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소집일

조금전에 귀가해서
우편함을 열었더니..
취.학.통.지.서.가 와있습니다.

드디어 온유가 8살이 되어
내년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쉬운게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아내와 키득키득 웃다가
둘이 보기 아까워서 공유합니다.

예비소집일 날짜가
12월 24일 인데다가 시간이..
예비군훈련 비상소집도 아니고..
새벽송이라도 불러야 할까요?
예비소집일은 원래 이런 시간에 모이나요? ㅎㅎ

온유와 소명이의 기도

연말이 되면 여러 작업들 때문에
본의아니게 아이들이 방치됩니다.
그래서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부터 순서대로 돌아가며 함께 기도하곤 합니다.
어른들의 기도가 끝나고
아이들의 순서가 되면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됩니다.
기도의 내용을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고
때로는 마음을 쿵쾅거릴만큼
놀라운 믿음의 선포로 들릴때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온유는 엄마에게 자주 공약을 합니다.
자기가 어른이 되면 시집도 안 가고
엄마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겠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는 건 궁금하지만
자기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늙어간다는게
그렇게 싫은 모양입니다.
요즘 기도할적마다 엄마 아빠 안 늙게 해달라는 기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될때까지 더 잘하게 해주세요.”
온유 누나의 기도를 듣고는
소명이가 기도할 때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라나길 원하는 모습을 말해주는 것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유의 기도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져서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면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
얼굴과 얼굴로 볼 수 있겠지요.

http://lovenphoto.com/wp-content/uploads/2015/12/pray2.mp3

“우리 가족이 안 아프게 해주시고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우리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안되게 해주시고
우리 가족이 힘들고 지치고 병들지 않게 해주세요.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이 될때까지 더 기도를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이 기도하는 것 잊지 않게 해주시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한테만 기도하고
우상한테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 많이 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지게 해주세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말씀들을 때 장난 안치게 해주세요.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누나 나랑 축복하는 마음만,
사람하는 마음만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하나님 사랑하고
믿고, 축복하게 해주시고
많이 기도하게 해주시고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엄마와 아빠, 누나와 기도할 때
장난치지 않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말 듣게 해주시고
누나와 나랑 싸우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밥 안에 뭐가 들었지?

아침에 외출준비로 급할 때
우리집은 늘 볶음밥을 만들어 먹습니다.

아내는 이런 급한 상황을 대비해서
값이 살 때 마트에서 야채를 사놓았다가
호박, 당근, 파프리카를 잘게 썰어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습니다.
그러면 후다닥 후라이팬에 마늘과 양파를 볶고, 냉동실 친구들을 꺼내 볶고,
밥과 계란을 마저 볶으면 완성입니다.

“엄마, 이 밥 안에는 뭐가 들었어?”
“움. 호박이랑 파프리카”
“아니, 밥에 뭐가 들어있냐구.”
“음. 당근이랑 멸치도 들어갔지.”
“아닌것 같은데?.”
“온유야 맞아. 봐봐, 빨간색이 당근이구, 이건 파프리카야, 이건 호박이구.”
“아닌데..”
“그게 아니면 밥에 뭐가 있는데?”
“밥 안에는 탄수화물이 있는거 아냐?
내 말이 맞지?”

“하..그.그래. 그렇지..”

