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

온유가 이제 제법 커서
학교에서 유투브를 배웠습니다.
수업의 과정이기도 하고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기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문화의 힘을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하면 분별력있게
하지만 아이가 충분히 수궁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함께 알아갈 수 있을까
주님 가르쳐주세요.

마음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고
주님께 기대어 살아가는 법..

하루의 많은 일들 속에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일하시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쉬고 싶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
날마다 주님을 초대합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왕이 되어주세요.

기억할 하루

하루에 두 번의 기억할만한 연락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 일들은 어쩌면 앞으로 십년뒤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작은 점들이 될 것 같습니다.
잠을 자려 누웠다가 일어나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십 년이 지나도 여전한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언젠가 이스라엘에서 주님이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이새의 막내아들과 같았던 제게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전혀 의식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세요.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손익을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낮에 영성일기 방에서
아내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내의 글을 좋아했습니다.
자신은 손사래를 치지만
나는 아내의 글에 담겨 있는 지혜의 샘을 좋아합니다.
아내의 글은 나를 미안하게 만들기도
격려하게도 만들고
주님을 바라보게도 만듭니다.
오후를 보내며 이 글을 계속 기록하도록
응원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과 생각과 마음.. 
나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간과하지만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것들이
우리 삶과 태도에 분명한 방향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세상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사랑이라던지 믿음이라던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

아내의 제안으로

 
아내의 제안으로
아이들과 함께 매일합심기도를 
나누어 읽으며 기도했습니다.
소명이가 글자를 읽고,
온유가 제법 글자를 읽게 되니
이런 날도 오네요. 주님.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내에게
주신 주님의 지혜가 아름답습니다.
더듬더듬 읽어 나가는 
아이들의 기도말속에 어려운 말들이 있어서
마침 기도를 하며 재차 설명해주려 했습니다.
무슬림들의 라마단을 설명하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이들이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물도 먹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풀어가며 기도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시간이 종교적인 언어나
종교적인 형식으로만 느껴지지 않도록
주님이 도와주세요.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우리 가정의 신앙문화가 
만들어지길 기도합니다.
 
날마다 선하신 주님,
지혜를 주세요.
언젠가 주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려 지혜를 구하라 말씀하셨으니
제게 지혜를 주세요.
그 지혜로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기이한 빛을
비출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조금 더 작업을 해야 할까요?
항상 자정이 넘어가면 갈등이 됩니다.
괜히 무리했다가 다음날에 차질이 가진 않을까?
수 일 후에 일본에 있는 교회를 섬기는데 상태가 좋지 않을까봐.
 
대학 때는 시험기간이면
늘상 밤샘을 했는데 조금씩 나이가 들어갑니다.
아이들과 아내가 잠들어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집중하기 좋습니다.
저녁에 우리가 만나 깨어 있으면
집중하려 해도 아이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방해가 그렇게 싫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찾는건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니까요.
그게 또 고맙습니다.
언제까지 나를 찾아줄지 모르니까.
 
언젠가 혼자 숙소에 있으니
두렵고 외로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겨내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은
인간을 잘 모르고 만든 말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 조차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게 인간입니다.
주님이 나의 산성, 방패가 되어주세요.

질문 앞에 고민합니다

인터뷰를 했습니다.
멀리까지 와준 기자와 사진작가에게 고마웠습니다.
질문에 나는 단답으로는 잘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의도한 답을 말하려면
그 말의 흐름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후배는
나같은 사람을 가장 인터뷰하는게 힘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세심하게 결을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앞에 나는 매번 고민합니다.
그냥 무난한 답을 말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답할까?
솔직하게 하는 답은 조심스럽습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답은 맞지만
내가 말한게 길이 되어서
앞으로 그 길위에서 서야하는건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아내에게도, 온유와 소명에게도 고마웠습니다.
나는 결혼하는게 자신없었는데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어 가시는 것을 
가족을 보며 알게 됩니다.
 
나는 너무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순간순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게 일상의 믿음중 하나는
내일 들어올지 모를 수입을 믿고
오늘을 지출하는 것입니다.
현실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비현실적인. 신앙의 삶. 그것은 실제적인 삶입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인색하지 않도록 돌봐주세요.
그것은 주님을 협박한다거나
주님께 서운해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은 주님이 나를 버려두거나
나를 사랑하는게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미 아버지는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편이자 아빠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내 아내가 행복하고
우리 자녀들이 행복했으면.
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의 기쁨이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견물생신이라고
눈으로 본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속물적인 내 마음에
주님이 가득 빛 비춰주세요.
 
바쁜 하루를 살았지만
오늘은 하루를 더 쪼개어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오늘이 다 지났기 때문입니다.
아직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지금 무언가를 더 해나가기엔
이미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 할게요.
주님 사랑해요.

우리 강아지들

이번 주까지 
마무리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좀 집중, 집중하고 싶은데
강아지(온유, 소명이)들이  
내 방에 들어왔다나갔다가..

그래도 저녁에 이렇게 
반갑게 만났는데
매몰차게 내쫒기가 미안해서
내버려두고 있자니
나름 진지하게 대화한다.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 들어보다가 
웃음이 빵빵.

#1
“소명아, 아까 저녁에
멸치를 먹었잖아.
멸치를 먹으면
우리 몸의 어디에 좋은지 알아?”

“식도?”
“작은 창자?”
“아니면 큰 창자?”

유치원에서 너무 자세하게
가르쳐 준거 아니예요?

