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걸음

나는 사람들의 일상 속 작은 행동을 보고
그 이미지를 오랫동안 잊지 않고
앨범 속 사진처럼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두한이가
며칠 동안 노숙하고 앵벌이를 한 어느 날,
나한테 심하게 야단맞은 적이 있습니다.
항상 웃던 두한이 눈에서 눈물이 찔금 나올 정도로 
혼을 냈으니까요.
골목 어귀를 걸어갈 때 
그날 밤도 어김없이 두한이가 헤헤 웃으며
내게 손 내밀어, 손잡고 걸었던 장면이라던지,,
 
얼마전, 아프리카에서 비전케어의
안과진료 캠프가 열렸을 때
구름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썼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자신들이 진료받지 못할까 봐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사람들은 몇 시간 동안 줄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권구현 목사님이
순번을 정해 종이에 번호를 적으시는 장면이라던지..
숫자 적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숫자표 하나를 들고서야 사람들은 화장실에도 가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기성 목사님이 교회 쪽으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보폭을 조절해서 걸었습니다.
나는 숫기가 없는 편이라 가던 길을 걸어가시면
마주치지 않을 거리를 유지한 채로 말이죠.
 
교회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시는데
택배아저씨가 탑차에서 무거운 짐 하나를 내리시는데
유기성 목사님이 자연스럽게 아저씨에게 다가가
함께 도우셨습니다.
그 덕분에 거리 유지를 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날 목사님이 택배차에 다가가신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택배를 내리는 일은 그 사람의 역할로
생각해버리면 그만인데
목사님은 왜 굳이 자신의 걸음을 멈추시고, 방향을 옮기셨을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보폭을 유지하고
자신이 걷던 방향을 흔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걸음을 멈추고, 다시 걷고
방향을 만들어 가는 것을 나는 유심히 살피곤 합니다.
그 각도에서 각 사람이 만드는 이미지를 앨범 속 사진처럼 마음에 담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이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부터 주일 설교로 주기도문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 내용도 좋았지만
설교를 마칠 즈음 꺼낸 목사님의 고민 하나가 너무 좋았습니다.
 
선한목자교회서는 예배를 마칠 때마다
다 함께 일어나 주기도문송으로 예배를 마무리했는데
몇 년전 부터 그만두었습니다.
이번 주부터 다시 예배를 마칠 때 주기도문송을 부르게 되었는데
유기성 목사님이 이와 관련해서 짧게 덧붙이셨습니다.
 
주기도문송 같은 영성 있는 노래도 찾기 힘들지만
곡조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우 중요한 가사가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하옵시고..’
이 가사  앞에 들어가야 할 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이 문장이 빠진 것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기도에서

이 앞 부분이 빠지게 되면

발생하게 될 심각한 왜곡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기도문송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주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의도치 않은 왜곡이
하나님을 인격적인 아버지가 아닌
기계적으로 용서를 남발하는 밴딩 머신으로
취급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던 걸까요?
가사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부분을 마음에 생각하며 주기도문송을 불렀습니다.
 
걷는 길을 잠시 멈추고
과연 이렇게 걸어가면 될까요?
다시 묻고, 내가 걸어가는 보폭과
걸어가는 방향을 질문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수없이 흔들리게 되면
그렇게 만들어진 걸음은 하나의 경향성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아무리 흔들린 걸음이라도
그 궤적은 주님의 인도하심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보시며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 하지만
가난한 자(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아멘. (시편 14:1-7) 

천국의 야생화, 연필

 

<천국의 야생화> 캘린더에 
들어갈 아가들의 디자인 작업과 출고가 
조금씩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이젤과 어울리는
나무연필 최종디자인입니다.
다음주말이 되기 전에 하나 둘, 정체를 드러내겠네요.
매년 같은 모양의 캘린더가 아니라서
캘린더 덕후처럼 저도 매년 기대하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이지만 파주에
최종 디자인 감리를 보러 갑니다.
무엇이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꽤 고단합니다.
매년 연말이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멈춰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나를 만들어 간 것을 알기에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님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일정 때문에 캘린더의 수량을 
많이 줄여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시간과 힘을
조금 비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모락모락 찐빵입니다. 
인쇄 감리를 보기 위해 백석역에 갈때마다
겨울이면 사거리 구석에 있는 만두집에 들러
찐빵 하나 베어 뭅니다.
차가워진 계절에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김을 모락모락 피어대는
만두집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법이지요.
 
p.s.
1.
주문서는 배송하기 며칠전에
일괄로 확인할 예정입니다.
입금자와 주문서를 꼼꼼 확인해서
혹시 누락된 분들은 다시 공지드립니다.
처음 주문하신 분들이 불안하신듯
확인 카톡을 많이 주시는데 
조금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수량을 추가하거나 변경하실 경우는
주문서를 한 번 더 작성하신 후
마지막 기타란에 <주문수정>을 
따로 표기해주심 될 것 같습니다. 
 