르우벤의 눈물

야곱 집안의 장남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왔습니다.
이는 임신을 돕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진귀한 식물입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어머니께 가져갔습니다.
르우벤의 어머니는 레아입니다.
레아에게는 자신이 직접 낳은 아이만도 네 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남편인 야곱은 레아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레아의 동생인 라헬만을 사랑합니다.
레아는 동생처럼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어머니의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오늘 르우벤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선물 하나를 가져다가 위로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이마저도 욕심을 냅니다.
비록 자식은 없었지만,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그는
르우벤이 가져다 준 합환채까지 요구했습니다.
레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남편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서 아들의 합환채까지 빼앗느냐.” (창30:15)
이에 라헬은 남편인 야곱을 가지고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합환채를 갖는 대신, 오늘 밤 야곱과 동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르우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가져다 준 진귀한 선물이 작은 어머니에게 거래되어 넘어갈 때 가졌을 분노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슬픔과 동정
르우벤의 마음에 오늘 일은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후로 레아는 몇 명의 자식을 더 생산하게 되고, 결국 라헬도 꿈꾸었던 자식 요셉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자라났던 아이들은 당연히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살아 갈 것입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작은 어머니 라헬이 죽은 후,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까지 하게 됩니다.(창35:22)
아버지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대상입니다.
형제들이 장성한 후, 분노는 더욱 구체적인 표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분노의 대상이었던 라헬의 아이 요셉에게로 향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라헬만을 사랑했던 그 사랑을 요셉에게 쏟습니다.
결국 형제들이 동생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리기에 이릅니다.

긴 시간이 흘러 요셉은 총리대신이 됩니다.
가나안에 가뭄이 들어서 곡식을 구하러 형제들은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야곱은 잃어버린 요셉 대신 그의 동생 베냐민에게 자신의 사랑을 쏟습니다.
긴 시간동안 세월이 흘러도 야곱은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만 흘렀다 뿐이지, 대상만 변했을 뿐 변한 것은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시간을 보냈을까요?
야곱은 전혀 변한 것이 없지만, 이 깨어지고 상처많은 가정에 하나 둘 변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유다는 또 다른 분노의 대상 베냐민을 대신해서 인질이 되길 자청합니다.
이런 변화 때문에 요셉은 형제들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하게 됩니다. (창45:2)
아주 긴 시간이 흘러서야, 이 가정은 서로를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오늘 큐티말씀을 묵상하며, 빈 여백에 적어 놓은 글입니다.
‘지금 당사자들은 알지 못하지만
레아와 라헬의 유치하고 치열한 경쟁구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열어가신다.’
라헬이 낳은 아이를 통해, 형제들이 미워하는 한 아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위기 가운데서 살아나게 되었으며
레아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제사드리는 레위가 태어났으며,
유다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이라 부르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실 구원자가 태어났습니다.

르우벤의 아픔이 실제적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더욱 실제적입니다.
그저 내 눈에 괜찮아 보이는 것만이, 좋아 보이는 것만이 주님의 일하심이 아닙니다.
모든 불합리와 어리석음과 경쟁과 아픔 속에서도
주님은 당신의 뜻을 오늘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것이 내가 아픔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사랑이라

<아직도 가야할 길>을 쓴 스캇펙은 이렇게 말한다.
삶은 고해다.
하지만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에게는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문제는 우리에게 용기와 지혜를 요구할 뿐 아니라
없던 용기와 지혜를 만들기도 한다.
마치 아이들에게 일부러 문제를 내주고 풀어 보도록 하는 것과 같다.
문제를 피하려고 하면 바로 그 고통보다 피하려고 하는 마음때문에 사실은 더 고통스러워진다.

이 고통을 이겨 내는 슬기로운 기술을 네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이다.
고통을 먼저 겪은 뒤 즐거움을 갖게 되면 그 즐거움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12살 아이가 숙제를 먼저 해치운 다음 놀러 나가는 것처럼.

스캇펙은 이렇게 하는 방법이 절대로 복잡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열 살 정도의 아이들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나 권세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 때문인데
그는 이 의지를 ‘사랑’이라고 말했다.
사랑..

공경의 첫 걸음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세 아들의 이야기를
성경이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함과 같은 자녀가, 노아와 같은 아버지가 이후로도 많았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홍수심판이후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첫번째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이야기는 역사적인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을 조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갯벌같은 세상에서
노아와 자손들은 농사를 시작했고
생육하고 번성할 것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따라 놀랍게도 포도나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 열매를 먹고 취하여 장막 안에 벌거벗은 아버지의 하체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저 지나치며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적 표현으로는 관찰하고, 주목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함은 자신의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알렸습니다.

