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과

이번주는 금요일(6.24)에 전시장에 있을 예정입니다.
점심약속외에는 아직 정해진 약속은 없으니
편하게 방문하셔서 교제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아현동, 인천, 예산, 멀리 포항에서 오신 분들과
짧게, 또는 긴밀하게 만남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다보니 하루가 다 지났습니다.

틈틈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내가 전한 말씀은?주님이 그대로 이루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성품에 기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과연 믿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순간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묽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다보니 믿음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내게도 감사한 일입니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절망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몸을 이루는 것 또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그리고 함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마음..

몇 번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내 마음은 이 결정을 내렸을 때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는
짐작과 예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이의 마음을 지켜주지 못하면
더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나는 그것을 택했습니다.

기도해보았습니까?
그 기도가 명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이익을 담보하기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속셈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 한 것일까?
주님, 내 마음에 말씀해주세요.
표피적인 것에 내 결정과 관심을 쏟지 않고
아버지의 마음을 주세요.

부끄러움과 맞선 시간

강의를 마치면 가장 어린 아이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선생님이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바보같은 고백이지만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왜 예수님이 어린양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라 어릴적부터 이런 가사의 찬양을 불렀을 뿐 아니라
찬양을 부르며 눈물도 흘렸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교회서는 직분을 맡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른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담당 전도사님에게 용기내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알고 있는거라고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놀라웠습니다.
‘다 알고 있네. 그러면 됐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내용이지만,
이런 서술 자체는 불신자도 알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언어가 가득했던 세상에서 오랫동안 자랐습니다.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 또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주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이신지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전엔 사람들을 모으고 매주일 밤마다 시간을 정해서
캠과 마이크를 가져다 놓고 사람들에게 주님을 말했습니다.
종교적인 언어가 아니라 주님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서
왜 예수님이 어린양이신지, 용서, 영적전쟁, .. 을 말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모니터앞에서 애타게 기도했던 시간들..

거의 반년이 넘도록 부끄러움과 맞섰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하라면 못할 장면들이지만
그 분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지고 계신 의문과 답답함을
주님께 여쭤보세요.
그것은 당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도제목입니다.


내가 경험한 의문과 답답함에 주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의문 앞에서 주님께 질문해 보세요.
“주님의 마음을 구합니다.
주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어떻게 하길 원하시나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시진 않지만
계속된 질문을 통해 주님은 당신의 마음을 나눠주실거예요.

감동을 따라 노트에 생각나는 말과 문장과 생각을 적어 보세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 ‘그 이후에 벌어질 어려움’
이런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도 됩니다.
‘기도하게 되면 아마 주님은 나를 이런식으로 내몰거야.’
순종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마음을 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는 마세요.
우리는 누구도 주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게 만들려는 사단의 계략입니다.

 

부담과 두려움 조차,

책이 나온지 아직 며칠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서 여러 절절한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벌써 작은 변화와 은혜를 만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나는 죽었습니다. 라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이 책의 주제가 가지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오전에 아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담과 두려움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아내에게 책을 가장 먼저 선물했는데
아직까지 아내는 첫 장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다음주에 숨을 고르고 읽을 생각이라 합니다.
우리 부부에게 이 책은 상당한 부담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책을 통한 기대가 있습니다.
오전에 기도한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이루실 아버지의 마음.
아파하고 깨어진 가정과 청년들에게
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책에 쓴 것처럼
문제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를
주님앞에 가져가려 합니다.
이런 형태의 두려움 조차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주님은 작지 않으십니다.
모든 문제 이면에 감사가 있음을
나는 도리어 감사를 택합니다.

그리고 내 영혼에 선포하겠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p.s
유기성 목사님이 칼럼에
책에 대한 소개를 적어 주셨습니다.
출판사 직원들도 이렇게 따뜻하게 적어주신 목사님은 없었다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을 진행하며 고마웠던 분입니다.
https://www.facebook.com/pastor.yookisung/photos/a.295403830557613.59619.293527930745203/957317207699602/?type=3&theater

주님의 얼굴을 봅니다.

중국에서 잠시 한국에 들른 선교사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나자는 약속.
한국에 머물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급하게 잡은 약속이지만 흔괘히 집을 나섰습니다.

나는 이 분을 만나서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만남을 통해 어떤 일을 하실까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는 지금 이 시간을 기대하며 순종할 뿐입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매일을 기대하겠습니다.

내 모습을 살피면
나는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습니다.
할 자신도 없구요.
하지만 주님을 바라봅니다.
최소한 기도해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면 이 분을 통해 주님 뜻 이루시겠지요.

매일의 시간을 경영하시는 주님,
주님의 얼굴을 봅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

주님, 늦은 밤이예요.
아이들의 잠자는 소리,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듣기 좋아요.
오늘 온유에게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했을 경우를 이야기해주었어요.

