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rt Blog:
  • All
  • Brunch
  • His work
  • Home Sweet Home
  • Notice
  • OneDay
  • TheRoad
  • Vagabond cloud

13년만의 만남

75세 때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후 용기 있는 선택과 기도와 전쟁,
또한 여러 실수를 경험하며 24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사라와 하갈의 반목과??인간적인 실수를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후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십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주님은 더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못할거라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하나님과의 만남을 마치 빌보 배긴스가 지난날을 추억하는것처럼 살지 않았을까요?
내게 실망하신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나와 관계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지난 24년동안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후사를 약속하셨지만, 도무지 잡히지 않는 약속을 당황해 하지 않았을까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속에
아브라함의 회의와 조소가 보이는 듯 합니다.(창17:18)

하나님은 13년간의?긴 침묵을 깨고 다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좀처럼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던 약속들이 보다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불신과 실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구체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어느새 아브라함은 죽을 때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고
그의 아내 또한 경수가 끊어져서 현실적으로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네가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긴장 하나 없이 단순하고도 지루하게 세월을 기다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기전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의도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만 할 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방식으로, 우리에게도 그런 방식을 택하십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우리 삶의 어느 때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주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확실하거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수면위에?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내가 다 만지지 못하는 시간조차도,
당신은 한 번도 그 계획을 거둔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당신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론 비이성적이고, 때로는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나를 어떻게 찾아오셨을까?
이런 나를 왜, 이토록 기다려 주실까?
이런 나를?택하여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나를 넘어서 이 시대의 답답한 현실 앞에 주님은 과연 일하실 수 있으실까?
내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며,
주님은 당신의?계획을?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주님의 그 완전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완전함에?부끄러움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여기서?완전이란 말로 사용된 ‘타밍’이란 단어의 의미는
흠없는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바라시는?우리의?온전함과 완성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단순히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는?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한 투쟁도 아닙니다.
그것은 얻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역. 그 자체도 우리의?완성이나 온전함은?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로 기뻐해야 하지만, 먼저는 주님 그 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마치 질그릇에 담겨 있는 보배처럼
질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보배가 너무 귀한 것처럼
전혀 온전해 보이지 않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그런 단어를 허락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나와 함께 임마누엘로 거하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왕이신 주님으로 내 마음에?모신다면,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소명이는 요즘 밥을 먹으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심지어 치카치카 양치하면서
흥얼흥얼 고요한 밤을 노래부릅니다.

분주한 연말이지만
아이의 노랫소리에
성탄절이 가까워옴을 느낍니다.
누추한 이 땅에 오신 세상의 주인.
내 마음에 모실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38

하나님의 마음은
힘든 중에, 아픔 중에, 고난 중에,
더욱 알게 됩니다.
?

그것이 광야가
존재하는 이유일까요?

 

[노래하는 풍경 #38]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르바르’ 입니다.
미는 from 이란 뜻을 지녔고
말씀이라는 ‘다바르’ 에서 이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는 광야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전혀 볼 품 없어 보이는 이 곳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모두 거쳐갔나봅니다.

사람의 눈에 전혀 쓸모 없어 보이는, 버려진 이 곳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제련소일 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40년간 이 광야의 길을 걸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 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로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2-3)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당신의 호흡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듯,
우리를 살게 하시며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만드셨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1:1)

 

불확실성 속에
어디로 가얄지 모를 우리의 처지와 어둔 시절이
마치 광야와 같다면
우리를 궁극적으로 살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불확실성의시대
#마치광야와같다면
#살게하시는등불은
#예수님이십니다
#광야는
#미르바르
#하나님이말씀하시는곳입니다