홍수심판은 죄악이 관영했던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탁월한 의로움이 그를 구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이후 행적과 벌거벗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벌거벗음을 가리려고 옷을 입은 것과는 반대로
노아는 벌거벗었습니다.
여기서 노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죄 문제를 가진 사람이었으며,
함을 비롯한 그 가정 또한 이 문제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죄를 같은 선상에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분명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특별한 죄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을 향해서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소리쳤습니다.
또한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음행하는 이를 향해 평화의 창을 던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함이 아버지를 향해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취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함과는 비교될만큼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수치에 대해 다르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셈과 야벳은 놀라울만한 축복의 예언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때에 대해 경고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부모를 거역한단다..” (딤후3:1-2)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음행과 폭행과 같은 죄악에 대해서는 충분히 심각성을 인식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결과로써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27:16)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고르반_ 하나님께 드릴것이라고 말하면,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라도 거절할 수 있다.-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로 사역에 대한 무게는 싣지만
그 말로써,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변명을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고르반이라는 말처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로, 마땅히 부모에게 드릴 것에 대해 거절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부모님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 사랑한다는 말을 바라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옳은 일입니다.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입니다.
그 약속은 ‘네가 하는 일이 다 잘 되고 이 땅에서 장수 할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엡6:1-3)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 중 하나는
먼저 용서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 많은 분들이 부모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기계적으로 완전하게 제하여 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주님의 놀라운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 아픔의 깊이가 깊을 수록 그렇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왕이 되시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그 아픔은 나를 찌르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도구로 나를 드리기 위한 시작으로 용서를 말하고 싶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아래의 글을 입술로 소리내며 기도해주세요.

“주님, 우리 부모님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부모님의 지난 과오를 생각합니다.
노아가 벌거벗어 지은 죄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으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은 것처럼
내 부모들의 벌거벗음을 주님께서 입히신 새 옷으로 덮길 원합니다.
이제 그들의 과오에 대해 비난하려고 관찰하고 주목하는 일을 멈추겠습니다.

나는 오늘 그들을 용서하길 원합니다.
내 이성으로도, 내 감정으로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왕으로 계신 주님의 마음에 순종함으로 그들을 용서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일하세요.
내 안에, 그들안에서 주님 일하세요.
왕으로 일하여 주세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이의 기도

 

“지금은 점심입니다.
오늘은 밖에 비 옵니다.
비 그치게 해주시고

오늘은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말 듣게 해주시고
나랑 누나랑 싸우지 않게 해주시고
누나랑 나랑 엄마 아빠랑
예수님 사랑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입양을 하려면 두 아이를 낳아본 후가 좋아.”
언젠가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입양한 아이라면
‘내 아이는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 아이는 이렇게 행동하지?’
간혹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아이를 길러보면
‘내 배에서 나온 아이도 이렇게 다르구나.’
그래서 세 번째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마다 각자의 특별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소명이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감사가 있습니다.
소명이는 온 가족이 기도할 때도
혼자서 장난치거나 기도를 방해하기 일쑤였습니다.
돌아가면서 기도를 시키면
소명이 차례가 되면 엉망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갑작스런 변화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집으로 안부전화를 했을 때
온유가 “아빠 좋아.”라는 말을 했습니다.
온유가 처음 문장을 말한 날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갑자기 말을 시작하는 것처럼
몇 달전부터 소명이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가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소명이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유아부 선생님이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소명이는 선생님을 안아주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 도와주세요.
예수님만 바라보게 해주세요.”

5살 아이의 위로에 선생님은 눈물 흘리며 감사했지요.

갑작스런 아이의 기도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하루의 날씨를 이야기하고
어제 누나와 다퉈서 속상했던 것을 말하고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 하고..

아직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지만
기도가 무지 어렵거나
곤란한 것이 아님은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그저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스한 밥상 앞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아이의 기도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별

사람의 생이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이구나.

