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이제 논문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들어서 수업이 있는 월요일부터?
다시 학교에 나가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논문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 마음이 어떻게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질을 생각하면 이 마음도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라는 생각에?
순종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월요일에 학교에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두려움이 생겼다.?
다시 어떤 기초를 가지고, 어떤 타임테이블과?
어떤 주제로 준비를 해야 할까?
너무 막연하다는 두려움.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 두려움의 가장 중심에서
기도. 한 단어가 피어올랐다.
그래.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야고보서에 말씀하지 않았나?
이른 아침도 아니지만?
조금씩 시간 약속을 스스로에게 정하고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열어가며
주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주 안에 자랑하라

세상은 자기에게 도움 되는 이들을
가까이 하고, 요구한다.
언젠가 큰 컨퍼런스에서
각자의 테이블에서 강사들이 서로 교제를 나누던 중에
영향력 있는 목사님이 등장하시자
나와 함께 나누던 대화 내용은 증발해버리고
나는 오랜시간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전까지 내게 자신의 정치력과 영향력에 대해 호소하셨던 분이라
자신의 장점을 백분 활용하시는 거라 이해했다.

나중에 나와 교제 나누던 목사님이?
강의를 시작했는데,?
겸손에 대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의 따라?
사람의 중심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런 메세지가 전혀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세상은 서로를 도구화한다.
자신에게 도움 되는 사람을 찾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도구화 하지 않고
무능력하기만 한 내게 먼저 찾아오셨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할 때도
마음이 경화되어 냉소적일 때도
어김없이 찾아와 내 눈물을 회복시키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기억하기에
주님이 나를 만지신 시간을 생각하면
모든 결과들을 나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과정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래야 누구로 부터
비롯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기록되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습니다.” (고전 1:31)

 

주님을 그리워 합니다

가족들이 마주 앉아?
얼굴을 그려주고 한참의 시간을 웃으며
한 해 있었던 일들,
경험하고 자란 것들을 적어 보았더니
꽤 많은 목록이 되었습니다.

구구단을 외우고 되었고
성경 말씀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 여행도 함께 했고
이런 저런 상도 탔습니다.
책도 많이 읽었고
제주도 오름도 올랐습니다.

브솔시내에서 무리들에게?
다윗이 나눴던 말이 생각납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을 이기고 난 후
사람들은 싸우지 않은 사람들은
노획물을 가질 권리가 없다 말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이긴 것은?
하나님이 싸워 이기게 한 것이기에
싸운 자나 싸우지 않은 자나 공평하게?
나눌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나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감사하거나 기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비교대상이 존재하고, 세상도, 인생도?
불평할 것 투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결과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나는 브솔시내에서 멈춰 선 자이고
노획물을 가질 자격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선물로 주신 시간을 돌아봅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으나
주님 만날 때는 얼굴과 얼굴을 보는 듯 하겠지요.
온유에게 왜 거울로 보는 것 같을까? 물었더니
옛날에는 돌같은걸로 거울을 만들었으니
희미하게 보인다는 뜻이잖아.
아. 더이상 가르칠 게 없습니다.
어떻게 알았냐 물었더니 언젠가 제가 설명해주었답니다.
말해준 사람은 벌써 잊었는데 기억해주어 기특합니다.
얼굴과 얼굴을 보는 날. 주님을 그리워 합니다.

이따위

이따위 세상,?
이라고 하기에는
감사할 제목이 너무나 많다.

이곳 저곳 내가 만나본 풍경은
눈물나고 슬픔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회의적인 내 마음에
주님은 말씀하셨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소망없는 세상에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면
온 몸과 팔, 다리에 힘이 절로 빠져버린다.
하지만 내 영혼에 날마다 선포한다.
자연스레 좋아질거라 믿지 않는다.

시편 34편,?
아이들이 암송하면
제대로 외웠는지 확인할 때마다
아멘. 아멘. 이라며 내 영혼이 화답하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시는 분,
오늘 희철이네를 만나고 왔다.
내일모레부터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된다.
어머니도 걱정스럽지만
희철이가 간병인 이모와 잘 지내주어서
감사하단다.

계시록에서는 왕이 오시면
눈물없고 슬픔 없는 시간을 말씀하신다.
둘을 안고 이렇게 기도했다.
그 왕이신 주님, 지금 오세요.
지금 오세요.

