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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79

나는 오늘의 시간 속에 갇혀 지내지만
주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 위에 계신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갈 뿐이다.
글과 함께 올린 이 사진은 1초가 넘는 시간을 기다려 나온 결과이다.
시간이 중첩되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나는 고작 사진 한 장 앞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차원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진 속의 몇 초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시간 자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내 눈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아도
당신은 날마다 성실하게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사55:8-11)

[내가 노래하는 풍경 #79]

내가 노래하는 풍경 #78

내가 일하는 방식처럼 주님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주님은 당신의 가장 선하신 뜻을 따라 일하신다.
내가 주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의도와 때를 따라 내가 움직여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8]

이빨 빠진 온유

“친구들과 놀때 나만 이빨 안 빠졌다고
막내 시켰거든.
그래서 나는 언제 이빨 빠지나. 했는데.. 드디어!”

온유가 이빨 빠지고
완전 신이 났습니다.
아랫니가 흔들거렸는데
메롱. 혀를 내밀다가 그만 뚝. 하고 빠져 버렸지요.
밤새 맹구 놀이를 하다가 이제 잠들었습니다.

 

이빨 빠진 아이를 보고
이만큼 자랐다는 사실이 얼마나 뭉클하던지요.

온유는 요즘 기도할 적마다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빨리 죽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엄마가 죽지 않고 자기 곁에 남아 준다면
엄마는 손 까딱 하지 않아도
자기가 요리와 청소, 설거지, 빨래 ..
몽땅 해줄거라는 공약까지 걸면서요.

차안에서 온유가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마지막 문장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철이와 희철이 어머니의 병원비, 생활비를 모으기 위해
연말부터 부지런히 뛰어다녔는데
온유가 그런 아빠에게
쉬는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쉼.. ?내일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 오늘 하루 잘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집에 갈 때 사고 나지 않게 해주시고
엄마 아빠 늙어서 빨리 죽지 않게 해주시고

소명이랑 나랑 엄마 아빠, 한 살씩 더 먹습니다.
엄마 아빠가 우리 많이 크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도 하나님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이제 소명이가 6살이 됩니다.
소명이가 유치원에 가게 될 텐데
더 지혜로운 아이로 자라게 해주시고
유치원에서 밥 먹기전에 기도 잘 하게 해주시고

아빠가 돈을 모으려고 많이 일합니다.
쉬는 시간 많이 갖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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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77

엘리 제사장 때의 어두운 사사 시대를 깨뜨릴 한 사람을 찾을 때
그저 앙숙이었던 브닌나의 갈등과 자신의 불임으로 아파하던
한나의 심정을 통하는데서 시작하셨다.
마치 사울 왕을 대신할 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아들을 찾으셨던 것처럼.

제사장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비대해지고, 악행이 심하여질수록
어린 사무엘은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으며 자라났다. (삼상2:26)
이 말은 어린아이들이 그저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말이다.
이렇게 자라나는 것은 사사 시대의 절망을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다.

비슷한 표현을 누가는 예수님께 돌리고 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2:40)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예수님에 대한 이런 표현은 그저 어린 시절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는 차원을 넘어,
말라기 이후 어둠이 가득한 시절을 깨뜨리고
온 인류의 구속주로 자신을 드릴 예수님의 일하심을 특별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7]

 

?

가난하고 통회하는 마음

사람들이 나를 보며 많은 경우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아내도 내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오빠는 잘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립니다.
밤에 깨어 나의 비천함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 몸을 떨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가 품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66:1-2)
내가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알라딘의 램프의 거인이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주님의 보좌이며,
이 온 땅이 당신의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온유와 소명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면서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화하며
당신의 말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정상에서 뛰어놀 때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비천함과 주님 앞에 두려워 떨 때
나의 가난함과 심령에 통회한 마음을
두 손에 올려 주님께 나아갑니다.
다른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다만 가난한 마음 하나 주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리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따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5-16)
아멘. 주님 이 마음 그대로 주님께 드립니다.

가난하고 통회하는 마음

사람들이 나를 보며 많은 경우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아내도 내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오빠는 잘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립니다.
밤에 깨어 나의 비천함과 불확실한 미래 앞에 몸을 떨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가 품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66:1-2)
내가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알라딘의 램프의 거인이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주님의 보좌이며,
이 온 땅이 당신의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온유와 소명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면서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화하며
당신의 말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정상에서 뛰어놀 때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비천함과 주님 앞에 두려워 떨 때
나의 가난함과 심령에 통회한 마음을
두 손에 올려 주님께 나아갑니다.
다른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지만
다만 가난한 마음 하나 주님께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리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따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5-16)
아멘. 주님 이 마음 그대로 주님께 드립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6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수많은 전쟁 기사들은 단 몇 줄로 그것을 기록하지만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싸움에서의 시간은 매우 느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의 몇 줄로 끝내버리는 전쟁의 기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셨다고 읽을 수 있다.

애굽에서의 고된 노역으로 하나님을 찾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탄식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태어난 모세는 애굽의 왕족에서 자라게 되지만
다시 미디안으로 도피하게 된다.
그는 나이 80이 될 때까지 양을 치는 목동으로 지내게 된다.
주님은 당장 애굽을 무너뜨릴 강력한 무언가를 강구하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큰 구원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무너져 내린 무능력한 노인 한 사람을 부르신다.

시간이 느리게 움직인다는 말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6]

 

?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1

“으음.. 기차소리..”
자취를 하던 시절에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전철 소리를 들었나 보다.

처음 그곳에 이사 와서는
자다말고 철컹철컹거리는 낯선 전철소리에
귀 기울이며 온갖 상상을 펼쳤는데
제법 익숙해진 후에는
더 이상 전철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졌던 꿈도, 열정도 그럴까?
같은 꿈을 계속 바라면
더 뜨거운 소망으로 타오르면 좋을 텐데..

귀에 익숙해질까 봐
더욱 내 마음을 열어야겠다.
꿈꾸는 기능이 멈춰 버리기 전에.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1]

내가 노래하는 풍경 #75

사울 왕을 버리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 유능한 누군가를 찾아서 왕으로 세우지 않으셨다.
아직 작고 초라하지만, 그래서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한 막내를 찾으셨다.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인 사무엘조차 그를 몰라볼 만큼
다윗, 그는 볼품없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기까지 성경의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흘러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신다.
시대의 위기와 절망은 이렇게 처절한데도
성경의 시간은 느리게 움직인다.
그 시간이 길지 않으면,
다윗 또한 또 한 사람의 사울 왕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은
그분의 언약적 사랑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5]

내가 노래하는 풍경 #74

시대의 절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나 자신의 한계를 볼 때마다 울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성경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은 종종 자격 없는 한 사람을 찾아와서 그를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의 일하심을 말하고 있다.

자격 없는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 해당되지만,
구원이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믿는 이는 드물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