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집회를 마치고

주님, 전도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천 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시간대별로 말씀을 전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성격상 같은 메세지를
전한다는 것은
내가 앵무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습니다.
전도집회이다 보니
새신자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내가 앵무새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영혼을 주님께로
향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괜찮다. 괜찮다. 라고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부목사님들과 식사와 차를 마시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권면한 것은
일기를 기록할 것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의미부여하지는 말되,
수개월이 지난 후에
그 일기를 다시 보게 되면
놀라게 될거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분,
그 성령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이 하셨습니다.
오늘은 정말 많이 피곤하네요.
6월에 마쳐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규모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랑합니다.

기록하고 말씀읽고 기도하겠습니다

짧게라도 하루를 기록하겠습니다.
언젠가 생일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이 베풀어주신 하루를 기록하겠습니다.

이것 저것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보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신 것들을 
순종하게 도와주세요.

말씀을 읽어야 겠습니다.
그것을 나눌 시간이 없다면
일기를 통해서라도 기록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내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오늘을 살아갑니다

작가라고 하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고, 
주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들기도 합니다.

조금 더 실제적인 일을 해야 
나와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마음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요?

조금 더 나은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요?
나는 끊임없이 실용을 찾고 있습니다.
그 실용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요?

아. 내가 고민하는 것은
결국 회의론자가 되는 것일까요?
회의하고 회의하게 되면
결국 감사가 남습니다.

왜 내게 이런 시간이 필요하며
세상은 왜 이렇게 많은 절망이 있는가?
내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
하지만 절망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아닌 내가 주님의 자리에 서게 되면
나 이외 모든 것이 악이 됩니다.
주님은 주님의 자리에
나는 오늘의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판단을 주님께 맡기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랜 친구 주희

선약이 있었는데 근처에 친구 주희가 있어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주희는 20년 된 오랜 친구입니다.

마흔이 넘었는데
여전히 아이같이 웃으며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순간순간 처지를 원망하거나
내일을 절망할 때가 많지만
다시 생각하면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웃습니다.
절망과 감사가 이렇게 가깝습니다.

나는 옛날부터 희망의 말을 
잘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책임지지 못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다만 주희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확신하기에
주님의 기쁘신 뜻이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음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초대를 받아 다음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연구위원으로 돕고 있는 꿈꾸는 장학재단과의
콜라보를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감격스런 간증과 
다음세대를 위한 전진기지로써의 역할을 생각했습니다.

건물의 층층을 구경하다가
4층 도서관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이민아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몇 번을 눈물 흘렸는데,
그 도서관은 아버지인 이어령 교수님이
다음학교에 기증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하심은 이렇게 놀랍습니다.
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면
주님을 믿겠다고 고백하셨던 어른이
딸이 결국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주님 계신 곳에서 딸을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늠하지 못합니다.
고난받고 박해받아서
더이상 자라지 못할 것 같은
작은 씨앗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매 맺게 됩니다.

언젠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지 함께 할 것 같지 않은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지만 둘 사이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잔칫날에 언제 그랬냐는듯
공동체는 한데 어울려서 웃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 모습이 동화 속 한 장면 같아서 한참을 멍하게 쳐다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냉랭하고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처럼 보여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그 마음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승우의 최근 소설 <사랑의 생애>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그걸 가질 수 없다는 걸 모르게 된다.
잘 알다가도 갑자기 모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모르게 된)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만 그걸 모른다.
모르니까, 모르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연인의 마음을 기자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아무리 필사적으로 매달려도 가져지지 않으니까
(가질 수 없으니까) 괴로워진다.
매달릴수록 더 괴로워진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확대해서, 마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따뜻한 말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을 하늘로 날게 만들거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기도
마음을 따뜻하거나 쿵쾅거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을 불태우거나
서운하게, 또는 분노하게 만듭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의도하지 않게 
만들어지는데
종종 자신의 경험을 통한 말의 해석으로
비롯됩니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쉽게 서운해하거나, 속상해합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의 사랑의 모든 행동은
주님의 명령으로 말미암습니다.
나는 결단합니다.
지금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붙들겠습니다.
그러니 주님, 내게 말씀해주세요.

책을 구입하려다

몇 가지 책을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다시 취소했습니다.
내 삶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많은 부분과 선택속에 주님의 일하심이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책들을 연구하고
이것 저것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
보다 더 주님안에서 깊이 은혜를 구해야 할지
네. 물론 둘 다면 좋겠지만
그것 또한 참 모호합니다.

어느쪽이나 치우치기 마련인 것이 사람이니..
주님 모든 선택과 삶 가운데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주님, 제게 보혈이 넘쳐나길 구하라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그 보혈은 은혜를 나눌때 그렇게 될거라 말씀하셨잖아요.
그 연장선상에 이 고민이 있습니다.

열정을 고민하며

오전에 한 청년을 상담했습니다.
어제 만난 목사님도, 오늘 만난 청년도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달랐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열정 가득했지만
결혼한 이후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두 가지로 답했습니다.
이 시간은 필요한 시간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일 결혼전의 그 열정 그대로
땀 흘리고 뛰어다니는 것이
본인의 만족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생각해본적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하게 바꾸어 가시겠지만
나의 만족을 위해 뛰어다니고 싶은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두 번째 답은 
또 다른 열정에 대한 부분입니다.
당신의 다른 시간.
아이를 돌보고,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외의 시간에
당신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나를 향한 답이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긴 시간동안
학교를 다니며
나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공부하고 과제했습니다.
그 시간동안 주님이 내게 가르치신 것들..

제 인생을 도와주세요.

오늘도 여러 단체에서 
내게 도움을 구합니다.
그 중 몇 개는 거절을 하고
몇 개는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내 형편 뿐 아니라 
마음도 쉽지 않습니다.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에
도움을 주는 만큼 
나는 그 시간을 비워야 하고
나머지 빈 시간을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내 마음을 지켜주세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듭니다.

내가 걱정하는 그것을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약속도 붙듭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약속하셨던
사람들을 꾸어줄 거란
약속도 붙듭니다.

주님,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족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그런 인간적인 두려움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두려운 마음과 공존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용해주시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주님 제 인생을 지켜주세요.

기쁜 하루가 만들어지는

살아간다는게
사람을 대한다는 것도,
세상의 수많은 것들 하나 하나가 제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아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
서로를 아프게 하는 관계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관계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주님이 기도 가운데 말씀하신 것처럼
내 체질과 기질과 성격으로 
만들어진 안전한 울타리를
넘고 싶습니다.
그 갈등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길 원해요.

마음이 아플적에
나는 내 앓는 가슴을 끌어 안습니다.
그리고 주님, 주님, 주님을 애타게 부릅니다.
내 신음소리가 우리 아빠에게 전해지는 기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님이 내 아버지여서
저는 오늘이 감사하고
그래서 오늘이 기쁩니다.

기쁜 하루여서 기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아버지라서 기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