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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113

금은 불을 두려워 않는다.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주님.
상황 앞에 주님의 사랑을 저울질해서는 안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3]

하나님이 없으면 어쩌냐

소명이가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속상한 소명이에게 누나 온유가 말했습니다.
“소명아, 우리 하나님께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같이 잘 찾아보자.”
“칫, 하나님이 세상에 어디있냐?”
이제 5살 된 장난꾸러기 소명이는,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말해버립니다.
그런데, 소명이의 말에 온유가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어떡해요.
소명이가 하나님 없대요.”
그리고는 소명이를 붙들고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소명아, 네가 유아부 나가잖아.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우리가 함께 외웠잖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어쩌냐?”
그러게,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정말 어쩌나요..?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은 죽으셨다.
그리고 완전히 죽으셨다.
십자가형은 고문과 같아서
숨을 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다리를 이용해서 몸을 올려 숨을 쉬려 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에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고 싶지 않았기에
빌라도에게 시체의 다리를 꺽어서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산 사람을 십자가에서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양옆 죄인들의 다리를 꺽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다. 그가 찔린 옆구리의 피와 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예수님은 말씀을 성취하셨다.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출12:46)
유월절 규례다.
그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2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해와 달과 비교한다.
빛나는 해. 마저도 그 비췸이 쓸데없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분은.
내가 소망하고 있는 분은 그런 분이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2]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0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사람 같다고 여기는 아이야.

너로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으셔서
그동안 커다란 벽 같은 절망의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로 만들겠다.

목이 말라 갈증으로 혀가 마를 때도
네 앞에 강을 열고 마른 땅을 샘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광야에 백향목과 여러 나무들이 자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사 41 :14~2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9

가리어진 것을 깨닫는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투명한 은혜 가운데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사는 삶이다.
그것을 위해 비본질은 조금 버려져도 된다.
사단은 그 역을 말한다.
비본질을 위해 본질을 내려놓으라고..
본질을 향하는 사랑의 고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경작해 나가는 일이다.
하나님, 오직 당신의 은혜 아래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9]

 

?

회의론자, 이상주의자

나는 지독한 회의론자이며,
동시에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간혹 걷다가 멈칫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주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지 않습니다.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알 수 없는 회색지대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말씀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결별하는 장면입니다.
롯이 택한 땅은 애굽땅과 같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은 땅이었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선택해야 할 노른자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결말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택한 땅을 주목해서 보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내가 가진 생각과 판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선택의 기준은
이 일에 하나님은 어떤 마음일까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여러 선택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혹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련해 보이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미천한 내 인생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믿음의 결정과 도약을 뛴다고 해서
눈앞에, 혹은 손에 잡히는 이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과 도약을 주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지만
우리 주님은 여전하십니다.
주님이 변하지 않았기에
믿음의 결정과 도약도 여전하길 두려운 마음을 품고 기도합니다.
믿음의 결정과 도약은
마음이 굳센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결정과 도약을 한 사람은 얼마간
얼마나 마음이 두렵고 떨리며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인생을 걸어가는 이유는
인생을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정 후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세상을 긍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냉혹해서 낭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자주 생각합니다.

사울 왕을 피해 다윗이 도망할 때
사람들은 다윗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제대로 믿고 있었을까?
도저히 성취되지 않을 오랜 전설처럼 여기고 있진 않았을까?
피해 망상을 가진 절대 권력자는 다윗을 두려워했지만
사울왕의 수하를 비롯해서, 다윗의 추종자들까지
이성적인 판단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다윗이 왕이 된다고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도망하며 겨우 자기 몸 추스르기도 힘든 도망자의 인생을
그렇게 상상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다 보지 않으면 너무 많은 비약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독한 회의론자이지만,
누구보다 기뻐하며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이유는
절망 중에도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기름부음 받은 다윗의?인생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주님은 여전히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8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한다.
하지만, 기도를 멈추게 되면 영의 호흡이 멈추게 된다.
사단은 미혹한다.
자유하고 쉬라고..
그렇게 쉬다 보면 편하지만
평강과 편함은 다른 것이다.
과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7

우리는 감정으로 기도하기를 즐긴다.
그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울음이 없어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에 집중되지 않아도 믿음의 의지가 있다.
“하나님, 이 기도를 당신의 뜻대로 사용해 주세요.”

밭 가는 농부가 하루 종일 땀을 흘려도
지나간 자리는 그저 땅이 패였을 뿐
생명의 흔적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땀 흘린 수고 아래,
보이지 않는 영역에 이미 생명이 태동(胎動) 되고 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