희철이는 몸이 더욱 굳어지는지
이제 식사를 자꾸 흘려서
학교를 못 나가고 치료중이다.

내 안에 모든 것
주님의 품으로, 감사 감사.
희철이 어머니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있다.
우리는 오늘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 것,
내 안에 모든 것으로 감사합니다.

내 영혼아 주를 바라볼지라

정작, 저는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주님, 부족한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때문에
힘들거나 지치거나 두렵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그럴때면 나는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때마다 주님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문제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시간은 기다려야 하며,
그 시간을 기도로 채워 나가라고.
네. 주님, 즉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주를 바라볼지라.

모든 호흡 속에

주님, 내 영혼을 올려 드립니다.
삶을 살아가는 것,
인생 속에서 걸어가는 것이
여러 가지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아마도 내 영혼이 유약하기 때문이겠지요.
주님, 내 마음의 밭은 어떤 모양인가요?
가시 가득한 마음인가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향락에?
빠져 있지는 않나요?
진공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없기에
모든 일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더욱 주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만약 내가 다윗의 심정 알기를 원한다면
이 마음은 다윗의 마음일까요?
호흡 속에 주님 기도를 실어?
주님께 드립니다.
내 가슴이 바닥에 닿아
떨리는 숨결속에 땅이 진동하며
주님의 보좌 가운데서
나는 날마다 흐느끼며
나의 죄악된 모습 앞에
소스라쳐 울며
재단 숯불로 내 몸이 지져져서
오직 깨끗하게 되기를.

모든 일에 화평하며
그 화평을 지키는 일이
기계적인 일이 아니기에
나는 모든 시간, 모든 호흡,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아시지요 주님

주님의 인자가 내 생명보다 낫습니다.
지난 내 시간들이 부끄럽고
내가 쓴 글들이 부끄러울때가 많습니다.
오늘의 삶이 부끄러워
미안. 내가 잘못했어.?
?
하지만 나는 과거를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사과는 전달되어야 하지만
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은 부정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피값주고 산 주님의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존재처럼 나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가치를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눈으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아시지요? 주님.

수두 보다 크신 하나님

주님,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소명이가 며칠째 질병과 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두려움을 내보이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치실 것이 분명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아이는 두려움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엎드려 기도하고
손을 모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가있을적에는
엄마를 통해 전화를 해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저녁,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두려움 보다 크신 주님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소명이는 100점짜리 예배를 드리고 싶고
장난치지 않게 해주시고, 장난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
예배의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다를만큼
소명이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나이가 적던지 많던지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어른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수두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에게는 막막할만큼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주님 보시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우리 앞에 너무나 크고 대단해 보여서
한 걸음도 못 움직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
하지만 기도합니다.
그런 시간, 하나 하나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낄 때
기도하게 해주시고
막막할 때마다 간절히 드리는 그 기도를 통해서라도
주님, 나의 구원을 견인해 주십시오.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나는 견고한 믿음을 구사할 수 있는
대단한 의인으로 착각하지 않겠습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황을 전복시켜서라도
날마다 구원이 주님께 있으며
오늘을 먹이시는 주님,
오늘 나를 살게 하시는 주님의 숨결을
놓치지 않게 해주세요.

마음이 힘들 때

주님, 사람마다 약점이 있는데
저는 일이 그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위기감을 많이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할 경우
내 마음도 동일하게 힘들어 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 앞에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것을 고통하는 것을 보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내 한계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작은 구석에서 안도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렇게 지으셨구나.
사람의 마음에 반응하도록 나를 지으셨구나.
그래서 나는 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주님께로 가져갈 수 있고
입술의 신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구나.

내 삶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영광이며, 감사입니다.

두려움과 무감각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사8:12)

언젠가 내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주님은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하셨다.

그것은 언젠나 내게 기댈만 했다.
순간순간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은 오직 주님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쁜 일상을 며칠 보내다가
무감각해져서
두려운 마음 조차 느끼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두려워해야 할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운 마음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무감각한 마음이다.

두려운 마음은 피할 구석을 찾다가 주님께 손내밀 여지라도 있지만
무감각한 마음은 더욱 경화되어갈 위험이 다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