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한 날

“이용당할까 봐 두려워요.”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던지는 말을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사람에게인가요? 영적인 부분인가요?”
“둘 다예요.”

광화문에서 오랜 교육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불안한 눈동자와 절박한 목소리 때문에
외면할 수 없어서 정류장까지만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어수선한 이야기들 속에
알 수 없는 연민이 들어서 귀가시간을 늦추고
잠시 나그네를 대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미친 사람의 것으로 거절당한 경험이 많은 이입니다.
그래서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겠지 싶었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으며 수많은 자살시도를 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게 되었고
더 이상 자살시도는 하지 않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감정 기복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대단히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 은사가 무엇인지는 진위여부를 떠나 나누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은사가 자신의 통제 못하는 감정으로 인해
잘못 쓰일까 봐 두려웠고,
수많은 사람에게 이용당한 경험 때문에 믿지 못해 두렵다고 합니다.
그의 은사와 그가 나눈 비전이?진실이든, 거짓이든
내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에게 말해준 것은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허락하신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루실 성취가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수혜를 내가 입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거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이용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당신은 그저 내게 이 시간 하나님이 위로하라고 보내신 영혼입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려 합니다.

그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기업이 성공가도를 달릴 때도
그는 여전히 누추한 풍경에 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은혜와 은사가 있으면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가 되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일생 동안 흔들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대표적인 인물들 하나하나가
수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다윗이,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요한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성경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십니다.

13년만의 만남

75세 때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후 용기 있는 선택과 기도와 전쟁,
또한 여러 실수를 경험하며 24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라와 하갈의 반목과??인간적인 실수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십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주님은 더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못할거라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을 마치 빌보 배긴스가 지난날을 추억하는것처럼 살지 않았을까요?
내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나와 관계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지난 24년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사를 약속하셨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는 약속을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속에
아브라함의 회의와 조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창17:18)

하나님은 13년간의?긴 침묵을 깨고 다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좀처럼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던 약속들이 보다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과 실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어느새 아브라함은 죽을 때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 또한 경수가 끊어져서 현실적으로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네가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긴장 하나 없이 단순하고도 지루하게 세월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기전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만 할 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그런 방식을 택하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우리 삶의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주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실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수면위에?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내가 다 만지지 못하는 시간조차도,
당신은 한 번도 그 계획을 거둔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당신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론 비이성적이고,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나를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이런 나를 왜, 이토록 기다려 주실까?
이런 나를?택하여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나를 넘어서 이 시대의 답답한 현실 앞에 주님은 과연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내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며,
주님은 당신의?계획을?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주님의 그 완전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완전함에?부끄러움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여기서?완전이란 말로 사용된 ‘타밍’이란 단어의 의미는
흠없는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바라시는?우리의?온전함과 완성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단순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는?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한 투쟁도 아닙니다.
그것은 얻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 그 자체도 우리의?완성이나 온전함은?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로 기뻐해야 하지만, 먼저는 주님 그 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마치 질그릇에 담겨 있는 보배처럼
질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보배가 너무 귀한 것처럼
전혀 온전해 보이지 않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그런 단어를 허락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 거하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왕이신 주님으로 내 마음에?모신다면,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소명이는 요즘 밥을 먹으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심지어 치카치카 양치하면서
흥얼흥얼 고요한 밤을 노래부릅니다.

분주한 연말이지만
아이의 노랫소리에
성탄절이 가까워옴을 느낍니다.
누추한 이 땅에 오신 세상의 주인.
내 마음에 모실것을 생각합니다.