3. 

캘린더 관련한 기타 여러 사항들은 
아래 링크에 자세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캘린더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어 보신 분은
이전 캘린더의 실사나 리뷰들이 있으니 확인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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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좋은 날

첫째 아이는 모든 게 처음이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고도
그게 당연한것처럼 여길 때가 많지요.
때로는 엄격하게 대하기도 하구요.
 
온유가 어릴 적에 아내 명경이 펑펑 울면서 
전화 온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자다가 소파에서 떨어졌다고
우는 아이를 부등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온유가 처음 고열로 아파했을 때
늦은  밤에 병원과 약국마다 뛰어다니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네 살 된 온유가 간판에 붙은 글자를 읽을 때는
이 나이가 되면 글자를 읽는구나 생각했구요.
부모인 우리도 모든 것이 낯설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기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만나는 모든 것이 처음이니까요.
 
반면에 둘째는 모든 것이 보다 여유롭습니다.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한 번은 경험해 본 모습들이기에
이제는 비교할 대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소파 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제법 여유롭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지요.
첫째를 키워본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는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이것저것 항상 형이 먼저 가져가는 것 같아서
동생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존재인지 불평했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동생으로 태어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첫째에게는 늘 안쓰럽고, 미안하고
둘째는 늘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온유는 동생 소명이를 붙잡고
학교놀이를 한다거나, 미션을 만들어 주곤 합니다.
덕분에 어와나를 배우지도 않은 소명이가 누나를 따라
창세기-출애굽기  성경 노래를 다 외우기도 했지요.
그리고 요즘은 받아쓰기 놀이에 흠뻑 빠져서
소명이가 누나 덕분에
글자를 하나 둘 읽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찾은
동영상을 보고 온 가족이 배곱 빠지도록 웃었습니다.
온유가 5살이었던 3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양으로
소명이에게 학교놀이를 하고 있었거든요.
 
“에이. 그게 아니고
이렇게 쓰는 거야.”
 
“온유야 무슨 글자 가르쳐준 거야?
온유도 글자 잘 모르잖아.”
 
“야. 소명!
가 써봐 가.
가 써보라니까.”
 
“소명이가 어떻게 가를 써.”
 
“소명아 나 써봐 나.”
 
“소명이가 어떻게 나를 써.”
 
“엄마~ 여기에(책상 위에) 낙서했다! 낙서했다!”
 
그때는 이제 다 큰 아이인 것처럼
온유를 바라보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온유에게는
늘 동생 소명이를 챙기고 아껴주라고 말했었는데
동영상 속 온유의 몇 년 전 모습을 보니
단지 첫째로 태어났을 뿐,
온유도 아직 어린아이였습니다.
 
아이들을 보며 아내는 
‘오늘이 가장 좋을 때’라고 자주 말합니다.
 
사랑하기 좋은 때가 따로 있을까요?
오늘이 사랑하기 가장 좋은 날입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늦은 밤 영화 <순종> 시사회에 초대받아서
바쁜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아내와 다녀왔습니다.
짤막한 무대인사를 마치고 영화가 시작되는데
아내 옆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거의 초반부터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스갯소리로 ‘그분들은 정말 울고 싶은 날
영화관에 찾아온 걸 거야’는 농담을 했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사진을 찍고, 기획을 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니까 비평적인 시각으로
촬영이나 구도와 흐름을 찬찬히 살피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며 눈물흘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프리카 풍경은 내게 슬프거나
어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도 영화를 보며 오빠가 이렇게 
사진을 찍었겠구나. 상상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셔서 더 이상 고) 김종성 목사님의 사역을
화면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분의 사역을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우간다의 딩기디 마을과
그 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지만
그의 가족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힘겨웠습니다.
사역지에서 심장마비로 목사님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유언에 이끌리어 딸 김은혜 선교사님이
이곳 딩기디 마을에서 귀한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눈물이 적은 내가 영화를 보다가
울음을 참지 못한 몇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픈 현실을 보여준 장면이 아니라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온 
김은혜 선교사님이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
고) 김종성 목사님을 추억하며 꺼낸 몇 마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세요.
하나님은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라고
나는 자주 말을 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정말 그들을 사랑했기에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구나.
알게 된 것 같아요.”
 
