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별이 빛을 잃어도

여인이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린
순전한 나드는 300데나리온의 값어치입니다.
1데나리온이 일꾼의 품삯과 같으니
베다니의 이 여인은 지금의 중형차 한 대 값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은 주변의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을 드린 이들을

주변에서 비난합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삼하 6:20-21)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앞에
나 또한 멈춰 서게 됩니다.
주님의 일은 알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달리게 될 텐데
예수님은 이 여인의 한 일을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외에 시간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베다니의 여인이 마리아라면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들으며
주님의 때가 가까웠음을
직감하였는지 모릅니다.

 

만일 이 여인이 그저 주님을 사랑하는 
순전함으로 옥합을 깨뜨렸다면
그가 드린 이 헌신을 
하나님은 예수님의 장례에 사용한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시선을 내게로 돌려 나는 묻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살고 있다 말하는
지금 나는 무슨 마음인가?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이 같은 헌신을 비난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득한 먼지들로
나무와 풍경들이 희미합니다.
달과 별이 빛을 잃어도 
여전히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오늘과 내 일상 속에 여전히 주권을 가지신

주님의 시간을 감사로 고백하는 것이
그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민란이 날까봐 유월절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려 애썼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막14:1-2)
예수님은 시간과 역사의 주인으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장례를 준비하십니다.

 

나병환자 시몬의 집,
병들고 누추한 내 마음에 오신 
값비싼 향유보다 더 값진 어린 양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의 배후에는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영역과 그렇지 못한 일상생활의 영역.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종교적이지 못한 삶의 영역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이 문제였습니다.
 
당장 나 자신의 삶뿐 아니라
동료와 선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직장을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자연스레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듯 
보이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했던 
누군가가 어느 순간 무신론자가 되어 버리고
삶의 지배 구조와 기준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은 무능력하신 분이 되어 버리는 현실 앞에
나는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고후1:20, 새번역)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은 때로는 허망한 것 같고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내가 고난 당할 때에,
나는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시니, 
내가 지쳐서 말할 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시77:2,4,7, 새번역)
 
주님을 찾고 찾아도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
시편 저자는 
결국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는지 기억합니다.
 
“주님의 길은 바다에도 있고, 주님의 길은 큰 바다에도 있지만,
아무도 주님의 발자취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양 떼처럼,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77:19-20, 새번역)
 
백성들 앞에 바다가 있고, 
백성들 앞에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 너머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발자취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보이지 않는 모든 영역에 주님의 길과 통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되기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멘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 부으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고후1:21-22)
 
이 짧은 구절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니다.
인생과 문제 앞에 고민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묻는 질문 앞에 하나님의 약속이 대답합니다.
 
‘너는 나의 것이다.
내가 너를 인장을 찍어 봉인했다.  
너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나의 소유다.
그리고 주께서 보내신 자다.
내가 기름 부은 자다. 곧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와 같다.
네 안에 거하는 성령을 보라.
너희에게 줄 유업의 첫 지불금이다.
그것으로 내 약속을 믿어라.
내가 너를 굳건하게 세울 거란다.
너는 나의 것이기 때문이야.” 
 
아멘,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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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질 수 있는 능력과 자격

어떤 일을 시작하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장점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책임질 수 없을까 봐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청년 때 기도하다가
기도를 멈춘 적이 여럿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더 기도하면
주님이 무언가 말씀하실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씀에 책임질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뒤에 비밀의 문을
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기도를 멈춘게 너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주님이 얼마나 인격적이신지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내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일까는
두 번째 문제이고
첫 번째는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듣는 것이 우선이라고 청년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순종하지 못할까 봐 듣지 않는 것과
듣고 순종하지 않는 것 사이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성과 방향성은 달라집니다.
 