너무 갑작스러웠던지 장례식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가까운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를 보자 그제야 내 안에 참았던 눈물과 슬픔이 흘렀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그렇게 바라던 주님의 품안에 노니는데
남아있는 이들은 빈자리를 그리워 하네요.

나는 지금도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루만 살 것처럼 살아간다면
나는 오늘 무엇할까 생각해봅니다.

프리덤라이터스

이 영화는 실제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직접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된 것을 다시 영화화 한 것으로

절망속에 피어난 꽃은 장학재단이 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이 영화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윌슨 고등학교의 구제불능 학생들과

이 곳에 첫 부임한 교사 ‘에린 그루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교사 역할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힐러리 스윙크가 맡았다.

 

주배경이 되는 학교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사선을 넘나드는 실제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학생들은 그저 졸업하는 것이 꿈이 될 정도로

마약과 폭력, 살인, 간강과 같은 처절한 풍경속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전부이며

이 속에서 자신의 형제자매과 영역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한다.

 

이 영화는 여러가지를 말한다.

그것을 다 수용하기에는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하나 하나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문제아들을 경험했고,

같은 공간이지만 각자의 시간을 사는 것을 취선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루웰은 각자의 시간을 공유하려 애쓴다.

신출내기 부임교사를 안팍으로 밀어내려 애썼던 아이들,

아니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든 지키려 애썼던 아이들에게

그루웰은 게임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연다.

마약을 해본 사람, 총을 들어본 사람, 친구를 잃어본 사람.. ?

이 아픈 질문에 해당이 되면 그저 표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아픔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모두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부와 머리색깔, 서로의 생김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아파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개별적인 아픔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눈물이기도 하다.

 

그루웰은 아이들에게 한 권씩의 노트를 나눠준다.

노트에 자신의 일기를 써보라고 한다.

욕이든,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 보라고 말한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보여주길 원하는 사람은 캐비넷에 노트를 넣어주길 지시했다.

그루웰이 캐비넷을 열었을 때 그 속에는 일기장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절망 가운데 하루를 겨우 살아내야만 하는 이들에게

에린 그루웰은 그들로 생각하게 하고, 경험하며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들의 일기에는 전쟁과 강간과 죽음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버려지고, 포기해버린 학생들에게 더이상 아무것도 들어줄 마음이 없는 교사들.

자신들도 학생에 대한 열의가 있다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한계선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들 앞에 그루웰은 혼자서 고분분투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

이들을 향한 열정과 헌신 때문에 그루웰의 남편 마저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편안히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사람이야

열정 없어 보이는 교사는 나쁜편, 그루웰은 좋은 편으로 비난과 응원을 던질 수 있을 뿐,

우리는 실생활에서 나의 기득권을 놓지 않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열정있는 교사 그루웰은

이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직업을 위해 여럿 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마트에서 브라를 팔고, 호텔에서 데스크를 맡으며 아이들을 섬겼고

아이들은 이 믿기지 않는 교사를 통해 자신의 지친 삶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언젠가 작업을 위해 직업을 가졌다.

내가 하는 작업이 작게는 누군가를 위로해줄 것을 믿었고,

크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다고 믿었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대신 작업할 시간을 얻어야 했으며

작업할 시간을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수고해야만 했다.

 

내가 하는 작업은 여전히 내가 살아가는 데에 별 도움을 주질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때로 하나님은 거친 돌과 험한 바람을 주신다.

그 때 우리는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가는 길이 험하기에 그만 두던지,

거친 돌에 넘어지거나, 험한 바람에 지치던지.

하지만 다시 일어나던지, 다시 힘을 내던지.

그 때 진정성을 얻는 것이다.

 

말했지만, 이 헌신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4년을 송두리채 헌신한 이 교사를 통해 150명의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총으로 죽을 수도 있는, 마약에 자신의 영혼을 더럽힐 수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구해냈다.