아.. 이 말이 얼마나 큰 무게인지요.
김은혜 선교사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생전 목사님이 아껴주셨던 프로렌스라는 현지 아이는
벌써 돌아가신지 많은 세월이 흐른 목사님의 무덤 앞에서
마치 어제 일인 냥 한없이 그리움의 눈물을 떨구어 냅니다.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말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이 말들이 내 심장에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주인공 중 레바논 난민촌에서 사역하시는
김영화 선교사님은
난민 공동체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향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떠나지 않을게요. 
.. 가족이니까.”
 
말이 앞선 사람이 꺼낸 말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말이지만
말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까?
말한 것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살아갈 인생에 깊은 숙제를 안겨줍니다.
 

2017, <천국의 야생화> 캘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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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럽앤포토_캘린더 사전 주문 받습니다.
 
이번 캘린더의 제목은 #천국의야생화 입니다.
우현 형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 이름이 내 마음에 가득 담겼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14년전 처음 캘린더를 만들었을 때도
그 제목이 <천국의 야생화>였습니다.
어디서 피었다 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천국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풍경들을 이번 캘린더에 담았습니다.
 
이번 컨셉은 화이트큐브에 전시된
사진전시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진전시회’라는 생각으로
누군가의 책상에 선물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특별히 소나무 원목으로 제작한
이젤(easel)이 이번 캘린더의 지지대입니다.
 
이젤을 지지대로 사용한 덕분에
이전에 비해 1.5배 정도로 사진을 키울 수 있어서 
작품을 소장한다는 느낌을 배가시켰습니다.
그리고 날짜가 적힌 부분과 작품을 완전히 구분했습니다.
그래서 캘린더의 용도가 다해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 이젤, 그것과 어울리는 나무 연필,
표지 포함 13개의 작품과
추가 엽서가 들어 있는 박스 패키징으로 구성됩니다.
 
 
올해는 거의 20일 정도 앞당겨서 주문을 받습니다.
매년마다 목표는 이맘때였지만
실제로는 11월말이 되어야 준비가 되었으니까요.
이번 달 말에 유학생 수련회를 섬기게 되었는데
아내에게 캘린더 일을 맡기고 다녀오기가 미안해서
이번에는 수량도 줄이고, 주문도 당겨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수량이 부족해서 결국 추가로 제작했는데
올해는 수량을 늘리는 대신, 도리어 줄인데다가
이젤을 중국에서 수입한 후, 레이저 가공까지
몇 번의 단계를 거친터라
추가 제작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조기에 마감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캘린더 발송은 2016.11.23 부터 입니다.
 
주문하신 후 입금순을 따라 순차적으로 발송할 예정입니다.
입금순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이유는
매 년 악의적으로 장난치시는 분이 계셔서
어쩔 수 없는 조치임을 말씀드려요.
 
정가는 13000 원이며
올해도 사전주문 이벤트로 11월 15일까지
1차 할인가 11,000 원에 드립니다.
 
국민은행 846201-00-001512  (김명경) 으로 입금해주세요.
배송료는 3000원이며, 3만원 이상부터 무료배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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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

주일 오후에 온유는
교회에서 ‘어와나 ‘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마칠 시간에 맞추어 온유를 데리러 갔다가
멀리 앉아 있는 딸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사람들 몰래 하트를 보냈는데
그 찰나를 선생님 한 분이 사진으로 찍었나 봅니다.
사진을 받아보고 아내와 함께 배꼽이 빠지도록 마구 웃었습니다.
내가 저런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와나에서는 매 주 말씀을 암송하는데
복습하는 단계라서 이번 주에는
말씀 9개를 암기해야 했습니다.
교회로 향하는 내내 차 안에 말씀이 가득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여러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시국과 관련된 대통령과 그 책임에 대한 답답함들,
여러 정치적인 심각한 문제를 너머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교회의 문제까지 함께 뉴스로 접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만
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선택을 해나가는 걸까요?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믿음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일까요?
 
