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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67

하나님께 지혜만을 구하면
지혜로운 자의 그것은 썩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빛나는 지혜를 더하신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7]

때마침 생일선물

새벽부터 아픈 희철이를 만나러
세브란스 병원 갔다가
사랑하는 친구 후배들과 기도릴레이.
늦은 저녁에 비로소 집에 귀가.

타이밍 맞춰서 도착한 유리가 보내준 선물,
앗!! 그러고 보니 오늘 내 생일이었네. ^^

#내친구 #채유리 #뽀짜툰 #때마침생일선물 #고마워 #흥해라

내가 노래하는 풍경 #66

사단이 준 생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에 자리 잡게 하지 마라.
굳어지고 또 굳어지면
가룟 유다처럼 되지 않을 자신 없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6]

내가 노래하는 풍경 #65

우선 성공한 후에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식의
마음만 먹으면, 때가 된다면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흘러가는 물길을 생각처럼 쉽게 바꿀 수 없다.
대부분 흐르는 데로 살아간다.
물길을 바꾸려면 오늘의 작은 생각과 행동에서 부터다.
주님의 마음을 살피고, 거기에 대한 아주 작은 순종.
그것이 나의 미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5]

내가 노래하는 풍경 #64

사단을 대적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
흑암의 세력을 도발하는 행동은 나를 적대하는 세력을 키울 뿐인가?
그것은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밟지 않으면
잠자는 사자는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내 의도처럼 사단은 정전(停戰)협상을 받아 들일 것인가?
하지만 사단은 잠자는 사자와 같지 않다.
사단은 먹이를 움키려고 애쓰는 굶주린 사자와 같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사단은 이미 나의 대적이다.
진짜 전쟁은 어느 느와르 영화에서처럼
총부리를 서로 향한 채 비둘기가 날아 다니는
슬로우 비디오를 연출할 만큼 감상적이지 않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을 묶을 때
그는 예수님의 이름 아래 굴복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왕의 이름이며
그의 한 방울의 피는 사단을 굴복시키고도 남는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4]

첫 장은 족보

마태복음의 첫 장은 족보로 시작됩니다.
무언가 이야기가 시작되기 이전에
마태는 보다 의미심장한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당시 유대인들에게
마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를 통치했던 늙은 헤롯은
왕의 혈통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온전한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로 이어지고
다시 열왕들로 이어지고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몇 천년간 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바로 그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족보속에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과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로 대표되는 선왕의 이름 뿐 아니라
아하스,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들의 이름,
그리고 무엇보다 네 명의 이방인 여자들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다말과 라합, 룻과 밧세바.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으로 인해
위태해질 수 있는 왕권에 대한 위협을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위에 열거했던 이름들은
왕의 족보에 들어가면
치명적으로 수치를 당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들과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로 부터 창녀취급을 받았으며,
라합은 여리고성의 배신자, ..
특히 밧세바는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이 이름을 배경으로 한?비정상적인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유대인 뿐 아니라 세상의 구주이시며,
죄인들을 위한 메시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 첫 장을 통해
더디 이루어 진다고 믿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되지 않을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 우리 삶 가운데서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3

다윗은 왕이었지만
나단의 지적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왕권을 위한다면
사울처럼 범죄 한 그 순간에도 사무엘이 자신을 선대하고 있다는 모양을
백성들에게 보이려 한 것처럼
다윗도 품위를 유지했어야 옳지 않은가?
그는 중대한 길목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옳은 결정을 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의 오늘을 살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3]

천국에 피는 꽃

사진을 정리하다가 어느 봄날에 찍은
사진을 보고는 웃음을 짓게 됩니다.

따사롭고 한가했던 봄 햇살에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근처 공터에 나갔습니다.
황사 바람을 예보한 탓에 예상대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이 넓은 공터를 우리 아이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삼십분이 넘도록 온유는 모래를 모았습니다.
자그마한 손이라 얼마 모으지도 못 했습니다.
소명이는 누나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돕기로 합니다.
이게 소명이의 매력입니다.
자기는 돕는다고 하지만 도리어 엉망이 되어버리곤 하지만 말입니다.
“됐다.”
온유가 보기에 어느 정도 모래언덕이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어디서 주워다 놓았는지 나무 가지 몇 개를 주워다가
모래 언덕에다 조심스레 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은 손을 모아 기도했습니다.
“천국에 꽃이 피게 해주세요.
그 꽃에는 향기가 나게 해주세요.”
온유가 손을 모아 드린 기도가 듣기 좋았습니다.

“아기를 못 낳는 사람은 아기를 낳게 해주세요.
아픈 사람은 낫게 해주세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세요.”
아이의 입술에 이런 예쁜 말들이 나올 때면
나는 가슴이 뭉클해서 꼬옥 안아버리고 싶습니다.

아이의 말을 내가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천국에 꽃을 피우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모래를 모으며 땀 흘렸겠지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나뭇 가지들에 마법처럼?꽃이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스운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온유가 바라는 데로 천국에 꽃이 피어나고,
그 꽃에 싱그런 향기가 피어 나서
아기를 못 낳는 사람은 아기를 낳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병이?낫는 일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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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질문

밤에 말씀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자극적인 영화를 보면
그 잔상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아
간혹 꿈속에서도 그 장면과 대사가 생각나는 것처럼
잠들기 전에 말씀을 묵상하려는 이유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습관이 늘 평안하고 좋은 밤을 약속해 주진 않습니다.
꿈결에 말씀은 자꾸만 내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시선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밤새 뒤척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가나로 왔을 때
갈릴리인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그 환영은 예수님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에 반응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같은 본문에서 갈릴리인과 대조되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자식의 병 때문에 가버나움에서 27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가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표적이 아닌 말씀만을 주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요4:50)
이 문장 앞에서 믿고 자신의 길로 돌아간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경험은 가족의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갈릴리인과 왕의 신하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주님을 바라보았지만,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는
왕의 신하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내게
주님은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 앞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62

스마트폰,
너무 유용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시간을 죽이기 가장 적합한 도구입니다.

내게 빈 시간은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었지만
온갖 뉴스와 정보와 볼거리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효율성을 쫓아 밀려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요?
이 땅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대화가 비효율적인가요?
거룩한 낭비를 찾고 지켜야 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