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가이사랴 빌립보는 헬몬산 근처에 있는 도시다.
분봉 왕 헤롯 빌립이 로마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도시다.
황제의 직명 가이사랴와, 분봉왕 빌립의 이름을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이 도시, 지상 최고의 권력을 말하고 있는
이 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냈다.

사람들은 로마황제의 이름이 마치 신의 이름인 것처럼
우러러 보지만 지금 작은 한 켠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고 계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16:16)
내가 믿는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세 가지 – 곧?왕과 선지자, 제사장을 의미한다.
우리의 왕이시며 선지자이시며, 또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막연하게?예수님을 믿는다 말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
내가 두려워 떨게 만드는?여러가지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 혹은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

예수님은 동일하게 이 시대에도 물으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중 한 명으로 여긴다.
아니면 조금 나은 사람, 전설 속의 한 인물,
또는 역사속에 한 인물정도로 여긴다.

나는 예수님을 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알았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이름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나의 구원자일 뿐 아니라 주님이시다.
그 분의 십자가의 사건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우주적 전쟁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교회는 그저 착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을 지 모른다.
화내지 않고, 잘 인내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을 추구할 지 모른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고 훌륭한 고백을 했지만
그 조차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출해 내시고
왕으로 등극하실 것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사람이 생각하는 훌륭한 무엇, 선한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마16:21)
말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2)
이 말을 베드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지켜주겠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원어를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자기에게로 데리고 와서는 대들듯 말했다.
어리석고 순진해 보이는 예수님을 베드로는 가르치려 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그 지혜는
사람에게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는 최선이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2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한다고 막아선 일이
도리어 하나님의 일을 막아선 것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16:23)

베드로가 십자가에 대해 막아선 것은
사탄의 시험과도 같다.
예수님조차도 겟세마네에서 십자가의 일을 앞두고 눈물로 기도해야 할 만큼
그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인류의 죄에 대한 댓가, 그 저주와 사망.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혼자서 마셔야 하는 것이다.
마치 광야에서 예수님을 세 가지로 시험한 사단과도 같다.
사단은 이렇게 유혹한다.

십자가의 길 외에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을텐데,
그것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마16:23)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미련해 보이는 것으로
어떻게 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이 곳 가이사랴 빌립보의 찬란한 문화와 영광을 보십시오.
이 방향이 더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주님은 이 시험마저도
단호하게 물리치시고, 그 길을 가셨다.
그리고 그 길위에 주님은 인류를 초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마16:24-27)

예수님은?각 사람이?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너무나 두려운 말씀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 않은가?
하지만 믿음과 행함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곧 예수님의 길 위에 함께 따라 걷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함께 죽고
그 후에야 우리는?그 분의 부활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죽지 않고 부활에 동참할 수는 없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

그것이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라는 고백이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약속하셨다.

올해 초 이스라엘에서 가이사랴 빌립보를 만났다.
베드로의 고백을 생각하며 그 곳 돌맹이 몇 개를 주워왔다.
당시의?영광스러웠을?가이사랴 빌립보는 지금 다 무너져
몇 개의 흔적들이 관광객을 맞고 있지만
미비해 보이던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은
예수님의 약속처럼 큰 나무가 되어 마지막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이 이 믿음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마 16:18)

또한 교회가 이 고백위에 있을 때 음부의 권세은 교회를?이기지 못한다.(마16:18)
이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질타하고 있는 이유는
때가 악한 이유도 있겠지만,
교회가?이 고백위에 서있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고백위에 서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은?놀라운 선물을 주셨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6:19)

열쇠는 열고 닫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묵상하며 하나님은 여러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셨다.
열쇠는 하찮아 보이지만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느혜미야가 백성들과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때
산발랏과 도비야 등은 집요하게 그들의 공사를 방해하고 훼방했다.
원수들은 성벽 재건 공사를 마치고 수리하지 못한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까지 느헤미야의 공사를 방해하려고 했는데
그 때는 아직 성문의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다. (느6:1)
하지만 마침내 성벽 역사가 마쳤을 때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 하여 크게 낙담했다. (느6:16)
이렇게?문이 달리고 난 뒤에야 성은 자신의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여호수아가 아이성을 정복할 때도
일부는 아이성의 군대를 유인했고, 일부는 매복했다가
유인당한 아이 군대로 말미암아 열려진 문을 통해 아이성을 점령했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순간
매복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이 일제히 일어나
성 안으로 돌격하여 성을 점령하고 즉시 성에 불을 질렀다.

