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 6살 때,

“온유가
명경이 엄마한테
엄마 진짜 진짜 사랑해요.
너무너무 사랑해요.
진짜 진짜 엄마 사랑해요.
진짜 진짜..”
때가 되면 한글을 익히겠지.
생각했는데 온유는 몇 년전, 제법 이른 나이에
혼자서 한글을 알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초등학교 들어가면 공부하게 될 것 같아서
내버려 뒀더니 온유 특유의 문장과 맞춤법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예수님께도 편지를 썼는데
예수님을 ‘애순님’이라며 절절하게 부르는 편지를 보고는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은 적도 있어요.
애순님의 애는 사랑愛인가 하면서 말이죠.
오늘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온유가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왕이면 예수님은 그보다 조금 낮은 왕이야?”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해서
설명했더니, 오늘은 동생을 붙들고 교육 모드입니다.
“소명아, 하나님은 말야, 예수님과도 성령님과도 한 분이셔.
이렇게 모두가 우리 왕이야. 알겠니?”
아이가 아이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동생은 누나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끄덕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당신의 지혜로 가르치시는 듯 합니다.

옥상 달빛

창밖에 비치는 달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곱습니다.
풀어야 할 문제가 가득한 나날입니다.
문제를 바라보고 몰두하면
그 문제만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줄 서있습니다.
하지만 문제 너머의 주님을 바라보면
문제가 산더미 같아도
주님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면
풀지 못한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순종이며?길목이 될 거라 약속하십니다..

쉼터에서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걸,
한 시간만 실내에서 공부하고
그 후로 나가서 사진 찍으며 놀자고 사정했습니다.

그런데 수다가 길어져서 두 시간을 넘게 실내에 있었지요.
선물로 사들고 간 슈크림 빵을?입에 물고
아이들은 꽤 진지하게 호응했습니다.

“한 사람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좋은 사진은 어떤 것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습니다.
“죽을 때 잘 죽는 게 잘 사는 거 아니예요?”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저마다의 답이 있었습니다.

‘옆을 찍을 때는 이런 식으로 공간을 만들면 좋아.’
내가 가르쳐 준것을 듣고 진지하게 사진 찍었습니다.
나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찍은 내 사진을 기념으로 가지려는 속셈입니다.
사진기는 물론이고, 핸드폰 카메라도 갖고 있질 않아서
언제 배운데로?사진 찍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진 너머의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사진이 그저 예쁜 사진이 아닌 것처럼
잘 사는 인생도?그저 돈이 많은 것이 아님을,
아이들, 참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드디어. 긴 수업을 끝나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앞 창가에서 한 컷.

요플레

“오빠, 많이 피곤하고 힘들지?”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

요즘 늦게 잠들어서
아침마다 피곤해하는 남편의 모습을 본?아내가
조금 전, 걱정스레 말했습니다.
“아니, 괜찮아.”
“그러면 오늘도 새벽 3시에 자겠네?”
“아니, 오늘은 좀 일찍 자려고.”
“아니잖아. 새벽 3시쯤 잘 거잖아.”
“아니, 오늘은 좀 일찍 자려고 한다니까.”
“아. 그러면 안되는데.”
“왜?”
“오랜만에 요플레를 만들었는데,
그때 즈음 기계 전원을 꺼야 하거든.”
“뭐야. 요플레 때문에 그런 거야?
난 그전에 잠들 것 같은데?”
“괜찮아. 혹시 몰라서 알람도 미리 맞춰났어.
오빠 잠귀가 밝아서 감사해.”
세상에서 가장 웃긴 내 아내야,
오늘은 빨리 자고 싶다고오 ㅎㅎ

아픈 이들 속에서

주일 밴드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기도제목과 삶을 나누는 동안

마음과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너무 무거워지지 않으려 자주 농담을 건내기도 하지만,
쉽게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선교사님이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억의 선교센터 부채를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분도 계십니다.
내가 그라면, 내가 그들의 사정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함께 기도를 하고, 마침 기도를 하기 전에
잠시 말씀을 펴 읽었습니다.
성경은 여러 왕조와 역사의 시작을 기술합니다.
시작되는 구절마다 그때의 왕과 대제사장에 대해 설명합니다.
세상 역사는 왕과 종교지도자를 중심으로 권세가들에 의해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주님의 역사와 관점은 전혀 다른 양상을 가집니다.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눅3:1-2)