아이가 아직 어렸을때는
자신의 정당함만을 보곤 하잖아요.
왜 나만 사과해야 하는지를 묻는 딸아이에게
속상했겠구나. 억울한 이야기를 다 들어준 뒤에
이제는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중요한 건, 그 당시의 시간이 아니라
조금 더 전 이야기를 생각해보라고 권해줬어요.
억울했던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상황들..

다행히, 다행히 딸 아이가 내게 말해주었어요.
“아빠, 그런데 그때 이 아이는
이 일로 마음이 속상했을수도 있겠다.”

“그래. 온유야.
억울한 일을 당한 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는것 같아.
친구가 앞서?있었던?속상한 마음 때문에
너한테 속상한 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그때 너가 참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그 친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왜냐하면 아빠는 그 자리에 없어서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알 수 없어.
이 말은 온유가 거짓말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온유는 거짓말 하지 않는 딸이라는 것을 아빠는 믿어.
하지만 너가 정직하게 이야기해도
다 알 수 없는 사정이 너무 많아.
아빠 나이가 몇 살이지?
응. 마흔살이지만. 아빠도 아직 어리기만 한 걸..
그래서 모르는 것 투성인걸..”

비생산적인 시간

주님은 내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과 상황에서
주인공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내 마음과
내 시선을 주님에게서 외부로?이끌려 합니다.
어쩌면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게 하는 것 또한
사단의 성공이고,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유물론적인 생각으로 인해
주님마저 지워버리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사단의 성공입니다.
나는 오직 주님께 시선을 두고
그 분께 기대어 있겠습니다.
주님 내 삶에 지속적으로 말씀하시고
만나주세요.
다음주중에 책이 나옵니다.
<결혼을 배우다>
네. 주님 저는 결혼을 주님께 배웠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하던 내게
주님이 강권하셔서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겨우8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결혼은 이런 것이다.
가정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말할 자격이 되느냐.
내가 말할만큼 무엇을 알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나는 그 시간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이런 시간 가지면 좋지.
누군들 이런 시간을 갖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기회비용이라는게 있잖아요.
내가 여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더 생산적인 것은 소홀해지거나 방치되어 버리잖아요.
기억나는 몇 개의 경험이 있습니다.
2년이 넘도록
나는 그 시간속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은 무엇인가요?
싫거나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어 혼자 멈춰있는 시간.
나는 하루종일 설거지를 하고
말 그대로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버리는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이
그저 떠노니는 구름을 멍하게 쳐다보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이 내게 어떻게 필요할 지
주님께 묻고는 했습니다.
이 시간이 내게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내가 거쳤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비생산적인 시간이라 생각했던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최소한 후배들에게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시간은 물론 필요하지만
자신의 ?달란트를 계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인생의 목적이 그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때로는 납득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훈련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8년을 살고 있는 우리 집이지만
초인종을 누를 적마다 감격해하며,
대문 앞에서 감사합니다.
집이 크고 작은 것을 떠나서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집이기 때문입니다.

벌써 10년을 사진 찍었지만
오늘 사진 찍는 자체가 내겐 감사의 제목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감격할 수 있다면,
자격 없는 내게 주신 아버지의 선물인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내가 색약이라지만, 색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나대로의 색감각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내가 보이는데로의 색으로 그림 그릴 뿐,
이것을 장애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분별

가나안에 정착한 후
빠르게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을 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에 의해 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앗수르는 여러 점령지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치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이스라엘에서 그들 중 몇을 죽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제사장을 파견합니다.
그래서 그 땅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원래 고향에서 가져온 관습에 따라
자기들의 신도 동시에 섬겼다고 말합니다. (왕하17:32-33)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문화와 미디어에서 가져온 관습에 따라
하나님과 동시에 섬기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주에 깜짝놀랄 만한 여러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기독교 문화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다원주의의 결과들을 보고 입을 다물수가 없었습니다.
동양철학과의 깊은 접목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지만, 그 밖의 이야기에
긴밀하고 비밀스럽게 제를 올리고 있는
상황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직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복음의 도구와 통로로 주신
유익한 것도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하늘을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 붙들어 주세요.

아이들을 준비시켜서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서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저녁 9시가 넘었다.
교회에서 12시간 이상을 머물렀다.
아내는 오늘 몸이 피곤한 상태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리고 교회서 오래 머문다는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은 유보해야 하겠지만
이전의 내 모습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변화일 수 밖에 없다.

혼자서, 주님을 추구하고
교회가 아닌 변방을 떠돌며 사람들과 사귀고 기도해온 내게
이런 구심점과 같은 역할과 경험들은
의미있다.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경험 그 자체가 대단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
그것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에서 주님이 내게 심어주신 말씀.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한다.
그것으로 인해 일을 진행해 나가는 법 뿐 아니라
각 사람들의 상태와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옳아보이는 선택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기 위한 방법과 경험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내게 경험과 공부는 매일의 일상을 통해서다.
주님 졸리는 밤입니다.
붙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