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무감각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사8:12)

언젠가 내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주님은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하셨다.

그것은 언젠나 내게 기댈만 했다.
순간순간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은 오직 주님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쁜 일상을 며칠 보내다가
무감각해져서
두려운 마음 조차 느끼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두려워해야 할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운 마음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감각한 마음이다.

두려운 마음은 피할 구석을 찾다가 주님께 손내밀 여지라도 있지만
무감각한 마음은 더욱 경화되어갈 위험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소원해요

아버지, 바쁜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네요.
해야 할 게 많지만
해놓은 일을 잘 해나가고 싶은 마음에
진척이 나질 않습니다.
바쁜 일정은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한편에서 감사와 안도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힘겨운 시간인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평하지 않으려 합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서 
내가 이런 저런 헌신을 한다고 생각했던 찰나에
주님은 내게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면
나는 나를 포장하지도, 그렇다고 숨지도 않습니다.
물 떠온 하인은 그저 예수님이 분부한 
거기까지 순종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는 깨끗한 접촉면을 가져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서
주님 기뻐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공평하지 않는 사랑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분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용서하신 것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나를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어떻게 또 한 번 내게 기회를 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보며 날마다 실망합니다.
그 실망앞에 좌절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런 내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당신은 내 눈에 당신의 눈을 맞추고
또 다시 내게 사랑을 주십니다.

주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죄를 더욱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누립니다.
주님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게 만나주신 것처럼
동일하게 누군가를 만나주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건
예수님이 대신하여 흘리신 피값, 
그것으로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그릇

순종의 영역인지 분별의 영역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 경계가 희미해 진 것은
결국 내가 이익의 당사자이거나
고민의 흔적속에 시대적 문화가 
섞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며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인지 몰라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순종을 
원하시면 순종하면 될 문제이지만
한걸음 더 진일보 하기 위함 문제라면
다른 영역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정결한 신부가 되길 원하시며
깨끗한 그릇이 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비지니스의 영역은 풀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복잡 다난한 문제 가운데서
시간이 지나 돌아보았을 때
전혀 발 디딜것 같지 않은
지점 위에 나도 서있다는 것을 알게 될까요?

주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이건
그것이 성취되기를.
그 성취를 방해하는 
내 안의 욕심과 불순종과 죄의 흔적과 거짓들
주님 말씀하여주세요..

약점 하나

나의 약점 발견!
다른 사람의 일은
잘 부탁하는데
내 일은 부탁하지 못하고 있다.

크게 생각지 못했었는데
난감해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순종하지 못하는 건가.

나도 모르겠다.
주님, 천사들을 사용해주세요.
그게 아니라면 제게 담대함을 주세요.

가정을 이루면

삶에 걸러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 
보다 힘들어 질까요?
혼자일때는 시간과 공간을
혼자서 점유하기에
본인의 결정에 따라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가정을 이루면 그렇지 않습니다.
내 시간이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내 공간 또한 내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여러가지를 의식하게 됩니다.
 
혼자만을 생각한 것을 넘어
공동체, 함께 거룩하여 질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분노와 좌절, 용서와 기쁨
수많은 감정들을 가정이라는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 경험하거나
훈련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미치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천국입니다.
주님, 내게 날마다 빛 비춰주세요.
 
=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더디 흐르는 시간 같아 보이지만
내게는 뜻과 계획이 있다.
너의 분주한 생각과 관심속에
나를 초대하렴.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속에서
더욱 집중하고 열심을 내고
편히 쉬고, 함께 걸어가자.

