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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중에

성경 전반에 수많은 전쟁이 있고,
수많은 풀어야 할 난관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일관되게 그것을 푸는 열쇠는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라 말씀하신다. (신28:7)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걸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가리키는 길이 있다.
그 길로만 걸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맹세하신대로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신28:9)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수많은 물음 앞에서 답을 아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이다.

하나님은 내게 지혜를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지혜인 것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마치 물건이 주어지듯,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마치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나면
원주인은 내게 아무 효력을 못 미치는 그런 모양이 아니다.
모든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지혜가 있어도 지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질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지혜를 구하는데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데도 주님의 마음을 물어야 한다.
겸손한 중에, 조용한 중에, 은밀한 중에
그 지혜를 사용하라 말씀하신다.

주파수가 많으면

몰라도 되는 것은 끝까지 몰라도 된다
시대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알아야 하는 한 가지는
주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것이다.
주파수가 많으면 주님께 집중하기 힘들다.

있으면 좋지만,
알면 좋지만,
몰라도 상관없는 것은
없어도 상관없는 것은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믿음의 행동

밭이나 포도원에서 수확할 때 가난한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소유이지만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신다고 말하고 있다. (신24:19)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그렇다면 믿어라.
하나님이 갚으신다.
신뢰하라.
언젠가 직장을 다닐 때의 일이다.
내가 원했던 월급보다 얼마를 더 받게 되었을 때 일주일을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는 그 초과분을 마치 내 것이 아닌양 사용하기로 했다.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고백을 하는 믿음의 순종을 그렇게 나타내기로 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그 일이 결국 내 인생을 깊이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나님의 인생수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축복을 원한다면 흘려 보내라.
그래야만 하나님이 채우신다.
복 주신다면 그것을 흘려 보내겠습니다. 가 아니라
먼저 믿음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자판기가 아니다.
이조차도 방법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찬송하여 치유의 경험을 한다는 말을 듣고
치유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게 아니라
찬송하기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찬송하고
치유는 그 선물이다.
하나님은 관계를 원하시지 기계적인 방법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삼상 15:22)

전쟁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전쟁 / 신20:10-20>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당시의 역사적인 정황들을
현재의 우리 삶의 모습과 1차원적으로 이어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오늘의 말씀처럼 이해되지 않거나 적용하기에 힘든 내용들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근동지방의 전쟁에서는
군인들에게 특별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뒤 얻는 전리품들이 그들의 임금이 될 때가 많습니다.
또한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전쟁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너무나 참혹하며, 실제적입니다.
누군가를,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항이 있습니다.
서로가 총을 겨눈 채 멋있는 대사를 읇조리는 것은
느와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입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상대는 우리를 우는 사자처럼 집어삼키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대적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화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 가운데서  
스스로를 보면 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해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모습은  
상당히 의외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 뒤, 계속 광야를 맴돌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군사훈련도, 군사적 전략들도, 군사무기도 가진 게 없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마치 강대국인양 취급하고 있습니다.
적군을 둘러싸서 포위하고 공격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 ‘하나님이 당신들의 손에 넘겨주셨으니'(신20:13-새번역)
전쟁에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전쟁은 의미도, 승산도, 이유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서의 전쟁과 그 밖의 전쟁.
기업의 땅에서 주신 전쟁에서는  
하나님은 그곳에서 진멸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특별한 진멸법인 ‘헤렘’을 말합니다.
이 곳에서의 전쟁은 화평을 청하지도 말고
하나님은 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멸하라는  
이해하기 힘든 명령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죄의 심판입니다.
역사의 최종에 있을 심판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나안 민족들의 극심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죄의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신20:18)
죄에 대해, 나를 물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단호해야 합니다.
사람은 너무나 죄에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내가 나를 죄로 부터 지킬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넘어지기 쉬운 교만인지요..

하나님은 전쟁의 도구로 쓰일, 혹은 엄폐물로 쓰일 수 있는
나무에 대해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목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20:19-20)
우리는 인류의 진보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너무나 많은 자연을 희생시켰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주신 영역들을 제대로 지키질 못하고 있네요..

내가 입은 은혜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모든 소산의 첫 열매를 거둔 후 하나님께 가져왔다.
자신들이 씨를 뿌려 열매 맺은 것 같아 보이는
이 일의 역사가 더 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자신들이 애굽에서 어떻게 출애굽해 왔는지를
고백하게 했다.
자신들이 애굽 땅에서
비참하게 살며, 고역에 시달리고, 억압에 짓눌려 있을 때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기에 내가 오늘을 살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첫 열매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바친 첫 열매를 가지고, 이들에게 주신 온갖 좋은 것을 가지고
레위사람들과 예물을 바친 사람들 가운데서 거류하는 객들과 함께 축제를 벌일 것을 말한다.
이들이 애굽에서 거류하였다(신26:5)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 바로
함께 축제를 즐길 대상인 거류하는 객(신26:11)이다.

누군가를 구제하라고 한다.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한다.
누군가를 섬기라고 한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근거를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종교적 열심에 불과하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거류민이었기 때문이며, 내가 주님께 이미 용서 받은 사람이기에
내가 새 사람을 입었기에 그렇다..

베네치아

아무도 없는 거리
멈춰진 시간 속에 내 호흡만이 가득했다..
– venezia

판단자

<판단하지 말라/야고보서 2:1-13>

야고보서 2장은 행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단 것과
또 하나는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2장의 앞부분입니다. (2:1-13)
2장 전체 주제인 행함은 믿음과 관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그저 도덕적인 규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처럼
권세 있는 자들은 높이고, 가난한 자들은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사실 우리 머리속으로는 당연한 말이지.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상황속에 각 사람을 만날 때는 우리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는 자신을 속이는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는 말씀을 행하지는 않고 듣기만 하는 자입니다.
무엇이 자신을 속인다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그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배에 참석만 하면, 말씀만 많이 알면 그것으로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이해가 가능하겠지요.)

2장 4절. 너희가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유대인의 사고에는 궁극적인 판단자는 하나님입니다.
결국 우리가 판단하면 하나님 자리를 사람이 꿰차게 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 말씀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마지막,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13절.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무엇보다 우리가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우리가 가졌기 때문입니다. (2:1)

오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나를 바로 잡아 줍니다.

엔케렘

‘포도원의 샘’이란 뜻을 가진 ‘엔케렘'(Ein Kerem)
예루살렘의 서쪽에 자리잡은 세레요한의 고향이다.
이 곳에는 세례요한교회, 마리아의 샘, 마리아 방문교회 등이 있다.
– 자세한 이야기는 사진동화의 ‘My Israel’에 정리해 놓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