왕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빈들에 있는 주님의 백성을 만나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구했습니다.
기도를 마치면 우리의 현실은 매양 똑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수난 때, 어머니인 마리아와 요한의 이야기가 짧게 나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왜 이런 수난을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요한복음의 초반부에는 혼인잔치에 대한 기사를 다루는데,
그때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는지 알지 못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사람들이 그대로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점임을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인에게 그렇게 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각자의 사정 속에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건 거기에 귀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여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첫걸음입니다.
며칠 전, 무경이 어머니에게 메세지를 드렸습니다.
작년에 찾아뵈었을 때, 첫째 딸이 틱 증상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엄마의 온 관심과 손길을 받아야만 하는
무경이에게 온 힘을 집중하느라,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책을 가지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우리 딸 온유에게도 틱증상이 생겼습니다.
유아기 때 이런 증상은 흔한 것이기도 하지만 꽤 오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년이 지나 무경이 어머니에게 메세지를 드렸습니다.
‘온유도 그런 증상을 가지고 있답니다.
혹, 어머니가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이렇게 오고 간 내용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온유의 그런 증상들이 부모로써 마음을 힘들게 하지만
같은 마음으로 무경이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근이영양증’이라는 매우 생소한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움직이지 못해 누워만 있어야 하는 그들을 보면
내 마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음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믿습니다.
그 아이들 속에 일하시는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어쩌냐

소명이가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속상한 소명이에게 누나 온유가 말했습니다.
“소명아, 우리 하나님께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같이 잘 찾아보자.”
“칫, 하나님이 세상에 어디있냐?”
이제 5살 된 장난꾸러기 소명이는,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소명이의 말에 온유가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어떡해요.
소명이가 하나님 없대요.”
그리고는 소명이를 붙들고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소명아, 네가 유아부 나가잖아.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우리가 함께 외웠잖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어쩌냐?”
그러게,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정말 어쩌나요..?

회의론자, 이상주의자

나는 지독한 회의론자이며,
동시에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간혹 걷다가 멈칫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주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지 않습니다.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알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말씀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결별하는 장면입니다.
롯이 택한 땅은 애굽땅과 같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은 땅이었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선택해야 할 노른자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결말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택한 땅을 주목해서 보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내가 가진 생각과 판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선택의 기준은
이 일에 하나님은 어떤 마음일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여러 선택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혹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련해 보이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미천한 내 인생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믿음의 결정과 도약을 뛴다고 해서
눈앞에, 혹은 손에 잡히는 이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과 도약을 주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지만
우리 주님은 여전하십니다.
주님이 변하지 않았기에
믿음의 결정과 도약도 여전하길 두려운 마음을 품고 기도합니다.
믿음의 결정과 도약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결정과 도약을 한 사람은 얼마간
얼마나 마음이 두렵고 떨리며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생을 걸어가는 이유는
인생을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정 후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세상을 긍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냉혹해서 낭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자주 생각합니다.

사울 왕을 피해 다윗이 도망할 때
사람들은 다윗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제대로 믿고 있었을까?
도저히 성취되지 않을 오랜 전설처럼 여기고 있진 않았을까?
피해 망상을 가진 절대 권력자는 다윗을 두려워했지만
사울왕의 수하를 비롯해서, 다윗의 추종자들까지
이성적인 판단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다윗이 왕이 된다고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도망하며 겨우 자기 몸 추스르기도 힘든 도망자의 인생을
그렇게 상상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다 보지 않으면 너무 많은 비약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독한 회의론자이지만,
누구보다 기뻐하며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이유는
절망 중에도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기름부음 받은 다윗의?인생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러시아

대학을 다닐 때
학교 앞에 작은 예배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의자 서너개가 놓여 있었을 뿐인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당시 나는 아주 작은 고시원에서 생활했습니다.
작은 책상 하나가 고작인 내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어서
그보다 큰, 아주 작은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내 기도는 몇 문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하고 싶은 일을
이 기도를 통해 이루어 주세요.
하지만 주님, 이런 나를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해주세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십 여년의 시간이 지나서
나는 자주 그때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그래서 하나, 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거절하지 않고 그 일을 하려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한 가지가 내겐 놀라운 감사의 제목입니다.

사람들은 작다 여길 수 있지만
주님이 주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게 작지 않습니다.

러시아를 다녀옵니다.
주님 앞에 여전히 작고 부족한 자이지만
주님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 주세요.
여전히 부족하고 허물많지만
내가 말하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주시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풀 수 없는 문제를

얼마 전,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
“내가 우리 남편에게 사기 치지 말라고 말했어.
풀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하면
사기죄로 감방 들어간다고 말야.
그런데 아침마다 몇 시간을 기도해.
그러면서 나한테 그러는거야.
다른 데서 다 풀 수 없어서
그렇게 마지막으로 나한테까지 왔는데
나도 답이 없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
피난처에 찾아온 사연 많은 난민들,
그들을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단다.
명숙이 누나가 웃자고 꺼낸 말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답이 없어 보이지만
기도합니다.
답답한 현실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항해

두려운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찌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어린 학생들은 사진학과를 전공하고 싶다며
내게 문의를 보내옵니다.
나는 어찌 답을 해주면 좋을까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풍랑없는 삶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두려워 하는 내게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은
곧 믿음으로 살라는 말과 같습니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후
다시 러시아와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합니다.
무엇 때문에 떠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떠나는 것 자체를 부러워 할 때가 많지만
나는 떠난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떠날 뿐,
정작 내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아마도 평생을 품고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의 나라와 잇닿아 있다면
나는 항해를 계속해 나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