여행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집을 나서지 않으면
영원히 여행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좋든 싫든 짐을 꾸리고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됩니다 
그 순간부터는 마음 자체가 달라집니다
 
얼마간 놓았던 책을 다시 펴들었습니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책임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마음은
이제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갈까?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시간을 조정해 나갈까를 고민합니다.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듣지 않으려 했지만
막상 이런 저런 일을 시작하고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 할까 봐
기도를 멈추는 게 아니라
순종은 둘째로 두고
먼저는 주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물어보세요.
주님이 말씀하시면 
마음 뿐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능력과 자격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나처럼 #책임지지못할까 #좀처럼
#새로운걸음 #두려워하는이
#인생의걸음 #선택과선택 #앞에서
#주님의마음 #주님의음성 #마음의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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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의 방향과 기초

“소명이와 다투고 싶지 않은데
그리고 노력하는데도 쉽지 않습니다.
도와주세요.”
 
밤에 예배를 드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기도하는데
온유의 진심이 느껴져 울컥했습니다.
 
온유와 소명이는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를 향해 애정 어린 표현도 아끼지 않지만
둘은 기질이 달라서
잘 지내다가도 가끔 다투곤 합니다.
 
온유의 기도를 들으며
자기 나름대로는 수고하고 순종하는데도
쉽지 않아서 안타까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이런 아이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면,
아이의 마음이나 노력과 순종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니 두렵습니다.
 
만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긴다면
아이들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순종하거나, 기도한다고 바뀌는 건 하나 없어.’
내가 중학교 때 고민한 주제이며,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말해주고픈 주제입니다.
언젠가 필요한 생각이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기초는 아닙니다.
 
기도하다 보면 아이들이 암송했었던 말씀들이 
불쑥 나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시편 91편에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환난 당한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도와주세요.”
그럴 때면 나중에 혼자서 성경을 찾아보고
아멘, 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가 아이어른이 되지 않도록 기다리려 합니다.
아이라서 당연한 것들, 여전히 실수하거나, 장난치고, 다투고, 혼내고..
 
“아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같은 분이면 어떡하지?”
언젠가 온유가 물었던 질문입니다.
자라며 더 많은 질문 앞에서
나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시험 정답 찾기 같은 말씀이 아니라
이런 말씀이 아이의 인생에 정말 정답이 되려면
아직 나는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말그대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서
나중에 이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날때
이 모든 시간들이 아이들의 기초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육아를배우다 #이시간은 #아이인생 #기초
#기초가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주님만날때
#세계관의충돌앞에서 #답이되어줄것입니다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 

추월금지구역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인생 속에 만나게 되는
여러 고통까지도 순응하게 됩니다.
 
몇 년 전, 기도 중에
아주 힘든 시간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주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습니다.
 
문제와 갈등을 만날 때마다 질문했습니다.
“이 일인가요? 지금 이 시간인가요?”
지금 돌아보면 힘든 시간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치 추운 겨울이 오면,
겨울이기에 추위가 당연하였고
몸이 아프기도, 옷을 여미고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당시에는 힘든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힘든 시기를 경험하게 될 거라는
주님의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하면
내가 보내고 있는 힘든 시기. 그것조차도 
주님의 주권, 주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린 예수님에게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마리아가 성전에 올랐을 때
노선지자 시므온이 말했습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눅 2:34)
 
헤롯의 위협 앞에 도망하고
사회종교 지도자들에게 위협당하고
결국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미 마리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리한 칼로 마음을 이리저리 찌르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녀의 인생 속에 만나는 고통에서도
마리아에게 찾아와서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
이 시간조차 주님의 뜻, 주님의 주권, 주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믿음이 그녀를 숨쉬게 하지 않았을까요?
 
‘알 수 없는 인생, 주님 말씀해주세요.’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깨어나곤 합니다.
지난 시간, 선택, 살아온 과정들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오늘 내 인생에 다시 주님을 초대합니다.
계속된 인생의 질문들을 오늘 또 묻습니다.
주님, 가르쳐주세요.
말씀해주세요. 인도해주세요.
 