150명의 아이를 구해냈던, 150번의 생명을 구해냈던

 

내 곁에 동역자 한 명이 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둔 채 쉼터라는 공간에 들락날락 하는 아이들을 섬긴다.

자신의 바쁜 직업이 있지만

무엇이 진짜 직업인지 모를 정도로 그는 이 아이들에게 헌신적이다.

동네 형에가 강간당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저주해버린 친구서 부터

어릴 적 신내림을 받거나, 양 부모님 모두 이혼과 재혼하는 상처를 가진 아이들..

그런데 버려진 아이들 중  한 명씩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직 문제 많은 인생들이라 볼 수 있지만 우리의 실용적인 계산과 주님의 마음은 다르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한 동역자의 열정 또한 이 영화와 오버랩되었다.

 

다른 인종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이 아이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멸절시킨 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함께 아파했고

자신의 증오가 누군가에게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적을 죽인 범임이 바로 자신의 동료임을 법정에서 자백할 정도로

그들은 무질서한 사회 속에서 정의를 말하게 되었다.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누군가에게, 둘러싼 환경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내가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의 방향은 정해진다.

마치 마라톤 훈련을 해나가듯,

숨차며 달려며 인내하며 배우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갖는 것도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만 한다.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 깊이 자리해야만 한다.

 

소성케 할 바람

쉼 없이 내리던 비가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바람을 보내시니 물이 줄었습니다. (창 8:1)
여기서 바람은  히브리 원어로 ‘루아흐’라 표현하는데
이 단어는 성경에서 바람, 호흡, 영, 성령’을 가리킵니다.
바람이 불어 이 땅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모습은
마치 성령님께서 이 땅의 구석을 손수 빚어 가시는 풍경을 연상케 합니다.
홍수심판으로 망가진 세상, 어느 곳에도 희망을 볼 수 없는 세상 가운데
성령님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따라 세상을 다시 만들어 가십니다.
전 세계의 전쟁과 기근과 양극화의 아픔속에
절망을 볼 때마다
이보다 더한 고통 가운데 있던 세상에
바람을 보내셔서 회복케 하시는 풍경을 상상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만
부흥의 시대를 기록한 문서들을 읽어볼 때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성령님의 특별한 초대를 보게 됩니다.
그 바람이 불게 될 때 당시의 어떤 유흥가도 예배당이 되어
고함소리 대신 찬송이 울려 퍼짐을 보게 됩니다.
끝없는 기도와 예배도 주님의 영광 앞에 부족함을 보게 됩니다.
얼마전 뉴스에 북한이 종교 탄압을 가장 심하게 하는 곳으로
발표된 기사를 보았습니다.
엄청난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사람들의 주된 의견은
북한이 잘하고 있다며 응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전혀 소망없어 보이는 이 공간에도 바람이 불길 기도해야 겠습니다.
북한 구석 구석에도 그 바람이 불길 기도해야 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바람을 보내실 때
가장 원인이 된 것은
방주에 있는 노아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창8:1)
기억이라는 단어는 ‘자카르’인데
성경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이 때론 더디게 이루어 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은 당신께서 스스로 이루어 가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지금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종살이 할 때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습니다. (출2:23)
여기서도 중요한 단어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자카르’ 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출애굽의 사건은,
구원의 놀라운 사건은 하나님의 기억하심으로 가능했습니다.
그 기억은 적어도 430년 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 후로도 하나님의 기억하심으로 우리는 수많은 구원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기름부음 받았지만 오랜 세월 망명생활 할 때에도 언약은 여전했으며
선지자 시므온과 한나는 어린 예수님을 보고 그 언약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 천국에 꽃이 피게 해주세요.”
딸 온유가 5살이 되던 해에 자주 하던 기도입니다.
주님, 조그만 아이의 기도처럼
황폐해진 우리 마음에 천국의 꽃이 피어나게 해주세요.

우리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언약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때를 따라 바람을 보내십니다.
그 바람이 내 안에 가득 불어서
천국같은 마음이 피어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