#2
“엄마 아까전에 
집에 돌아오다가 우리오빠 봤어요.”

“너한테 오빠가 어디 있냐?”

“아. 그 오빠 이름이 우리예요.”

“….”

주님,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다음주에는 일본에 있는 동포교회를 
섬기기 위해 떠납니다.
그래서 다음주 전까지
원고를 모두 마쳐야 합니다.

노래하는 풍경을
부재하는 시간동안
모두 예약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이 수고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이 제게 말씀하신대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회복시키는데
이 일이 쓰임받길 원합니다.
그러면 약속하신
주님 보혈로 나를 덮고 또 덮어 주십시오.

그래서 며칠 남지 않은 기간동안
잘 준비하고 집중해서
자녀를 향한 마음
다음 세대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글과 글 사이에 . 원고안에 기도로써
잘 녹아있게 해주세요.

이스라엘에서 주님 주신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시대 가운데 주님의 도구로 잘 쓰임 받게 해주세요.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
내가 분별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가르쳐주세요.
사단마귀의 시험과 모략앞에
잘 적응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주님의 천군천사로 나를 지켜주세요.

주님을 사랑하기에
걸어가게 해주세요.
주님,..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집중이 되질 않습니다.
다음주까지 어느 정도의 글을 마무리하려면
지금은 집중이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습니다.
주님 주님이 집을 짓지 않으면
저의 모든 수고가 헛되며
주님이 성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마음을 지키려 해도 그것 또한 헛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그 수고를 위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이 드는 것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 또한 헛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사람의 수평적인 시간이 아니라
주님의 시간 속에 내가 살게 도와주세요.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않으면
집을 건축하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면
파수꾼의 수고 또한 헛됩니다.
 
여기서 집으로 번역된 말은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가족에서 부터 성전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의 가족과 교회와 사역의 범위까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여호와께서 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헛되고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이 드는 것,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짓거나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신다는
반복되는 전제가 생략되었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127:3)
이 말씀이 나옵니다.
 
자식들은 우리 인생의 도둑이 아니며
태의 열매는 주님이 주시는 상이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주님의  상급입니다.

주변에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픈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 나는 누구인가요?
나는 끊임없이 주변과
나를 비교하게 됩니다.
가나안정탐꾼들의 시선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 앞에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세상앞에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가요?
그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
거기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과 비교하고 있나요?
세상과 나를 비교할 때
나는 메뚜기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과 세상을 비교해야 합니다.
주님과 세상을 비교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주님이 약속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주님의 약속에 기대는 것이 두렵다면
주님에 대한 이해와 전제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게 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앞으로 살게 하실 주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이유는
주님이 내 마음처럼 갈팡질팡하지 않을까?
나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해버리지 않을까?>

<사진을 찍을 때
더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좋은 눈을 가지고, 더 비싼 장비를 가지고 찍는 사진

이스라엘의 비행기에서.
나는 은혜로 찍는 사진.

재능 많은 사람들은
더 높아지려 하지만
원래 내가 어떤 존재였느냐를 생각하면
그저 은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나는 하나님을 위해
이러 저러한 사진을 찍습니다.
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의 잔치에 나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저 긍정적인 사고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세상의 두려움이 긍정적인 사고를 압도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대단한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용기가 위협의 순간에서
닭이 세번울 때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연약하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주님을 위해 죽어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없지만 사랑하기에 죽어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믿는가?
주님을 믿지만, 그리고 은혜로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은 형편없어 보인다.
그게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가?
현실세계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
주님은 내 부족한 사진에 대해 
특별하다라고 말씀하신다.
특별하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이다

무엇을 하건 기도하라.
그 기도를 사용하신다.

티벳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나는 하나님이 그런 방식을 통해 일하신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다.

 

역사속에서
소다가이찌가 그렇게 해서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고
박에스더가 최초의 여자의사가 되었다.

티벳 승려도
내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신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나는 기도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방향이다.

버거운 숙제

7월에는 일본선교 일정이 있어서
6월까지는 끝내야 할 숙제들이 있습니다.
이제 책상에 앉았는데
밤을 새어도 도무지 진척이 나질 않을 것 같습니다.
책상에 머리를 괴고 엎드렸습니다.
 
주님, 어떻게 해요.
약속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직 아무것도 손대지 못했는데요.
 
조금전 문자가 한통 왔습니다.
교도소에 걸린 사진을 보며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내용입니다.
 
40년 된 교도소가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면서
제 사진들을 걸게 되었습니다.
제소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권사님과 마음을 모아서
교도소 벽에 걸 사진을 고르고
글을 정리하고 프린팅하는 작업을
그저께 마쳤습니다.
 
이 문자를 주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주님이 마음을 주셨잖아요.
그래서 주신 마음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주님이 마음과 지혜를 주시면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전도 집회를 마치고

주님, 전도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천 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시간대별로 말씀을 전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성격상 같은 메세지를
전한다는 것은
내가 앵무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습니다.
전도집회이다 보니
새신자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내가 앵무새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영혼을 주님께로
향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괜찮다. 괜찮다. 라고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부목사님들과 식사와 차를 마시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권면한 것은
일기를 기록할 것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의미부여하지는 말되,
수개월이 지난 후에
그 일기를 다시 보게 되면
놀라게 될거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분,
그 성령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이 하셨습니다.
오늘은 정말 많이 피곤하네요.
6월에 마쳐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규모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