#이시간조차 #주님의뜻 #주님의계획
#주님의주권 #안에있다면
#중요한것은 #이제 #나는 #어떻게 #반응할것인가
#추월금지구역 #추월하거나 #회피하지않고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

주님의 마음을 기다리며

조금 씩 모으는 돈이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작은 돈을 보태어
내가 만나본 열방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아프리카 차드의 식수사업,
강진이 있었던 네팔 등입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내전 등
현지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그곳 전문가들과 다른 도움이 필요한 곳을
논의하다가, 결국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았지만 나는 왜 기다려 보기로 한 걸까?
이 결정을 두고 혼자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일렬로 줄 세워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을 
순서대로 돕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공평한 것 같지만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계적이지 않고
인격적이라고 믿는다면
기계적인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을 허락하시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작은 씨앗을 심고
젠체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면 족하다고 믿습니다.
 
몇 주 후,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올해도 열방의 여러 곳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사람과
만남은 무엇일까 
작은 씨앗을 심게 하실 땅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곳에 서게 되면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오시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도무지 역전될 것 같지 않은 
사회구조와 아픔 속에서
간절히 주님을 기다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 하기를 말씀하실까?
 
 
#효율적선택 #기계적선택
#아프리카 #캄보디아 #네팔 #열방
#주님의마음 #부으시는 #그곳
#마라나타 #기다림

나의 첫 카메라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혼이 났습니다.
심한 장난꾸러기였던 내가 친구와 장난치다가
친구의 프로스펙스 잠바 주머니에 
내 손이 끼는 바람에 주머니가 찢어졌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은
친척 빚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고
야학 교사를 하셨던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정육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망가진 잠바를 손에 들고
친구의 엄마는 화난 표정으로
정육점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얘를 도대체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정육점을 부끄러워한 적 없었는데
그날 엄마도 정육점도, 자녀교육까지도 무시당했습니다.
 
엄마는 그날 우산 끝자락으로 저를 밀며 혼내셨습니다.
그리고 친구 엄마는 4만 3천 원을 받아 가셨습니다.
 
4만 3천 원.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싼 비용이었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돈으로 사람이 이렇게 무시당할 수 있구나.’
 
나는 그때부터 돈을 모았습니다.
설날에 세뱃돈을 받아도
남몰래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만일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엄마에게 찾아온 기세등등한 아주머니에게
돈을 내밀며 이렇게 말할거라 상상했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이 돈을 받아 가세요.
하지만 돈으로 우리를 모욕하지 마세요.
돈보다 우리의 존재가 더 소중합니다.
돈 받으려고 존재를 모욕하지 마세요.”
 
긴 시간 동안 돈을 모았는데
그 이후로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나는 첫 카메라를 사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사진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내가 모은 돈으로 구입한 첫 카메라가 그저 좋아서
산과 해변, 여러 골목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걸었습니다.
 
당시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취한 행동들, 과정과 시간이 있습니다.
마흔이 넘어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들을 주님은 빚어가십니다.
 
당시에는 인생의 보험처럼 모은 돈으로
두려움을 밀어낼 수 있었고
나의 첫 카메라를 사게 되었다면
이제는 주님으로 두려움을 밀어내라 말씀하십니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이제는 내게 기대어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프로스펙스 #잠바 #사만삼천원
#아주머니 #왜그러셨어요 
#잠바는 #같이 #장난친거예요
#사진작가 #첫번째선물 #카메라 #구입한추억
#설날 #감기몸살 #어질어질  #포토바이 #박동일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

길에 길이 되어주세요

청년들의 여러 질문에
여러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어느새 인생의 선배가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과연 답변을 들려줄 만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과 저 길을 말하는 시대,
말만 잘하면 살아갈 수 있는 시대,
내가 말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 간 대로 말하지 않으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갑자기 이런저런 길을 말하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답이신 주님께
길을 물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분께 기대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답을 말하는 대신
오답을 지워나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주님께 가만히 길을 묻습니다.
 
주님,
우리의 길에
길이 되어주세요.
 
