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하루하루, 주님께 묻고 물었습니다.
“주님,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내가 생각했던 메세지들이 있지만
특별히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서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게 어떤 게 
정답이라고 대답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정답을 말하려 하지 말고
내가 주님께 질문하고 고민했던 것,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하지만
생각하고 기도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민의 조각들을 나누게 되면
그것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고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모양과 성격과 환경이
다릅니다.
과연 정답이란 게 있을까요?
그래서 답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 묻고 물으며 걸어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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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세요

‘마음을 열었다?
마음을 어떻게 열었을까?’
 
늦은 밤까지 말씀을 찾았습니다.
‘마음을 열었다.’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서,
이 말이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며
흥미롭고, 감사했던 일 하나는
신학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일관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신학적 틀이 아니라
각자의 교수님들이 배우고
연구한 흐름으로 강의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결과들을 낳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기초로 이렇게 양극단의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구나.
그저 성경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주님이 내 눈을 밝히고
내 마음을 열어주셔야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겠구나.’
 
성경을 기초로 세밀한 논리를 주장하지만
서로 다른 교단과 신학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무엇을 전제하고, 무엇을 가정하느냐에 따라
이율배반적인 논거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신학적 틀속에 온 우주를 
집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다고 기록합니다. (눅24:44-45)
주님이 내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진리를 가지고도 나는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열었다는 뜻을 가진 원어는 몇 개가 있지만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계시적 상황마다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엠마로가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성경을 다시 풀어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1-32)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것과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이 두 문장에 모두 마음이 열린다고 번역된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했지만 그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밝히시고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마게도냐 환상을 보이셨고
바울은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 첫 열매인 루디아를 만납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행16:14)
여기서도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게 됩니다.
루디아는 빌립보 교회가 만들어 지는데
중요한 시작점이 됩니다.
 
열다라고 번역된 ‘디아노이고’라는 말은
철저하게 완전하게 열다, 해석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외에는 유일하게 마가복음에서 사용됩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다. ” (막 7:34)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
평소처럼 말씀으로만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난 후에
손가락으로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식은 무엇이었을까요?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시대 (막8:18)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보고도
심지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여전히 표적만을 구하는 이 세대를 보며
예수님은 마음속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막 8:12)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하시니
이는 열리다 라는 뜻입니다. (막7:34)
이 세대를 향한 탄식함으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 앞에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하여지고(막7:35)
맹인은 모든 것이 밝히 보였습니다. (막8:25)
 
주님, 내 마음을 열어주세요.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제 마음을 열어주세요.
귀먹고, 말 더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제 마음에도 탄식하며 말씀해주세요.
“에바다”
제 마음을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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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밝아지면
#보지못했던자가
#볼수있게됩니다
#에바다
#깨닫지못하고
#알지못하는
#마음을열어주세요
#에바다
#내마음도열어주세요

바울과 베드로처럼

“… 예수님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과 베드로처럼 되게 해주세요.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면
그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도둑과 강도와 해적들도 예수님을 믿게 되고
착해져서 그런 사람들이 없게 해주세요.” _ 온유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 전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해주시고
우리가 기도하는 이것으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오게 해주세요.” _소명
 
아이들이 기도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들을 다정하게 봐주는 사람들부터
예수님과 자기는 상관없다며
극구 물리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의 주님이 내 옆에 계시지만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눅24:13-27)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억울하고 슬픈 일을
말하는 글로바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눅24:26)
 
예수님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과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억울한 사건에 대해
누명을 뒤집어쓴 당사자는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가장 억울해야 할 사람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자는 바로 내가 되어야 하는데..
 
차 안에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빠, 전도지를
차 안에 항상 가지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예전처럼 전도대에 함께 참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아이들과 예수님을 전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아내의 말은 마치 주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기도처럼
예수님을 믿는 내가
바울과 베드로처럼 살아가려면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과베드로처럼
#휴게소에서전도
#예수님을알지못하는제자
#엠마로가는제자들
#마땅히받아야할고난
#영광에이르는문
#아이들의기도

4월 당첨자 발표

“투웬티프로젝트_Twenty Project”
| 4월_ 당첨자발표 | 
 
봄봄 스러운 4월, 선물받으실 분은
두구두구두구두구.. 
Sunny Bean 님
고혜연 님
입니다. 
축하드려요. ㅎㅎ
 
메세지나 이메일(eoten77@hanmail.net)로
성함과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사진과 액자를 골라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내드린 작품을 보며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일년 뒤 가까운 친구에게 선물해주시면서
기도제목을 함께 전달하면 됩니다.
 