고독과 믿음과 변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차이와 관계에 대해 나는 늘 관심을 가집니다.
이 두 차원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를 고민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동의?작품들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지방에 내려갔다가 비는 시간을 틈타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시간과 공간, 차원을
유기적으로 연출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왜곡된 차원과 구성을?그냥 나열할 수 있도 있겠지만
그는 꽤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흥밋거리와 상관없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내게
‘고독과 인내와 믿음’ 같은 주제에 대해서 질문하곤 합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인 쿠퍼와 아멜리아는 모선에서 밀러 행성을 확인하러 갔다가
사고로 인해 시간을 지체하게 됩니다.
그들이 서둘러 모선으로 돌아왔을 때
모선에서의 시간은 자그마치 23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들의 만남 앞에 내 마음이 요동했습니다.
중력 차이로 인한 시간의 왜곡 때문에
쿠퍼 일행에게는 3시간이 흘렀지만,
기다리던 로밀리에게는 23년의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늙어버린 로밀리는 ‘쿠퍼 일행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할 거라 믿었다’고 말합니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감독은 현실과 꿈,
꿈과 꿈같은 이질적인 차원을 설득력있게 연결 짓습니다.
첫 장면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꿈의 더 깊은 꿈(림보)속에 잠들어 있는 사이토를 찾아갑니다.
영화의 설정상, 꿈을 꾸면 현실보다 수 십 배의 시간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데
사이토는 자신의 꿈속에서 이미 자신의 전 생애를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전부라고 느낍니다.
꿈을 현실로 믿고 사는, 이미 의식이 혼탁해진 사이토는
주인공 코브의 설득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
꿈이 현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믿음,
동료가 내게 돌아오고 있다는 믿음
실제적인 생애 속에서 간헐적이고 희미한 진리를 쫓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을 기다리는 동료들의 모습에 나는 한참 동안 망연자실했습니다.
가상이지만 실제적인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그들의 고민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진리를 변증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보이는 현실만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진리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동화같은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뜻밖의 웃음이 가득합니다.
“얘들아,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뜨렸을까?”
“저는 아니예요. 소명아 너가 그랬니?”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누나가 그랬어.”
“난 아냐. 소명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
그러면 야단맞지 않거나, 덜 야단맞을 수 있어.”
그렇게 둘이서 토닥거리며 장난치다가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다 보면
그 속에 작은 보석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있잖아요. 하나님은 무서운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으응.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하나님은 무서워요.
죄를 지으면 무서우시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좋으신 것 같아.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잖아.”
혼자서 종알거리는 온유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누나 옆에서 말을 주워 받은 소명이가 이야기를 거듭니다.
“아빠, 저도 하나님이 무서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좋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친구잖아요. 히히히”

내게 고난이 없었다면

칠십 대의 장로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많이 바쁘시죠?”
이 말 앞에 나는 차마 만남을 미룰 수 없었다.
아내와 자녀들을 안타깝게 잃으시고, 셀 수 없는 질병 때문에
매시간 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분이시다.
하지만 예수님을 얘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나와 함께 하는 두 시간 정도가 그렇게 행복하시단다.
수많은 질병을 위해,
그리고 아프시지 않기를 기도하겠다는 내 말을 가로막으셨다.
“이 질병들은 내게 가시와 같지만
내가 기도하면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치유하시면
나는 또 아버지를 떠나게 될까 봐
이 질병을 감사함으로 품고 살아가고 싶어요.”
장로님은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는 거짓 평화를 누리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헤어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걸음조차도 쉽지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의 고통 속에서
마음 깊이?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만일 내게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부족하거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라
예수님을 만나지 못 했을 거예요.”

질병은 질병으로서 그에게 충분히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어서
그의 무게들은 도리어?감사의 제목이라 말씀하신다.

애굽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머무르다가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말씀하셨지만
하늘만을 바라봐야 하는 땅입니다.
우기인 겨울과 봄에 비만 적당히 온다면 ‘비옥한 초생달’이겠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이 땅은 광야와 다름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늘 기근의 때에 애굽으로 향할 유혹을 만나게 됩니다.
애굽은?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살만큼 비옥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충분히 살만하다면 과연 나는 어디를 향해 걸어갈까요.?

다윗은 그토록 바라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기뻐하며?이렇게 찬양합니다. (대상16, 시105:14)
“그러나 그는?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었습니다.”
다윗의 찬양에 나오는 이 대목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는 세 번의 대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이삭이 그랄에서 아비멜렉에서 그렇게 합니다.
우리의 불신앙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간섭하셔서 그들을 구해내십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그들 또한?주님께서 만나주신 인생들입니다.
과연 주님 앞에서 내가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갈릴리호수에서 제자들은 풍랑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고물에 주무셨을 때는
당신께서 함께 하셨기에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수님이 부재(不在)하십니다.
5개의 떡과 2개의 물고기로 나눈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도
밤새 파도조차 거스르지 못하여 제자리에서 맴도는?인간의 한계 또한?우리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육체의 노곤함, 현실의 한계, 부양과 육아의 어려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성경은 그 때의 제자들의 상황을?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막6:52)
하지만 예수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분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십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풍랑을 밟고 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6:50)

주님께서 약속하셨지만, 그 분의 은혜를 맛보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지면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을 향합니다.
잠시 하늘을 손으로 가려보기도 합니다.
광활한?하늘을 작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둔하여지고,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서도
그들을 통한 당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의 왕들 조차 꾸짖으십니다.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다녔도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시105:11-15)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얼마나 의외의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땅을 얻기 위해 땅을 포기하라니요.
더군다나 그 땅은 빈 땅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12:6)
또한,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아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자신을 어린 아이일 뿐이라고,
80세의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항변했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때가 가장 옳은 때입니다.