#주님 #나의방패
#나의산성 #나의구원
#길진리생명 #정답이신주님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

인생의 선택 앞에서

대학을 다닐 때, 매거진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남긴 글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께로 돌아오고, 심령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만일 내 보잘것 없는 글에 사람들이 회복된다면
나보다 더 귀한 사람들을 모은 매거진이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회복될 것인가.
이런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
반면에 나는 이미 동년배보다 많이 늦은 상태였습니다.
대학도 수능시험을 잘못 치르는 바람에 늦었고
해외 교환학생의 기회도 청년부에서 임원으로 섬기느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래에 대한 압박과 불안함이 있었는데
매거진을 만들게 된다면 나는 또 휴학을 택해야 하고
남들보다 또 뒤처지게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
그때 묵상했던 말씀이 아브라함과 조카 롯에 대한 본문이었습니다.
롯이 선택한 소알땅은 애굽땅과 같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았을 만큼 풍요로운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몸만 간신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선택 앞에서 내가 가진 지혜와 분별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고민 앞에서 가장 우선으로 전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무모해 보여도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
올해의 일정을 하나둘 체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 작업과 장학 재단과 강의 일정 사이로
선교와 구제사역들,
그리고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던
경로에 대한 탐구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일 년을 놓고 고민하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좁혀지지 않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현실의 질서위에서
조합되고 구성된다고 믿기 때문에?
?
계획이 가끔은 무모해 보이거나 _ 그래서 현실성이 결여되어 보인다던지
가끔은 너무 현실적인 선택_ 그래서 믿음이 부족해 보인다던지
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지나온 여정 속에?내 성경이나 기질과 함께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기억합니다.
나는 책임감이 있고 두려움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책임지지 못할 영역은 미리 포기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약속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영역을 소망함으로 내디뎠습니다.
?
당장의 선택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주님 주신 마음에 순종하더라도
절망같은 시간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 시간이라는 요소,?
영원이라는 요소가 스며들면 달라집니다.
두려움 많은 내가?결코 인생을
이렇게 살아갈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한 해의 일정을 놓고 주님께 오늘 또 묻습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의 약속과 주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
#인생은 #선택과선택 #연속입니다
#무엇을선택할것인가 #주님가르쳐주세요
#주님의약속 #주님의마음 #따라서 #걸어가고싶어요
?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

기도의 응답율

복음을 전한 청년에게
기도를 가르쳤더니
정말 가볍지만, 잊지 않고
기도해보았다고 합니다.
밤마다 대화하며 도장을 찍듯이
?
‘예수님의 이름으로?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라고 기도드렸다고 합니다.
난생 처음 기도드렸는데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적잖게 놀랐다고 합니다.
?
나는 그에게 처음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되면?
그 기도가 크게 문제가 없는 한도 내에서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크게 문제가 없는 한도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그가 나쁜 것을 구하게 되는 경우에는
기도에 응답해주는 편이
도리어?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녀가 위험한 칼을 달라고 한다면
거절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
청년의 가벼운 기도에 응답해 주는 이유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누가 더 유리할까요?
만일 대기업의 회장이 우리 삼촌이라면
당장 어깨가 으쓱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내 아버지라면
어떨까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만들어질 때
유리해지는 것은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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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질문을 바꿔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더 원하는 쪽은 어느 쪽일까요?
손익관계로 따지자면?
우리가 더 원해야 하겠지만
놀랍게도?아버지가 그것을 더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 치르신 대가가 바로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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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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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도의 응답율이 높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믿게 되면
그가 계신 것과, 우리와 관계하기를?
즐겨 하시는 것을 여러 형태로?나타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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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점차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사귀어 갈수록?
처음의 응답율이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밴딩 머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양이나 기도의 코인을 집어넣으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기계적인 사귐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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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주님,
말 그대로 주인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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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묻고 또 물으며
기도를 이어가 보세요.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옳은 방법으로 인도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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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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