________
 
“Twenty Project는 20년동안 사진작품이
기도와 함께 여행하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
 
#5월_투웬티프로젝트로 함께 기도할
나라 혹은 개인, 급한 중보기도
제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기도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Twenty_Project
#투웬티프로젝트
#기도와사진의여행
#20년간여행하는꿈

온유가 들려주는 말씀이야기

이 말씀은

바울이 약하고 힘들 때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약한자와 함께 하신다고 하셔서
약하고 힘든 것을
이제는 기뻐하는 말씀이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충분하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약할 때 더 좋아진대요
그래서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이 더 가까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feat. onew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아이들의 마음에는

“소명아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걸 그려 보세요.”
 
엄마의 말을 듣고
소명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소명아
이건 집이잖아.
이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거잖아.”
 
“엄마,
하나님이 능력 주셔서
사람이 집을 지은 거잖아요.
저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림 그리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아이의 마음으로 상상합니다.
 
오늘 밤은 온유 누나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옵니다.
책상을 정리하다가
온유가 그려 놓은 그림과
그림에 적어 놓은 제목이 있습니다.
 
제목 :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소녀
 
아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그림 그리는 걸까요?
아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그리운 주님 만날 수 있을까요?
 
#눈에보이는모든것에
#주님만날수있다면
#아이들의마음을가진다면
#주님만날수있을까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은 긴 한숨 쉬며
말을 거두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 곁을 떠날 것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싸움을 
비유로 이야기했을 때
제자들은 칼 두 자루를 가지고 있다고 내보인다.
“그래. 족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미하는 바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물리적인 싸움과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누가 더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를 다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한숨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주여, 저는 주와 함께라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각오가 돼 있습니다.” (눅22:33)
 
죽음을 각오하는 베드로의 말은
닭 우는 새벽, 
여종 앞에서 흔들리고 말 것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이리저리 흩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는 말과 같은,
강력한 자기 주문이나 의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시간, 그분의 말 한마디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동상이몽을 꿈꾸는 제자들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아서 나도 한숨짓게 됩니다.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맡기신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맡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이런 자격 없고 미성숙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맡기십니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내 아버지께서 내게
나라를 맡겨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맡긴다.” (눅22:28-29)
 
그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순간에서조차
주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격 없는 자들이지만
주님과 함께 하였기에 자격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부여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두려움 속에 기도하던 내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온통 두려운 것들로 가득한 
세상살이 가운데서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움 없는 성격이나 자기 주문이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살면,
그렇게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여러분에게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빌2:13)
 
 
#맡길만한사람인가
#맡길만한나라인가
#주님의판단은믿을만하다
#나를향한주님의뜻과계획
#믿음의주체를믿는것
#나와함께한사람들이다
#주님과함께하면자격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고등학교 때 학원에 등록했더니
신입생이라고 노래를 시켰습니다. 
그때 나는 이성균의 ‘골목길’
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골목길 걸을 때
들려오는 찬양 소리에
 
..나는 예수님이 정말로 좋아요
나 항상 사랑할래요”
학원생들의 표정은 복잡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찬양만 듣고 불렀지만
실제로 내 삶은
이런저런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어릴 적부터 찬양을 불렀지만
찬양의 가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을 들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렸네”
 
노래 불렀지만 정작 나는 왜 찬양에
유월절이 들어가고, 어린 양이 들어가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 이 시간,
3년간 동고동락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가장 가까이서 본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줄지 의논한 뒤
기뻐하며 거래하고 있습니다. (눅 22:4-5)
마치 하나님은 이 일련의 상황에서
일하시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누가는 여기에 한 줄을 적어 넣습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 이른지라 (눅22:7)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열 가지 재앙의 절정에 
유월절 사건이 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덮쳤지만
이스라엘의 집들은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 유월절(Passover) : 넘어가다 (pass over) 
 
당시 애굽에서 고통하던
약 200만 명 이스라엘 사람들을 자주 상상하곤 합니다.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적어도
나 같은 사람 한 명은 있지 않을까요?
 