아이군이 뒤돌아보니 성 안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이때 광야로 도망가던 이스라엘군이 돌이켜 반격 태세로 나오자
아이군은 도망칠 길이 막연하였다.” (수8:19-20)

이만큼?문은 나라의?운명을 좌우할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
내가 주님을 옳게 고백한다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된다.
주님이?약속하신 열쇠는 곧 기도를 통해 역사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적 세계를 진동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 가나안 거민들이 있다.
그들은 너무나 커보여서 가나안정탐꾼은 그 앞에 악평을 늘어 놓았고
사울 뿐 아니라?하나님의 용사 ‘요나단’조차 그 앞에 침묵하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과 대적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을, 하나님과 가나안 거민들을 비교해야만 한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민14:9)

하나님이 주신 작은 돌맹이가 원수를 넘어 뜨리고 말것이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나는 주님이 내게 맡기신 열쇠를 신뢰해야만 한다.
원수는 우리가 가진 열쇠가 작아서 문을 열고 닫을 필요에 의문을 갖게 한다.
실제로 우리 눈에?열쇠가 작고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열쇠로 열수 있는 문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이미 전쟁의 승기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열쇠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은?다시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이 무엇이라 말하든
나는 나의 대답을 말해야만 한다.

감기몸살

감기몸살에 걸렸다.
다행히 친구 의사가 약을 처방해줘서
적절하게 빨리 낫지 않을까 싶다.
오전부터 약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다.
써야 할 몇 개의 원고가 있는데
이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감사하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원고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말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마치 내 일인양 이것 저것을 준비하지만.. 나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주님때문에..

알수없는 인생

주님..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신앙과 인생에 물어오지만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여전히 나조차도 알수없는게 인생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수많은 고집과 자존심, 결투와 반목과 시기와 ..
이 모든 싸움속에서 과연 주님은 어떤 마음일까요?
수영이의 전시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목표한 바가 갑자기 취소되어도
내 마음은 이런 일에 요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경험케 하신 수많은 시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단련된 것이겠지요.
수영이의 어머니는 내게 순수한 마음과 지금 이 마음을 그대로 지켜나가주길 바랐습니다.
나는 덜컥 겁이 납니다.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내 결정과 태도가
혹 나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까봐서요.
아마도 가장 가까이는 내 가족이 되겠네요.
믿음의 결정들이 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조차도
간사하고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메일을 써야 합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하게 말해야 할까요? 협상을 해야 할까요?
나는 내가 분노해야 할때조차
이제는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잘 모 르겠습니다. 인생을요.
다만, 주님, 내 길을 인도해주세요.

참, 주님 오늘 인터뷰를 하나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실제적인 운영인이라 합니다.
아.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님 도와주세요. 이 인생을 경영해주세요.
다만 이 인생의 끝에 주님 손 벌리고 웃어주세요. 아멘.

피곤한 하루

이번주도 바쁜 일정.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의미없은 게 없다.
바쁜 것이 나를 지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내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자연의 법칙조차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주님의 신비로써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월요일은 매주일 꽤 바쁜 일정을 보낸다.
좀처럼 청강을 허락해주지 않는 교수님이
내게 따로 연락을 해서 자신의 수업을 듣게 했다.
시간을 빼내어 수업을 듣는게 쉽지 않는 순종이지만
도리어 내게 유익한 시간이리라.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시간이기에
나는 이 시간을 유익하게 순종하려 한다.
하지만 부담되는 것은 오로지 학업에 열중하기에는
내가 가진 책임감이 있어서
과연 이 일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 인가가 관건이다.

오늘 하루 피곤한 하루였지만
학교까지 데려다 준 후배,
그리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덕분에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줄였다.
이 컨텐츠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 받았으면 하는 바람.

일을 모두 마친 후,
밤 9시가 훨씬 넘어 손님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내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피곤할텐데, 늘 남편의 즉흥적인 행동에도 기쁘게 반응해주어 감사하다.
헤어지며 기도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내일도 연속된 일정이 있다.
인터뷰와 미팅.
일을 도모하지만 모든 것이 실패하더라도
주님의 뜻이 실패가 아니기에
나는 주님으로 기뻐하리라..

아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혹은 가장 지혜로운 행동은

지금
주님께 물어보는 것,
지금
순종하는 것,

주님 지혜를 주세요.

수영이를 위한 전시,
어찌해야 하나?
여러 고민이 있다.