며칠전, 한 후배를 만났습니다.
괜찮아.”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을 따라 이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 말에 후배는 눈물을 후두둑 쏟아냈습니다.
몇 년전, 기도중에 주님은 후배에게 당신의 비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몇 년이 지나도 좀처럼 열리지 않는 현실의 문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차 굳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 관념적이라 여겨집니다.
주님은 주님일 뿐,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두려움이라는 상대도 믿음을 지키는 것 만큼 쉽지 않습니다.
이 인생은 내가 책임질 만큼의 만만한 무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배가 눈물을 그치고 난 뒤에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낙담해도 된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돌이켜 힘을 내자.
주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을 믿는다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낙담하지 말자. 주님의 구원보다 크지 않는 일에 낙담하지는 말자.”
우리가 만나는 모든 낙담은 사실 우리의 구원보다 크지 않습니다.

주님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개역개정에는 원어를 다시 옳게 바꾸어 표현했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12:2)
근심많은 우리에게 당장 손에 잡힐 무언가를 주시면 우리는 낙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다 큰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손에 복을 쥐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를 복되게 하신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기 위해 분주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장 우리 가족들의 생계를 생각해야 할 가장이
아프리카의 친구들을 돌보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아무리 주님께서 주신 감동이 있다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온당한것인가?’
정말 많이 고민했던 질문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답이 바로 이 본문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넘쳐서 남은 것으로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로가 되어 흘려 보내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서있는 자체로 그 풍경이 복이 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작년, 미국에서 6남매의 어머니, 정한나 사모님을 만나서 교제했습니다.
홀사모 사역을 하시던 그 분이 내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돈이 다 제 돈이라 걱정없어요.”
쉽게 말씀하셨지만, 결코 말하기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돈이 다 제 돈이라고 말하려면,
그 전제로 내가 가진 돈도 주님의 것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이 말이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75세 된)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12:4)
그가 바로 우리의 믿음의 조상중 한 명입니다.

예비소집일

조금전에 귀가해서
우편함을 열었더니..
취.학.통.지.서.가 와있습니다.

드디어 온유가 8살이 되어
내년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쉬운게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아내와 키득키득 웃다가
둘이 보기 아까워서 공유합니다.

예비소집일 날짜가
12월 24일 인데다가 시간이..
예비군훈련 비상소집도 아니고..
새벽송이라도 불러야 할까요?
예비소집일은 원래 이런 시간에 모이나요? ㅎㅎ

온유와 소명이의 기도

연말이 되면 여러 작업들 때문에
본의아니게 아이들이 방치됩니다.
그래서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라도
아빠부터 순서대로 돌아가며 함께 기도하곤 합니다.
어른들의 기도가 끝나고
아이들의 순서가 되면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됩니다.
기도의 내용을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고
때로는 마음을 쿵쾅거릴만큼
놀라운 믿음의 선포로 들릴때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온유는 엄마에게 자주 공약을 합니다.
자기가 어른이 되면 시집도 안 가고
엄마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겠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는 건 궁금하지만
자기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늙어간다는게
그렇게 싫은 모양입니다.
요즘 기도할적마다 엄마 아빠 안 늙게 해달라는 기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될때까지 더 잘하게 해주세요.”
온유 누나의 기도를 듣고는
소명이가 기도할 때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라나길 원하는 모습을 말해주는 것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유의 기도처럼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져서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면?사랑하는 우리 예수님
얼굴과 얼굴로 볼 수 있겠지요.

http://lovenphoto.com/wp-content/uploads/2015/12/pray2.mp3

“우리 가족이 안 아프게 해주시고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우리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안되게 해주시고
우리 가족이 힘들고 지치고 병들지 않게 해주세요.

소명이가 기도를 잘합니다.
어른이 될때까지 더 기도를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이 기도하는 것 잊지 않게 해주시고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세요.
예수님한테만 기도하고
우상한테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으라고
전도 많이 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에 퍼지게 해주세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다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말씀들을 때 장난 안치게 해주세요.
예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
예수님만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누나 나랑 축복하는 마음만,
사람하는 마음만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하나님 사랑하고
믿고, 축복하게 해주시고
많이 기도하게 해주시고

내가 기도를 잘합니다.
나 기도 더 잘하게 해주시고
엄마와 아빠, 누나와 기도할 때
장난치지 않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말 듣게 해주시고
누나와 나랑 싸우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