내 이성과 내 감정으로도
내가 지은 수많은 죄들 때문에
나를 용납하지 못할 죄인 한 사람.
하지만 그가 애굽에서 죽지 않은 이유는
그가 구원받은 이유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유월절에 피 흘린 어린 양의 피 때문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나의 삶의 문이 열렸습니다.
 
#유월절어린양 #예수님의피로
#나는살게됩니다 
#종교지도자와가룟유다의거래
#그배후에서일하시는주님의일하심
#지금이시대에도_여전히

예수님의 질문

드라마 속 사랑에 익숙해지면
연애하는 상대에게서 헛된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배운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하면,
감동적인 상황이나 명 대사가 전달되지 않으면,
마치 사랑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사랑은 여러 작가들이
힘을 모으고, 감정선을 만지는 음악과 연출,
배우의 비주얼이 만들어낸
가상의 한 단면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날마다
즐겁고 행복한 순간으로 가득할 거라 믿으면
그렇지 않은 날은 불행하거나
잊고 싶은 날이 되고 말지만
 
기본적으로 인생은 고해입니다.
인생에 대해 다시 눈을 뜨게 된다면
아무것도 아닌 날도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하늘이 맑게 개인 주말,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가족과 함께 산책했습니다.
대단할 게 없는 시간이지만
구름 사이 내리는 햇살도 감사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왜 사람들에게 그렇게 질문하셨나요?”
 
성전에서 예수님은 여러 날카로운 질문
예수님의 권위, 세금, 부활 등의 문제에 대해
답변을 마치신 후,
이번에는 예수님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말하느냐?” (눅 20:41)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경도 그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던지신 질문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을 따라 태어난다는 말이
단순히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
그들이 원했던 바대로
위기에 있던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구원해줄 인물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눅20:44)
 
예수님의 질문이 가진 의도는
그리스도에 대해 너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림 그린 그리스도는
큰 바다의 작고 작은 모래와도 같습니다.
 
내가 그려 놓은 예수님..
내 작은 마음속에
주님을 그림 그리기에는
마음의 크기 뿐 아니라 생각의 능력,
상상력도 너무 작습니다.
 
내 마음과 인생 속에
주님이 그려주세요.
평범하고 대단할 것 없는
매일의 시간 속에
빛으로 만나주세요.
 
 
#예수님의질문 #다윗의자손그리스도
#다윗이주라부른예수님 #나는주님을그리지못합니다
#주님이그려주세요 #더욱알고싶어요
#럽앤포토 #노래하는풍경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기

살아가다가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들면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선택들 앞에서
고민하고 결정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제도 여러 도움을 구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몇 개는 거절을 하고
몇 개는 도와준다고 말했습니다.
도와준다는 말이 뭐가 어려워서
거절하느냐 물으면 할 말도 없지만
그 시간을 비워야 할 뿐 아니라
나머지 빈 시간은 그 시간을 갚으며
현실을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평범한 하루 앞에서 낙담하거나
한없이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 같은 하루 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기쁨으로 가득한 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로 구성된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했고
부활이나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안정적인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더욱 부활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을 믿게 되면
사회구조적인 개혁의 위험성을
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결혼과 대를 잇는 상황을,
부활이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질서는
전혀 다름을 말씀하셨습니다. (눅20:34-38)
 
인간적인 논리와 이해로는
가늠되지 않을 그 나라의 이야기.
영생이 그저 죽지 않는
영원한 인생의 연장이라면
얼마나 지루하고 슬픈 삶일까요?
그 나라는 주님과의 끊임없는 사귐이 있는 나라,
주님의 통치함이 있는 나라입니다.
 
사두개인이 인정하는 모세오경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눅20:37, 출3:6)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서 부활의 때를 기다리며
주님의 품에 살아가는 이들의 하나님,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는 살아 있다” (눅20:38b)
여전히 살아있는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신실하게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부활을 부정하게 되면
사두개인처럼 현세적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부활을 믿게 된다면,
정말 부활을 믿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질문합니다.
아마도 이 땅의 삶이
전부인 것 처럼 살지는 않을 테지요.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은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멈춰 서서 오늘의 하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