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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면..

쉽지는 않다.그래도 아프지 않을때까지 가야지.
가다보면 푸른 뚝방길도 나오고 풀피리도 불고 낚시도..
아니 개울가 송사리도 구경하고 그윽한 휘장을 드리운 버드나무도 만나겠지.
봄볕아래 강아지 만나 쓰다듬는 맛이란…

아이들의 무기

중국의 서쪽 끝. 카쉬가르의 어느 골목길.
숙소로 향하는 지친 걸음을 걷고 있었다.
어디서 부턴가 때가 꼬질한 아이들이 내 뒤를 쫓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보란 듯이 환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것이다.
웃음을 값으로 매길 수 있을까?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기쁘다고 했던가..
이들을 따라 나도 웃어본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력한 무기는
이런 모양이 아닐까?

절망, 그리움

아빠, 가끔, 제 마음은 너무나 아파요.
당신의 귀한 아들이 되고 싶은데
삶 속에 나타나는 핍박은 인내하며 견딜 수 있겠는데
내 속에 있는 불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선한 것 하나 없는 내가
그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가운데 범죄하는
내 안에 약함 때문에 힘이 듭니다.
  
내가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한다면
과연 이렇게도 불순종 할 수 있을까.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차이가 무엇일까.
나는 주님을 안다고 자신하는데
여기서 주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가 아니라 – 지식이 너무도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연수가 차야 하겠지요.
체험적인데도 말이예요.
팔짱끼고 지켜만 보는 관념이 아닌
얼마나 구체적이시고 실제적이신 하나님이신지.
그렇게 하나님의 열심을 체험했지만
  
아버지의 열심과 나는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 처럼.
내가 마치 호세아서에 나오는 고멜과도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패역할 수 있을까..
내가 한 발만 내딪으면 당신은 은혜의 강물을 부을 준비를 하고 계신데
나는 알면서도 그 걸음을 내딪지 않고 있네요.
그것은 겁이 나서가 아니예요.
그저 한계라고 이름 붙인 내 교만이예요.
아. 어쩌면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아버지의 종이라도 좋사오니. 당신께 나아갈 때
아버지는 상거나 먼데 달려와 나를 안으시는 분임을
말씀에 의지해서 믿고 있으니까요..
  
아버지, 저 당신께 더욱 다가갈래요.
더 가까이 다가갈래요.
더 알고 싶어요.
그래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누군가 보다 더 죄송해요.
당신을 알면서 불순종 하는 저의 패역함을 이시간 회개합니다.
  
주님. 죄송해요.
당신이 흘리신 그 보혈을
나는 얼마나 자주 덮어야만 할까요.
그래서 천국이 그립습니다.
더이상 당신을 못 박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살기를 원해요.
그 곳에는 더이상 눈물이 없겠지요..

아침 햇살

아침 햇살이 커튼을 녹일 만큼 환했다.
일찍부터 책상에 앉아 있다.
사실 내 작업이란 게 마땅한 게 아니다.
그 일의 시작과 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업무시간과 퇴근 후의 쉬는 시간으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나는 특별히 정해진 시간도 없다.

족보가 없을 내 작업에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가 많다.있다.
눈 앞에 분주해 보이는 일보다
의미 있는 일에 나의 몸을 당겨 앉을 필요가 있다.
울려대는 전화벨처럼 다급해 보이는 일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시간을 잡아먹기 일쑤이다.
반면 의미있다 싶은 일들은 우리의 바쁜 일상과 생각속에 묻혀 있어서
우리 스스로 긴급함을 부여해줘야만 한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중요하지도 않은 다급한 일에, 의미있는 일들이 자꾸만 연기되기 때문이다.

웃음

난 어릴 적 궁금한 게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울음과 웃음에 관한 의문이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정말로 엉덩이에 뿔이나 털이 나기나 할까?

그래서 울다가 웃기를 자주 했다.

때로 정말로 힘들고 아플 때
이때다! 하며 웃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한 번은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해서는 화장실로 뛰어가
웃으려 애쓰는 내 모습이 우스워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장난으로 시작한 이 일은
자꾸만 슬퍼지려는 내 감정을 추스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인생이 슬플 때면 사람들은
슬픔을 달래려 슬픔 음악을 듣고, 슬픈 시를 읽고, 슬픈 차를 마시다
결국 슬픈 눈물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그만 슬픔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억지로라도 한번 웃어 보자.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기쁘다고 했던가.
울다가 웃으면?
기뻐지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나로 인한 기쁨

아버지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십니다.
나를 향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 습3:17

당신의 품

나는 하나님께 늘 업혀 있다.
나 혼자 내버려두면 대책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시며 나를 업어주신다.
당신의 따뜻한 품을 감정으로도 느끼면 좋겠지만
믿음으로 느끼는 거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갈릴리 호수 서쪽, 디베랴 호수
아침 일찍,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숯불에 막 구운 물고기를 내주셨다.
그리고 조반을 먹은 후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글거리는 숯불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눈 안에 또 하나의 숯불이 있었다.
그 불 앞에서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던가.
누구보다 자신했었던 그가 닭 울기 전 세 번 부인하자
예수님은 돌이켜 그를 바라보았다.  (눅23:61)
베드로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심정이었을까..
예수님은 그를 ‘반석’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반석이 이렇게 허물어진 것이다.
베드로의 성격대로라면 목을 매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인생이 베드로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의 혈과 육을 의지하지 않고
오실 성령님을 기다렸다.
베드로는 경험으로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내 좌절과 실패로 인해 오직 주님만을 갈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정말 이름처럼 살게 되었다.

내 이름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회복은 어디서 부터인가?
그것은 바로 이 곳이다.
그리고 이 질문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smile

_ 포항 바다에서..

사람

<꿈꾸는 카메라> 라는 다큐영화가 있다.
인도 캘커타의 홍등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 곳의 비참한 현실,
절망과 가난과 학대가 가득한 그 곳 아이들의 이야기다.
카메라. 라는 도구를 매개체로 이들의 언어는
한 장의 사진들에 담겨진다.
그들이 대충 찍은 듯 보이는 사진들은 힘이 있다.
살아가는 일상속에서의 사진 한 장.

나는 사람 사진을 좋아한다.
가끔, 아르바이트로 스튜디오등에서 설정해 찍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사는 이들이 내 사진의 주인공들이다.
나는 평범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