#노래하는풍경
#럽앤포토 #천국의야생화

캘린더 마감 공지

2016년 캘린더는
내일 모레(수요일)까지로 조기 마감하겠습니다.
모레까지 주문을 받으면 배송하고
그 후의 문제들을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캘린더 이외에 남은 작업과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조기 마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과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할 시간은
확보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조기마감으로 인해
남을 캘린더 수량들은 교회와 복지관, 필요한 곳등과 나누고
일부는 내년에 네팔에 들어갈 때 사용하려고 생각중입니다.
사실?이번 캘린더의 주제를
<네팔>로 잡을 때 고민이 있었습니다.
판매하기 위한 주제로는 상당히 무겁지 않을까?
네팔을 주제로 삼는다면
캘린더가 아니더라도 여러 방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캘린더를 받아들고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이 아니었다면 이 주제를 다시 잡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기도가 가장 필요한 타이밍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할 때 옆집에서, 친한 친구도
차 마시러 들렀다가 일손을 도와주었습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그들과도 함께 기도했습니다.
1년동안 캘린더에게 할 일을 명령했습니다.
그것은 캘린더가 놓여질 각 가정 뿐 아니라,
각 가정이 네팔을 바라보며
기도할 것에?대한 마음까지 담았습니다.
이제, 2015년 12월도 딱 보름이 남았네요.
감사합니다.
————————–
9월
부모 없는 아이들,
가정환경 때문에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가진 전 재산을 팔아서
이곳에 학교를 세우신 분이 있다.
몸을 돌보지 못하고
십 여년을 달려온 탓에 여러 병증으로 고통하시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다시 열심을 내셨다.
이 학교도 두 번의 강진을 피해가진 못했다.
하지만 병들고 나이 많은 선생님을 넘어뜨리진 못했다.
“지금까지 기적처럼 오게 하셨는데

내일 또 다른 길이 열리겠지.”

 

나는 선생님의 눈에서 절망을 찾을 수 없었다.

1. 입금하셨지만 확인이 안되서
아직 발송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희서아빠>로 입금하신 분은 연락바랍니다.
2. 주문확인, 입금확인,?수량변경등은
아내 명경(카카오톡 아이디 : peace0109)에게 문의해주세요.
3.?캘린더 주문 관련된 내용과 실사이미지와 리뷰등은

아래 페이지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http://lovenphoto.com/work/calendal

?

고독과 믿음과 변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차이와 관계에 대해 나는 늘 관심을 가집니다.
이 두 차원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를 고민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동의?작품들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지방에 내려갔다가 비는 시간을 틈타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시간과 공간, 차원을
유기적으로 연출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왜곡된 차원과 구성을?그냥 나열할 수 있도 있겠지만
그는 꽤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흥밋거리와 상관없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내게
‘고독과 인내와 믿음’ 같은 주제에 대해서 질문하곤 합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인 쿠퍼와 아멜리아는 모선에서 밀러 행성을 확인하러 갔다가
사고로 인해 시간을 지체하게 됩니다.
그들이 서둘러 모선으로 돌아왔을 때
모선에서의 시간은 자그마치 23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들의 만남 앞에 내 마음이 요동했습니다.
중력 차이로 인한 시간의 왜곡 때문에
쿠퍼 일행에게는 3시간이 흘렀지만,
기다리던 로밀리에게는 23년의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늙어버린 로밀리는 ‘쿠퍼 일행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할 거라 믿었다’고 말합니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감독은 현실과 꿈,
꿈과 꿈같은 이질적인 차원을 설득력있게 연결 짓습니다.
첫 장면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꿈의 더 깊은 꿈(림보)속에 잠들어 있는 사이토를 찾아갑니다.
영화의 설정상, 꿈을 꾸면 현실보다 수 십 배의 시간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데
사이토는 자신의 꿈속에서 이미 자신의 전 생애를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전부라고 느낍니다.
꿈을 현실로 믿고 사는, 이미 의식이 혼탁해진 사이토는
주인공 코브의 설득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
꿈이 현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믿음,
동료가 내게 돌아오고 있다는 믿음
실제적인 생애 속에서 간헐적이고 희미한 진리를 쫓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을 기다리는 동료들의 모습에 나는 한참 동안 망연자실했습니다.
가상이지만 실제적인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그들의 고민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진리를 변증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보이는 현실만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진리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노래하는 풍경 #37

“내가 이만큼 수고했다.”
가 아니라,
“나 같은 작은 자를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37]

p.s 언젠가?여행 중에

대기업 사장님이 우리와 동행했습니다.

그분이?나와 영상을 하는 동생들에게
이런 작업을 하게 되면
돈은 못 벌지 않느냐며 조소했습니다.