현실에서뿐 아니라 성경에서도
수많은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삼하3:9)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이루게 할 것이라는 이 말은
아브넬의 멋진 믿음을 드러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자신의 치부를 지적한 그의 왕 이스보셋을 협박하는 말입니다.
다윗을 대적하던 적군조차도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실속에서는 각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칫, 정치적 이념이 신앙의 옷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고
그가 왕으로 있을 때 통일 이스라엘은 놀라운 번영을 경험했지만
그는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살아갔나요?
 
우리는 자주 기도합니다.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여주세요.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세요.’
하지만 주님이 당신을 드러내시고
그의 마음을 보이셨을 때
우리는 과연 그분의 마음을 따라 순종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유석경 전도사는 아버지가 직장암으로 돌아가실 때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가능한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본인도  직장암으로 심각한 아픔 속에 있다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도
그녀는 감사와 찬양을 멈추지 않고 말합니다.
 
“숨이 멈추고 단 한 번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되지 않으니깐,
정말 나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계속해서 진리의 말씀과 아버지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생명을 주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모든 것이 주어져도 그 분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지 못할 것 같은데
모든 것이 결핍된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는 그분의 사랑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딸을 향해 하트를 보내는 사진을 보며
당신의 자녀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워 내 마음은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말씀을 통해 그분의 길을 가르쳐 주세요.
그 길 위에서 온통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도와주세요.”

절망중에 소망

 
 
주님,
나라가 너무 아프고
죄악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것 같고
이제 곧 무너질 것 같은
어려움 가운데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이 나라를 고치시고
말씀으로 한국교회를 거룩하게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소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소망을 갖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품고 끝까지 붙들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을 불쌍히 여기셔서
땅이 흔들리는 이런 시간을 통해
나라가 한 번 더 거룩하게 되는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
 
마음이 아픈 것은
내 심령 가운데도
교회 안에도
너무나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 우상들을 하나하나 없애게 해주시고
또다시 내 안에 우상이 만들어지더라도
또 그것을 없애는 작업..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힘든 그 과정을
멈추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정결한 마음으로
우상을 제거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와 우리가 되게 도와주세요.
 
우리의 실수와 죄악을 바라봅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절망 중에도 소망을 가집니다.
 
주님, 이 기도를 사용하여 주세요.
주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 

이 예배터는 가장 높은 언덕,
일본의 신사가 있던 곳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파서 만든 터입니다.
 
파고 또 파다가 바위가 너무 커서
손쓸 수 없게 된 자리가
높은 강단 자리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나오며 성도들이
직접 벽돌과 자재를 나르며
지어올린, 올해로 100년 된 교회입니다.
 
지금은 예배당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조용한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주님의 일하심을 생각했습니다.
신사터를 허물고 지어올리는 소리..
이 곳에 드려진 수많은 기도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절망 중에도 소망을 바라보겠습니다.

옷이 정말 예뻤어요

“옷이 정말 예뻤어요.”
몇 달전,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보낸 옷들을 받고
선교사님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아이들이 옷을 받고 
기뻐하던 모습, 자연스럽고 예쁜 모습을

사진으로 다 설명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해요.

웃고 있다가도
막상 사진을 찍으려면 웃음이 멈추고 얼음이 되어버렸다고 해요.
연말 캘린더 준비와 여러 일정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캄보디아로 달려가고 싶어요.
각 가정마다 옷을 전해주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혹시 다른 사람의 옷이 더 좋아 보일까봐

따로 잘 나누어 포장했어요.
 
아이들이 8명이나 되는 가정도 있었대요.
8명의 아이에게 옷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집 엄마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는
뱃속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아이들이 모두 아들이라,

뱃속 아이에게는 일부러 여자아이 옷을 전해주었다고 해요.
선교사님과 이야기 나누며
친구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당신의 사역을 몇 천 만원 줄 테니 팔라고 하신 일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친구를 돈 주고 사고파느냐.”
고 거절한 일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러고 보면 선교사님은 사역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나누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보고 감사하기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요즘 핫한 책 #성심당 을 읽다가
이들 부부가 영향을 받았다는 포콜라레 운동에 눈이 갔습니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마25:40)
이 말씀을 가지고 즉시 실천하고자 한 끼아라와 친구들로 인해
폐허가 된 도시에 작은 천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작게 시작한 운동은 현재 2만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 십 년전, 한 두명의 작은 순종이
지구 반대편, 대전의 한 빵집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친구들과 살아가는 한 선교사님의 삶과
우리 사이에도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미줄같이 촘촘한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합니다.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로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얼마나 놀라운 선언인가요?
성심당은 60년 동안 이 신념을 따라 매월 3천만 원 이상의 빵을
대전시내 양로원과 고아원 등지에 기부해왔습니다.
아.. 당장 대전에 달려가서 싶은 마음 간절한데
11월 8일 저녁에 성심당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공유합니다.
저는 선약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ㅠㅡ
 
