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

감기몸살에 걸렸다.
다행히 친구 의사가 약을 처방해줘서
적절하게 빨리 낫지 않을까 싶다.
오전부터 약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다.
써야 할 몇 개의 원고가 있는데
이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감사하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원고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말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마치 내 일인양 이것 저것을 준비하지만.. 나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주님때문에..

알수없는 인생

주님..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신앙과 인생에 물어오지만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여전히 나조차도 알수없는게 인생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수많은 고집과 자존심, 결투와 반목과 시기와 ..
이 모든 싸움속에서 과연 주님은 어떤 마음일까요?
수영이의 전시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목표한 바가 갑자기 취소되어도
내 마음은 이런 일에 요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경험케 하신 수많은 시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단련된 것이겠지요.
수영이의 어머니는 내게 순수한 마음과 지금 이 마음을 그대로 지켜나가주길 바랐습니다.
나는 덜컥 겁이 납니다.
여전히 순수해 보이는 내 결정과 태도가
혹 나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까봐서요.
아마도 가장 가까이는 내 가족이 되겠네요.
믿음의 결정들이 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조차도
간사하고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메일을 써야 합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하게 말해야 할까요? 협상을 해야 할까요?
나는 내가 분노해야 할때조차
이제는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잘 모 르겠습니다. 인생을요.
다만, 주님, 내 길을 인도해주세요.

참, 주님 오늘 인터뷰를 하나 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실제적인 운영인이라 합니다.
아.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님 도와주세요. 이 인생을 경영해주세요.
다만 이 인생의 끝에 주님 손 벌리고 웃어주세요. 아멘.

피곤한 하루

이번주도 바쁜 일정.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의미없은 게 없다.
바쁜 것이 나를 지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내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자연의 법칙조차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주님의 신비로써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월요일은 매주일 꽤 바쁜 일정을 보낸다.
좀처럼 청강을 허락해주지 않는 교수님이
내게 따로 연락을 해서 자신의 수업을 듣게 했다.
시간을 빼내어 수업을 듣는게 쉽지 않는 순종이지만
도리어 내게 유익한 시간이리라.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시간이기에
나는 이 시간을 유익하게 순종하려 한다.
하지만 부담되는 것은 오로지 학업에 열중하기에는
내가 가진 책임감이 있어서
과연 이 일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 인가가 관건이다.

오늘 하루 피곤한 하루였지만
학교까지 데려다 준 후배,
그리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 덕분에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줄였다.
이 컨텐츠를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도움 받았으면 하는 바람.

일을 모두 마친 후,
밤 9시가 훨씬 넘어 손님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내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피곤할텐데, 늘 남편의 즉흥적인 행동에도 기쁘게 반응해주어 감사하다.
헤어지며 기도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내일도 연속된 일정이 있다.
인터뷰와 미팅.
일을 도모하지만 모든 것이 실패하더라도
주님의 뜻이 실패가 아니기에
나는 주님으로 기뻐하리라..

아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혹은 가장 지혜로운 행동은

지금
주님께 물어보는 것,
지금
순종하는 것,

주님 지혜를 주세요.

수영이를 위한 전시,
어찌해야 하나?
여러 고민이 있다.

한 사람을 통한 주님의 메세지,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통한 주님의 일하심을 믿는다.
다만 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수영이는 혼자 보낸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수영이에게 책을 만들어 준다면 참 귀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수영이에게는 기억에 남는 시간뿐 아니라
나중에 수영이가 계속 글을 쓸 때 실제적인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고 달려가다가 과정을 소홀히 하게 될까 두렵다.
상처가 있는 아이라, 자신을 위한 시간에서 도리어 상처 받지는 않을까 조심스럽다.

나는 이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움직이려 애쓰는 편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내 천성이 드러날것 같기 때문이다.
원래 이 기간은 아프리카를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보다 더 서두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날짜가 정해져 있으면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숙제와 마감날짜를 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때문에 과정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면
수영이에게는 도리어 상처를 주지 않을까..