한 사람을 통한 주님의 메세지,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통한 주님의 일하심을 믿는다.
다만 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수영이는 혼자 보낸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수영이에게 책을 만들어 준다면 참 귀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수영이에게는 기억에 남는 시간뿐 아니라
나중에 수영이가 계속 글을 쓸 때 실제적인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고 달려가다가 과정을 소홀히 하게 될까 두렵다.
상처가 있는 아이라, 자신을 위한 시간에서 도리어 상처 받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나는 이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움직이려 애쓰는 편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내 천성이 드러날것 같기 때문이다.
원래 이 기간은 아프리카를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보다 더 서두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날짜가 정해져 있으면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숙제와 마감날짜를 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때문에 과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면
수영이에게는 도리어 상처를 주지 않을까..

주님의 지혜를 구한다.
주님의 지혜로 이 일을 잘 결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일을 위해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케줄이 어긋나게 되면
나 혼자 치뤄야 할 구멍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난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 지혜를 주세요.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후배는 대화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는 책임감때문에
더 부지런히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혼자일 때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무엇하나 아쉬울 게 없다.
주님으로 충분할 때도 아쉬울게 없지만
원래 목가적인 삶을 추구하던 사람이기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리 욕심내지 않고, 또는 천국을 침노하지 않고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격이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고 나는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기에
원래 내가 가진 기질보다 힘을 내어 일을 도모할 경우들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무거운 짐과도 같지만
이 무거운 짐은 내 성격에 반하여 열심을 내게 한다.

내가 만나고 섬기는 사람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만나기 전에 나는 늘상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다.
내가 만난다고 무엇이 변하겠어.
그런데 만나고 그들을 섬기다 보면
작은 변화와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주님이 하신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있으면 피로해진다.
하지만 주님은 내 환경과 여건을 만드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아버지의 뜻과 결부하지 않으면
나는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이 환경을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난과 광야의 시간은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이다.
나는 그 광야속에 나를 내어놓는다.

성실하지 않는 내게
책임감이라는 옷을 씌우시고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면
나는 기뻐함으로 그 길을 걸어가리라.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한 유다광야에서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성소는 구별된, 거룩한 곳을 뜻한다.
뜨거운 바람과 마실 물 찾기 힘든 척박한 땅이지만
주님의 뜻이 거하시는 곳,
주님이 나와 함께 머무시는 곳,
장소를 너머 그 모든 시간은
주님의 성소입니다.

믿음 믿음

어제 늦게 자서인지 많이 피곤하네요.
주님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려주신 게 도움이 되어요.
나를 덮을 것만 같은 수많은 일들이
나를 두렵게 할지라도
실제라는 그렇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를 덮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이미 죽었다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가 다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은
내 성향상 약속을 지키지 못한 때문에 마음에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내일은 내것이 아니예요.
내일은 내것이 아니기에
오늘의 수고로 족한것 같아요.
주님, 매일의 삶이
때로는 두려움이예요.
신용카드가 그런것 같아요.
갚아질 지 모르는 무언가를
믿음으로 긁는것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막연한 무엇을 믿고
위축되거나 경직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믿음이 필요해요.
내가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가 잘못된 믿음은 아닐까..
가끔은 그것을 생각하게 되어요.
주님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내 생을
내 좋을데로 해석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그렇겠지요.
하자민 주님, 내가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내 발에 주님의 말씀으로 비추어주세요.

예수님 목마릅니다.

‘결혼’에 대한 원고를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써내려간 글이라 뒤죽박죽 불안했었는데
읽어가는 동안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방에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거실 저편에서 온유가 나직히 말합니다.
“아빠, 그러면 물을 마셔.”

온유는 어제부터 종일 그림을 그립니다.
몇 년이 지난 월간다이어리를 노트로 사용하라고 주었더니
칸칸마다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그 페이지들을 뜯어다가 전시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뒤로 그려놓은 것들은 아까워서
한면만 그리라고 얘기하려다
그러면 의식하게 될까봐 그냥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랍니다.
날마다 감사한 일상.

연애일기

어제부터 주님과의 대화를 다시 적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일기와 차이는
일상을 점검하는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주님과의 대화를 적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대화를 하면
늘 고민하는 것이
이것이 내 생각인가, 아니면 주님의 생각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주님과 어떤 사업을 시작하려는 동업자의 태도가 아니라
주님과 연애하듯 사귀는 마음이면 됩니다.
주님과 대화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막대한 실수와 시도를 해야 한다면
그것으로 인한 부담감이 크겠지만
주님과 연애하는 마음이면
이 일로 인해 내가 조롱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귐속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꿈결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