포콜라레는 이탈리아 말로 ‘벽난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차가운 계절, 매일 마음 상하는 뉴스들이 가득하지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누군가는 따뜻한 벽난로를 피우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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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은 시대

주님 마음이 참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이것저것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생각인지 아닌지
분별하게 해주세요.
애통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 땅에 대해 애통해하며 기도할 시간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내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내 마음이 스올에 빠지는 것처럼 어둠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망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눈물의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소망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백 년 이백 년 단위가 아니라
수 세기를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시대에 소망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 아이 시대에는 작은 소망이라도 보이게 해주세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시대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지만
오늘의 발등을 비추는 주님의 말씀 보기를 원합니다.
전쟁터에서 말씀을 붙들고 찬양하였던
다윗의 영성을 부어주세요.
 
이미 전쟁터에 들어섰습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전쟁터는 뒤로 돌아 도망칠 수도 없는 곳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강한 심장을 허락해주세요.
이 세상을 능히 이길만한 심장과
골리앗 앞에서의 두려움 앞에 담대할 수 있는 심장을 허락해주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만민이 알게 하시며
내가 마음으로 깊이 눈물흘리며 울지라도
내 얼굴은 주를 바라봄으로 그 가운데 환한 빛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 앞에 의롭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가장 어린 양으로 서길 원합니다.
주님의 날개 펼치셔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주님 안에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에 앞서서 생각이 나서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함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쉽게 말하고 판단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내가 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있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도와주세요.
심판주 앞에  동일한 죄인이라 고백하겠습니다.
 
어두운 세상의 어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이 모여 빛이 되게 해주세요.
서로를 비판하지 않고 찌르지 않게 해주세요.
어두운 세상 가운데 손을 잡고 합심하여 더 큰 빛을 만들게 도와주세요.
 
우리는 힘이 없지만
주님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과 육체와 영을 정결케 해주셔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너무나 작은 빛이지만
세상이 너무 어둡기에 그 작은 빛조차도
너무나 밝은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것이 초라하다고 해서, 작다고 해서
숨기지 않게 해주시고
주님 말씀하실 때 그것을 드러내어 어둔 세상 가운데 빛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 무엇을 하든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이 거짓말 같은 작금의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구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구할 때
늘 신실하게 말씀하여 주셨고
신실하게 인도해주셨습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이 있기에
그 뜻을 신뢰합니다.
 
주님 이 기도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 한국에 돌아와서
거짓말 같은 뉴스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음에 슬픔과 분노가 가득해서
글을 쓰려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분노하고 원망하는 글은 일기장 한 켠으로 물리고
기도하며 적어간 글을 남깁니다.
부끄러운 나라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오발도 아저씨

정말 너무 너무 더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체감온도가 40도였어요.
쓰레기 마을, 안티폴로 빤따이 마을에는
쓰레기 매립과 벌레들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이 땀으로 젖을 지경이었습니다.

작고 초라한 오발도 아저씨의 집.
초라한 집이라 부르기 미안하지만
정말 작고 초라한 그 집에는 열 명의 자녀가 살고 있습니다.
치료시기를 놓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는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합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 곳을 지나치려는데

 

귀에 익은 소리가 내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의 기타연주에
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엄마가 목소리를 붙여 부르는 찬양은
화려하게 장식된 어떤 예배당보다 그 곳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군데 군데 가사가 막히는 부분에는
아이들이 찬양을 이어 부르는 모습이 얼마나 예뻐보였는지요.
주님이 이곳에 우리를 불러주셨음을 알기에 감사했습니다.
기도를 청한 Youngmi Kim 국장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후미진 이 곳에
주님의 임재가 가득함을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곳이 어디이건 임마누엘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아름다우십니다.

 

주일인 오늘은 예배와 함께
쓰레기가 가득한 까비떼 마을을 방문해서
약 100가정의 가족사진을 찍어 선물하려 합니다.
그리고 #오픈핸즈 식구들과 함께
특송으로 ‘예수사랑하심은’ 부릅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높은 보좌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이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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