주님의 지혜를 구한다.
주님의 지혜로 이 일을 잘 결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일을 위해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고민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케줄이 어긋나게 되면
나 혼자 치뤄야 할 구멍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난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 지혜를 주세요.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후배는 대화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는 책임감때문에
더 부지런히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혼자일 때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무엇하나 아쉬울 게 없다.
주님으로 충분할 때도 아쉬울게 없지만
원래 목가적인 삶을 추구하던 사람이기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리 욕심내지 않고, 또는 천국을 침노하지 않고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격이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고 나는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기에
원래 내가 가진 기질보다 힘을 내어 일을 도모할 경우들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무거운 짐과도 같지만
이 무거운 짐은 내 성격에 반하여 열심을 내게 한다.

내가 만나고 섬기는 사람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만나기 전에 나는 늘상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다.
내가 만난다고 무엇이 변하겠어.
그런데 만나고 그들을 섬기다 보면
작은 변화와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주님이 하신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있으면 피로해진다.
하지만 주님은 내 환경과 여건을 만드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아버지의 뜻과 결부하지 않으면
나는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이 환경을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난과 광야의 시간은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이다.
나는 그 광야속에 나를 내어놓는다.

성실하지 않는 내게
책임감이라는 옷을 씌우시고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면
나는 기뻐함으로 그 길을 걸어가리라.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한 유다광야에서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성소는 구별된, 거룩한 곳을 뜻한다.
뜨거운 바람과 마실 물 찾기 힘든 척박한 땅이지만
주님의 뜻이 거하시는 곳,
주님이 나와 함께 머무시는 곳,
장소를 너머 그 모든 시간은
주님의 성소입니다.

믿음 믿음

어제 늦게 자서인지 많이 피곤하네요.
주님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려주신 게 도움이 되어요.
나를 덮을 것만 같은 수많은 일들이
나를 두렵게 할지라도
실제라는 그렇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를 덮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이미 죽었다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내가 다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은
내 성향상 약속을 지키지 못한 때문에 마음에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내일은 내것이 아니예요.
내일은 내것이 아니기에
오늘의 수고로 족한것 같아요.
주님, 매일의 삶이
때로는 두려움이예요.
신용카드가 그런것 같아요.
갚아질 지 모르는 무언가를
믿음으로 긁는것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막연한 무엇을 믿고
위축되거나 경직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믿음이 필요해요.
내가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가 잘못된 믿음은 아닐까..
가끔은 그것을 생각하게 되어요.
주님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내 생을
내 좋을데로 해석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그렇겠지요.
하자민 주님, 내가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내 발에 주님의 말씀으로 비추어주세요.

예수님 목마릅니다.

‘결혼’에 대한 원고를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신없이 써내려간 글이라 뒤죽박죽 불안했었는데
읽어가는 동안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방에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예수님 목마릅니다.”
거실 저편에서 온유가 나직히 말합니다.
“아빠, 그러면 물을 마셔.”

온유는 어제부터 종일 그림을 그립니다.
몇 년이 지난 월간다이어리를 노트로 사용하라고 주었더니
칸칸마다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그 페이지들을 뜯어다가 전시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뒤로 그려놓은 것들은 아까워서
한면만 그리라고 얘기하려다
그러면 의식하게 될까봐 그냥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랍니다.
날마다 감사한 일상.

연애일기

어제부터 주님과의 대화를 다시 적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일기와 차이는
일상을 점검하는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주님과의 대화를 적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대화를 하면
늘 고민하는 것이
이것이 내 생각인가, 아니면 주님의 생각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주님과 어떤 사업을 시작하려는 동업자의 태도가 아니라
주님과 연애하듯 사귀는 마음이면 됩니다.
주님과 대화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막대한 실수와 시도를 해야 한다면
그것으로 인한 부담감이 크겠지만
주님과 연애하는 마음이면
이 일로 인해 내가 조롱받아도 상관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귐속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꿈결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빠, 난 나중에 커서 나비가 되고 싶어.”
“나비? 왜 나비가 되고 싶어?”
“나는 하늘을 날고 싶거든.
하늘을 날아서 새도 보고 싶고, 열기구도 보고 싶어.
그것 말고도 보고 싶은게 많이 있어.“
“그래? 또 뭐가 보고 싶은데?”


“비. 하늘에 비가 가득 모여 있는 걸 보고 싶어.
구름도 보고 싶어.
구름이 비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보고 싶어.
아빠, 난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어쩌면 좋지?“


다섯 살 난 딸아이처럼 나도 날개를 달아서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보고 싶은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은 것 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당신의 얼굴입니다.
어젯밤 꿈속에 만난 것보다 더 선명하게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