돈도 못 버는 작업을
왜 하느냐는 이유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나는?그분에게?작업과
생의 의미에 대해 증명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동생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자랑할만한 작업들의 제목도 열거했습니다.

그런데,?그날?밤에,
나는 처절하게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이 길 위에 서 있는 이유가
마치 다른 좋은 기회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듯,

내가 잘 난 듯이 떠들어 댔지만

정답으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은?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허물 많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셨다는 진실을?
그 분에게 전하지 못 했습니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밤,
나는 다시 정정하며 주님께 대답했습니다.
“자격 없는 저에게
은혜를 주시어 살 수 있게 하신,
나를 불러 주신 그 은혜만으로
나는 감사합니다.”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17:10)

#나는무익한종
#정답입니다
#그래서회개합니다
#주님을위한포기가아니라
#주님의잔치에
#나를초대해주셨습니다

#럽앤포토 #천국의야생화
#노래하는풍경

동화같은 아이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뜻밖의 웃음이 가득합니다.
“얘들아, 여리고 성은 누가 무너뜨렸을까?”
“저는 아니예요. 소명아 너가 그랬니?”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누나가 그랬어.”
“난 아냐. 소명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
그러면 야단맞지 않거나, 덜 야단맞을 수 있어.”
그렇게 둘이서 토닥거리며 장난치다가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다 보면
그 속에 작은 보석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있잖아요. 하나님은 무서운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으응. 다른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하나님은 무서워요.
죄를 지으면 무서우시잖아.
그런데 하나님은 좋으신 것 같아.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잖아.”
혼자서 종알거리는 온유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누나 옆에서 말을 주워 받은 소명이가 이야기를 거듭니다.
“아빠, 저도 하나님이 무서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좋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친구잖아요. 히히히”

노래하는 풍경 #36

여행 중에 낯선 숙소에 묵게 되면
짐을 풀기 전에
그곳에서 먼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곳에서
있었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옳지 못 했던 행동과
모든 음란과 범죄를?회개합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주님의 보혈로 덮으시고
이 공간을 전혀 새로운 곳으로 사용해 주세요.”

나와 상관없었던 죄악이지만,
내가 그 죄악을 대신하여
회개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이 내게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죄가
우리의 죄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노래하는 풍경 #36]

#교회의죄는
#교회만의죄가아니라
#몸을이룬
#나의죄이기도합니다
#주님용서해주세요

내게 고난이 없었다면

칠십 대의 장로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많이 바쁘시죠?”
이 말 앞에 나는 차마 만남을 미룰 수 없었다.
아내와 자녀들을 안타깝게 잃으시고, 셀 수 없는 질병 때문에
매시간 약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분이시다.
하지만 예수님을 얘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나와 함께 하는 두 시간 정도가 그렇게 행복하시단다.
수많은 질병을 위해,
그리고 아프시지 않기를 기도하겠다는 내 말을 가로막으셨다.
“이 질병들은 내게 가시와 같지만
내가 기도하면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치유하시면
나는 또 아버지를 떠나게 될까 봐
이 질병을 감사함으로 품고 살아가고 싶어요.”
장로님은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는 거짓 평화를 누리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헤어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걸음조차도 쉽지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의 고통 속에서
마음 깊이?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만일 내게 고난이 없었다면
나는 부족하거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라
예수님을 만나지 못 했을 거예요.”

질병은 질병으로서 그에게 충분히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어서
그의 무게들은 도리어?감사의 제목이라 말씀하신다.

노래하는 풍경 #35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칼을 잡아 그 아들을 잡는 그 장면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전후 맥락을 뺀
그 장면만으로는 분별력 없는
노인의 미친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쉽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개인의 특성이나 기질은 둘째 치고서라도,
개별적인 자신만의 사연이 있고,
주변의 상황이 있으며
그 행동에 숨은 동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시를 쓰며 노래하는 다윗 같기를 바랄 수 없고
다윗에게 바울 같지 않음을 탓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개별적의 삶을 살아가며,
동시에 그리스도의?몸을 이루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35]

#개별적인삶
#동시에
#그리스도의몸
#바울같지않은다윗
#다윗같지않은바울
#다른사람의인생
#판단할수없습니다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