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rt Blog:
  • All
  • Brunch
  • His work
  • Home Sweet Home
  • Notice
  • OneDay
  • TheRoad
  • Vagabond cloud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4

우리의 인생에 잦은 풍랑이 있다.
그저 위협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에 물이 가득할 정도로 매우 위태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생명의 위협 앞에 울부짖게 된다.
주님과 함께 걷는 항해인데도 불구하고
그 위협은 더욱 거세게 느껴진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눅8:24)
제자들의 다급한 외침만큼이나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환난은 심각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일하실 때 싱거울만큼 장면이 전환된다.
당신께서 일어나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거친 풍랑은 다시 잔잔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부르짖는 것이 방법인가?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로
우리가 어떻게 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구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시겠지만
시대가 악해져 갈수록 그것을 믿는 믿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4]

180도 돌아가는 얼굴

요즘은 할 일이 많아서 절대 수면부족모드 입니다.
새벽 3시까지?작업을 하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침실에 들어갔습니다.
아내와 아이는 깊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잠든 아이들의 이마에 각각 뽀뽀를 해주고
아내는 특별히 입에 뽀뽀를 해주려고
얼굴을 잡아 내게로 돌렸습니다.

“아야야야야야”

응? 응?
아내의 비명소리에
뭔가 이상해서 살폈더니
.. 바로 누운줄 알았던 아내가
엎드린 상태에서?얼굴만 옆으로?돌린 상태였습니다.
하마트면 목을 180도 돌려?놓을 뻔 했습니다.
호러영화도 아니고,?정말 큰일?낼 뻔 했습니다. ㅎㅎ

정글숲 대신

“아빠?”

“응?”

“보고 싶은게 있어.”

“뭔데?”

“악어.”
그리고 악어는 정글숲에 있어.
아빠,?데려가 줄 수 있어?”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정글숲 대신 옥상에 올라왔지요..

우리, 날씨 정말 좋아요.. ^^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3

다윗은 황망한 피난길 위 광야에서 고백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63:3-4)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았을 그 짜릿한 순간에나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궁정에 머무른 영화로운 나날 뿐 아니라,
그가 오늘처럼 아들에게, 사랑하는 신하들에게 배신당했을 때조차
다윗은 그의 손을 들어 주를 송축하고 있다.

바람이 불거나, 거친 길을 걷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신앙의 경중이 달리게 된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흔들림을 당해 보면
그때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성을 살피게 되는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3]

선해 보이는 것과의 싸움

말씀에 순종해서
아내를 사랑하려고 결심했을 때,
가장 갈등했던 부분이
선해 보이는 것과의 대결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작업하려 들 때 조차도,
주님께서 그 시간에 원하시는 것이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또는 설거지 하는 것이라면
나는 작업이나 사역을 내려놓고
설거지 하거나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의 인사

“휴우 휴..”
늘 동화같은?친구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내게?휘파람 불 줄 아느냐고 묻습니다.
친구는 휘파람 불면 어른되는 줄 알았답니다.
껌 씹을 때 딱딱딱딱 소리내면 어른되는 줄 알았답니다.

어렸을 때… 어른되는 게 꿈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도 어른 되는게 꿈이었습니다.
아니, ?나는 어른을 너머?나이 많은?노인이 되는게 꿈이었습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면 지혜로운 노인이 되어 있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인생에 질문을 한아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지혜를 말해주는 그런 현명한 노인 말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이 아니라 저절로 이뤄지는 거지만,
지혜로운 노인은 자고 일어나면 만들어 지는?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서 내가 지혜로운 노인이 되었다고
누군가를 조언하려 들면 얼마나 무책임한 말들을 쏟아내게 될까요?

친구는 지금도?이런 저런 믿음의 꿈을 꾼다고 합니다.
이걸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저걸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그냥 주님 안에 거하면 저절로 이뤄 진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꿈을 이룬다는 것은 어렵고도 쉬운 일 같습니다.