은사를 가진다는 것과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별개다

모든 은사를 다 가졌다면
하나님을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눈에 드러나 보이는 은사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내가 알고 있는 약점이 가득한 편이다.
그래서 청년의 시절에
이것 저것 은사를 구한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 은사를 통해 주님을 더욱 알게 될 거라 믿었고
그러면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은
절반만 맞다는 것이다.
내게 모든 은사를 주셨다면
나는 더이상 몸을 이루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한 몫, 한 조각의 은사를 내게 주셨다.
언젠가 내게 사람을 세우는 역할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면
그게 내게 주신 은사이며
그 은사를 통해, 누군가는 눈에 드러나 보이는 은사로
누군가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 은사로 주님의 몸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지만
내게 모든 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사가 있다면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은사가 있지만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심지어는 믿음없는 모습을 보이는
선배들을 보며
은사가 두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 그 분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여기서 말하는
주님과 관계없지만 우리는 대단한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무서운 사실.
은사를 기능적인 일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을 속이지는 못한다.
나를 속일 수 있기에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살기를..

감사했던 많은 시간들속에
나는 주님을 얼마나 생각했던가?

어느 상업사진을 전공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그에게 대답했다.
당신이 상업사진을 전공했다면
그냥 상업사진을 찍으시면 된다고.
당신의 주특기를 이용해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것은 귀한 생각이지만
나머지 당신의 인생, 당신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돌리면 된다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의 호흡이 기도가 되어..
삶이 예배가 되어
나의 삶의 구석구석이 주님의 흔적이 남기를..

아내가 내 아내여서

9월은 무척 바쁜 날입니다.
한 달에 외국으로의 출국만 세 번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연말이 되겠지요.
이렇게 바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가능하면 아내와 커피 시간을 가집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있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성격이 비슷한 지점은
서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낯설어 하는 편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불편해 하는데
얼마전에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나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상대의 태도를 통해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도 이 말에 동의하며 
이런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그렇지만
그리고 별일 아닌일로 서로를 오해하게 되지만
그냥  진심을 가지고 내 갈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 같아.
그러면 혹시 내게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태도가 달라지더라구.
우리 엄마를 보면서 그것을 배우게 되었어.”

아내와 이야기를 하며
알고 있었던 답이라 할지라도
내게는 힘이 됨을 느꼈습니다.

아내와 연애하기 전에
이런 추억이 있습니다.
버드나무에서 촬영할 여비가 필요해서
일일찻집을 연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내도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혼자 앉아 계신 시각장애인 목사님에게 다가가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아. 명경은 이런 친구구나..

커피를 마시며 그때의 기억을 말해주었습니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늘 그런 기분을 경험했었거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서있는 마음
그 마음이 있어서인지
그렇게 찾아가서 말 걸어주게 되더라고..

얼마전 아내와 술취해 거리에 자빠져 있던 
할머니를 부축해서 
한 명은 할머니를 돌보고
한 명은 택시를 용케 잡아서
태워 보낸적이 있습니다.
할머니의 친구분이 우리에게 고맙다 인사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떠나며
내 마음에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를 도왔다는 감사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아내가, 내 아내여서 그렇게 감사했습니다.

일본 코스타 갑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몇 분 전,
잠깐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을 넓게 사귀지 않는 성격 때문에
구석에 이리 앉아 있습니다.

주님께 묻습니다.
더 잘 난 사람 많은데
왜 저를 사용하시나요?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은혜앞에 감사하고 감사하지만
쓸만한 사람들 많은데 왜 저 인가요?

그렇다고 제가 주님앞에
엄청나게 쓰임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진 능력과 재능과 성품과 영성에 비해
말도 안되는 자리에 서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언제쯤 이 거품은 다 빠질까?
거품이 빠지는건 괜찮지만
거품이 빠지고 나면 마치 하나님이 내게 일하신
그 은혜까지도 도매급으로
매도당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주님, 주님,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주님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가끔 아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얼마동안 선교지에 가있는 것은 어떨까?
이 말이 두렵지만, 기대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단순한 생활 속에서
좀 더 주님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요?
한국은 너무 세련되고, 너무 부자나라이기에
너무 손쉽게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기에
주님께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나는 그 어디라고 하더라도 주님을 만나지 못할런지 모릅니다.

내 마음 가득 주님을 부르고 또 부르겠습니다.
이번 일본 코스타는
은혜를 나누기 위해 참석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주님이 내게 은혜를
부어주시려는 자리일지 모릅니다.
주님, 내 마음의 주인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