랍습니다.
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면
주님을 믿겠다고 고백하셨던 어른이
딸이 결국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주님 계신 곳에서 딸을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늠하지 못합니다.
고난받고 박해받아서
더이상 자라지 못할 것 같은
작은 씨앗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매 맺게 됩니다.

언젠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지 함께 할 것 같지 않은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지만 둘 사이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잔칫날에 언제 그랬냐는듯
공동체는 한데 어울려서 웃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 모습이 동화 속 한 장면 같아서 한참을 멍하게 쳐다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냉랭하고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처럼 보여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그 마음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승우의 최근 소설 <사랑의 생애>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그걸 가질 수 없다는 걸 모르게 된다.
잘 알다가도 갑자기 모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모르게 된)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만 그걸 모른다.
모르니까, 모르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연인의 마음을 기자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아무리 필사적으로 매달려도 가져지지 않으니까
(가질 수 없으니까) 괴로워진다.
매달릴수록 더 괴로워진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확대해서, 마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따뜻한 말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을 하늘로 날게 만들거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기도
마음을 따뜻하거나 쿵쾅거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을 불태우거나
서운하게, 또는 분노하게 만듭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지는데
종종 자신의 경험을 통한 말의 해석으로
비롯됩니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쉽게 서운해하거나, 속상해합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의 사랑의 모든 행동은
주님의 명령으로 말미암습니다.
나는 결단합니다.
지금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붙들겠습니다.
그러니 주님, 내게 말씀해주세요.

책을 구입하려다

몇 가지 책을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다시 취소했습니다.
내 삶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많은 부분과 선택속에 주님의 일하심이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책들을 연구하고
이것 저것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
보다 더 주님안에서 깊이 은혜를 구해야 할지
네. 물론 둘 다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참 모호합니다.

어느쪽이나 치우치기 마련인 것이 사람이니..
주님 모든 선택과 삶 가운데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주님, 제게 보혈이 넘쳐나길 구하라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그 보혈은 은혜를 나눌때 그렇게 될거라 말씀하셨잖아요.
그 연장선상에 이 고민이 있습니다.

열정을 고민하며

오전에 한 청년을 상담했습니다.
어제 만난 목사님도, 오늘 만난 청년도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달랐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열정 가득했지만
결혼한 이후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두 가지로 답했습니다.
이 시간은 필요한 시간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일 결혼전의 그 열정 그대로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것이
본인의 만족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하게 바꾸어 가시겠지만
나의 만족을 위해 뛰어다니고 싶은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두 번째 답은 
또 다른 열정에 대한 부분입니다.
당신의 다른 시간.
아이를 돌보고,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외의 시간에
당신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나를 향한 답이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긴 시간동안
학교를 다니며
나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공부하고 과제했습니다.
그 시간동안 주님이 내게 가르치신 것들..

제 인생을 도와주세요.

오늘도 여러 단체에서 
내게 도움을 구합니다.
그 중 몇 개는 거절을 하고
몇 개는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내 형편 뿐 아니라 
마음도 쉽지 않습니다.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에
도움을 주는 만큼 
나는 그 시간을 비워야 하고
나머지 빈 시간을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내 마음을 지켜주세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듭니다.

내가 걱정하는 그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약속도 붙듭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약속하셨던
사람들을 꾸어줄 거란
약속도 붙듭니다.

주님,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족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그런 인간적인 두려움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두려운 마음과 공존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용해주시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주님 제 인생을 지켜주세요.

기쁜 하루가 만들어지는

살아간다는게
사람을 대한다는 것도,
세상의 수많은 것들 하나 하나가 제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
서로를 아프게 하는 관계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관계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주님이 기도 가운데 말씀하신 것처럼
내 체질과 기질과 성격으로 
만들어진 안전한 울타리를
넘고 싶습니다.
그 갈등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길 원해요.

마음이 아플적에
나는 내 앓는 가슴을 끌어 안습니다.
그리고 주님, 주님, 주님을 애타게 부릅니다.
내 신음소리가 우리 아빠에게 전해지는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님이 내 아버지여서
저는 오늘이 감사하고
그래서 오늘이 기쁩니다.

기쁜 하루여서 기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아버지라서 기쁜 하루입니다.

셔터를 열어둔 사진처럼

마음이 먹먹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오늘 오전에 그랬습니다.
내 마음이 구멍이 크게 뚫린것처럼
아파서 한동안을 누워 있었습니다.
다행히 미팅이 오전에 없어서
잠자코 누워있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늦게까지 누워있었지만
내 마음은 너무 아팠습니다.

알지 못했다면 좋았을 사람들
곡해하는 사람들
아프게 하는 사람들
내가 사람들보다 정직하고 의롭다고
억울해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거기에 함께 하면
결국 흙탕물이 되어버리고
내가 한 말과 삶이 거짓말이 되어버릴까
염려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주님은 진짜잖아요.
주님이 나를 만나주신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거짓이 될까
두렵습니다.
주님, 시험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세요.
이 모든 시간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누군가에게
위로했던 것처럼
긴 시간동안 셔터를 열어두었던 사진은
그 안에서의 작은 흔들림과 파고는 
사진속에 다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내가 그 시간속에 살아가며
주님이 원하시는 사진속에 남기길 원해요..

주님 도와주세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주님, 나는 무엇을 염려하고 있나요?
염려 자체는 내 생각의 방향과 흐름과 연결되어 있겠지요.
주님으로 가득하면
주님외에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말씀을 나눌때마다
자주 이것을 말합니다.
‘약속 위에 우리 삶을 두면 된다.’
그것은 실제적인 삶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문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일반적이고 단순한 형태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도 말씀 위에 서야 한다라고.

마음의 불안함을 염려라고 한다면
내가 큰트롤하지 못하는 영역은
문제와 주위 환경이겠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대한 것은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4:4-6, 새번역)

주님, 잠시 일을 내려놓고
주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나는 오늘의 숨을 쉽니다

아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잡히지 않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처럼
두려움은 두려움보다 큰 것으로만 
밀어낼 수 있습니다.

내게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는 어떤 권위를 드리고 있나요?
주님께 기대어 사는 것
나는 그 답을 내 자신에게 다시 묻고, 생각합니다.

내일을 알지 못해서 두려운 내게
주님이 내일이며 오늘이며 어제라는 사실이 주는 평안
그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평안은 그저 오늘을 망각하는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념적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적이시고 구체적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납니다.

보이지 않는 불말과 불칼과 주님의 군사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두려운 내게
주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두려워 하는 그것을
두려워 하지 마라.
주님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주님 말씀하셨다면
나는 그 위에 서겠습니다.

혹시 나는 죽을까봐 두려워 하는 것일까요?
십자가 앞에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내일 앞에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오늘, 
지금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순종하겠습니다.

내 손이 미치지 않는 그 곳은
내 영역이 아니며
내가 책임질 몫이 아닙니다.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나는 오늘의 숨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