1년전 이맘때 갑자기 동생을 잃게?된 동료가 한 분 계십니다.
그렇게 동생을 잃고 가장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일은
동생에게 아직 하지 못했던 할 말이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평범의 일상의 말들이지만,?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속상할 수 없었습니다.
아픔을 겪은 후, 그 분은?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을?다음에 또 만난다는 것은
기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한답니다.

내가?오늘 갑자기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그것으로?만일 후회하게 된다면
지혜로운 말을 많이 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마땅히 안부를 물어야 할 가까운 이에게 안부를 묻지 않는?것 때문일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한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고마운 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미안한 이에게 사과의 말을,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처럼 평범한 일상의 날에
미루지 않고 말할 수 있는?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햇살이 참 좋은 아침입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2

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 받던 화가였다.
하지만 야경이라는 그림 한 장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 그림은 당시 의뢰인들이 기대했던 기념사진형태가 아니라
작가주의 형태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해야만 했다.
풍족했던 그는 이 일로 인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실력있는 화가였기에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뜻밖의 선택들을 이어간다.
그가 선택한 그림들은 그의 신앙이었다.
치열하게 믿음에 대해 고민하며 그림 속에 고백을 담았다.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그는 이 길을 고집했다.
이런 가치있는 선택과 선택과 선택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유대인 마을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하지만 후대에 그의 그림과 삶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나는 그의 선택을 가치있게 여긴다.
비록 온 세상이 그를 몰라주어도 주님이 그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2]

안마를 하면서

밀린 작업들을 하기위해
한참을 책상앞에 앉아 있었더니
어깨가 잔뜩 뭉쳤습니다.
그래서 온유를 불러서 안마를 부탁했지요.
불러서 안마를 시킬 만큼 온유가 자랐습니다.
아직 작은 아기손이라?뭉친 어깨가 풀리지는 않지만
작은 손으로 만지락 거리는 어깨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만큼 자라준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를 향해
이런 마음이 아닐까요?
크고 대단한 성과를 보고 흐뭇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으신 역량에 맞게 응원하시고 기뻐하실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의 마음을 보실 것 같습니다.

어깨를 조물락 거리는 온유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온유야, 아빠는 안마할때마다 기도한다.
“응? 에이 거짓말. 안마할 때 어떻게 기도를 해.”
“아냐, 아빠는 엄마에게 안마해줄 때 항상 기도해.
하나님 엄마를 지켜주세요.
지혜를 주세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수많은 기도를 할 수 있는걸.”

곰곰 생각하다가 온유가 결심한듯이 말합니다.
그럼 나 (입으로 기도하지 않고)마음으로 기도한다?
“응. 온유가 마음대로 해.”

안그래도 약했던 안마가
이제는 거의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기도하며 안마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이것 저것을 하면서도 우리 마음이
주님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항상 주인되어 주세요..

DSC_2689 DSC_2633 DSC_2640 DSC_2644 DSC_2653 DSC_2657 DSC_2675 DSC_2683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1

두려움에 빠지는 이유중 하나는
내 삶이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것이라면 반드시 내가 지켜내야 한다.
정말 내 것이라 가정하더라도 탈없이 지켜내기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기준에 늘 미달하기 마련이다.

분명한 기준선은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다.
기준에 미달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적어도 내 꿈이 나의 자아성취가 아니라면
그리고 내 꿈이 하나님께 이어져 있다면
우리가 가진 상당한 두려움은 힘을 잃게 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1]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0

하나님은 우리로
그 아들 예수님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하신다.(롬 8:29)

그 모양을 빚어 가기 위해 보내야 할 땅의 (크로노스의, 혹은 물리적인) 시간이 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특별한 고난과 시간을
통해 순종함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피조물인 우리 또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가진 힘과 노력으로 넘지 못할 한계와 두려움 앞에
탄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탄식과 비교할 수 없는 탄식함으로 나의 연약함을 돕는 분이 계신다.
온 만물의 생명이 되신 분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