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친구

성경은 놀라운 약속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피한다.
사실 많은 경우와 상황은 다르지만
성경은 시작과 끝을 다룬다.
만일 대적하지 않았다면 마귀를 대적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했을 때, 마귀는 그 앞에서 피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은 나를 가까이 하신다.
과연 그럴까?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통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분이 먼저 내게 다가왔다.
내게 문 두드리며 노크했지만 항상 완강했던 것은
주님이 아니라 나였다.

야고보는 간음한 여인들아! 라고 부른다.
그것은 하나님앞에 영적으로 음행한 이들을 향한 비유적 표현이다.
성경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그렇게 지칭했다.
본문에서 영적 음행은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일을 하는 것이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과 담을 쌓는 용기인가?
그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야고보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욕심을 내고, 살인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약4:1-2)
여기서 세상과 벗 된 자들은 세상의 방식에 녹아 있어서
이런 방식을 쫓고 있는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을 찾지 못하는 자들에게
손을 깨끗이 하라,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라고 청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늘 무엇으로 웃고 있는가?
세상의 방식과 그 습성에 녹아서
비열하게 웃고 있다면,
성경이 약속한 놀라운 약속 앞에 무릎 꿇는다.
마귀를 대적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러면 주님이 가까이 하시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