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풍경 #454

나는 도무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베란다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
학교 다닐 적에는 답안에 장난도 쳐보고
하루는 재미있었지만
그 재미가 며칠을 가지 않습니다.

허기진 세상에서
재미를 쫓거나
허무를 느끼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채울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또한 하루 이틀이 아니라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라면,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만족할 수 있겠다고 믿어 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 구걸하는 사람은
나의 모습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으로도, 은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주님이 채우셨습니다.
언젠가 촬영 때문에 미국에 있을 적에
주님이 내 마음에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솔로몬에게 물으신 것처럼
“너의 소원이 무엇이니?”

나는 그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주님이 보고 싶습니다.”
내 소원은 정말 그것이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주님을 보는 날에
우리는 그 기쁨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노래하는 풍경 #454>

 
 
 
 

노래하는 풍경 #453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편이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가진 마음의 방향을 살피려 합니다.
마음의 방향을 알게 되면
곧 그들이 걸어가게 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난 한 사람은
좋은 땅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공간과 비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거친 아스팔트 틈 사이로
맨드라미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라면
땅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열매를 맺으려면
씨를 뿌려야 하며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건강한 싹을 띄우기 위해서는
좋은 땅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하는데
누군가는 다른 이를 위해
끊임없이 땅을 갈려 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453>

노래하는 풍경 #452

“우리는 떠나지 않을게요.
.. 가족이니까.”

시리아 난민들에게 꺼낸
선교사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말이 앞선 사람이 꺼낸 말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말이지만
말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까?
말한 것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살아갈 인생에 깊은 숙제를 안겨줍니다.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말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노래하는 풍경 #452>

노래하는 풍경 #451

제가 입술을 열어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가 숨쉬듯이 기도하고
숨쉬듯이 주님을 만나고 구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주님이 없는 것처럼 돌아가고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호흡하는 것처럼
그렇게 숨쉬는 것처럼
매순간 주님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주님의 호흡을 느끼길 원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451>

노래하는 풍경 #450

주님,
나라가 너무 아프고
죄악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것 같고
이제 곧 무너질 것 같은
어려움 가운데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이 나라를 고치시고
말씀으로 한국교회를 거룩하게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소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소망을 갖습니다.
이 땅에 소망을 품고 끝까지 붙들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땅을 불쌍히 여기셔서
땅이 흔들리는 이런 시간을 통해
나라가 한 번 더 거룩하게 되는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

마음이 아픈 것은
내 심령 가운데도
교회 안에도
너무나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 우상들을 하나하나 없애게 해주시고
또다시 내 안에 우상이 만들어지더라도
또 그것을 없애는 작업..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힘든 그 과정을
멈추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정결한 마음으로
우상을 제거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한국교회와 우리가 되게 도와주세요.

우리의 실수와 죄악을 바라봅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절망 중에도 소망을 가집니다.

주님, 이 기도를 사용하여 주세요.
주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노래하는 풍경 #450>

그제 사진 찍은
이 예배터는 가장 높은 언덕,
일본의 신사가 있던 곳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파서 만든 터입니다.

파고 또 파다가 바위가 너무 커서
손쓸 수 없게 된 자리가
높은 강단 자리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나오며 성도들이
직접 벽돌과 자재를 나르며
지어올린, 올해로 100년 된 교회입니다.

지금은 예배당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어서
조용한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주님의 일하심을 생각했습니다.

신사터를 허물고 지어올리는 소리..
이 곳에 드려진 수많은 기도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절망 중에도 소망을 바라보겠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449

주님 마음이 참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이것저것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생각인지 아닌지
분별하게 해주세요.
애통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 땅에 대해 애통해하며 기도할 시간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내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내 마음이 스올에 빠지는 것처럼 어둠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망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눈물의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소망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백 년 이백 년 단위가 아니라
수 세기를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시대에 소망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 아이 시대에는 작은 소망이라도 보이게 해주세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시대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지만
오늘의 발등을 비추는 주님의 말씀 보기를 원합니다.
전쟁터에서 말씀을 붙들고 찬양하였던
다윗의 영성을 부어주세요.

이미 전쟁터에 들어섰습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전쟁터는 뒤로 돌아 도망칠 수도 없는 곳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강한 심장을 허락해주세요.
이 세상을 능히 이길만한 심장과
골리앗 앞에서의 두려움 앞에 담대할 수 있는 심장을 허락해주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만민이 알게 하시며
내가 마음으로 깊이 눈물흘리며 울지라도
내 얼굴은 주를 바라봄으로 그 가운데 환한 빛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 앞에 의롭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가장 어린 양으로 서길 원합니다.
주님의 날개 펼치셔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주님 안에 쉼을 얻기를 원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에 앞서서 생각이 나서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겸손함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쉽게 말하고 판단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내가 의로운 분노를 가지고 있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도와주세요.
심판주 앞에 동일한 죄인이라 고백하겠습니다.

어두운 세상의 어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이 모여 빛이 되게 해주세요.
서로를 비판하지 않고 찌르지 않게 해주세요.
어두운 세상 가운데 손을 잡고 합심하여 더 큰 빛을 만들게 도와주세요.

우리는 힘이 없지만
주님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심령과 육체와 영을 정결케 해주셔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너무나 작은 빛이지만
세상이 너무 어둡기에 그 작은 빛조차도
너무나 밝은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것이 초라하다고 해서, 작다고 해서
숨기지 않게 해주시고
주님 말씀하실 때 그것을 드러내어 어둔 세상 가운데 빛이 되게 해주세요.

주님, 무엇을 하든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이 거짓말 같은 작금의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구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구할 때
늘 신실하게 말씀하여 주셨고
신실하게 인도해주셨습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이 있기에
그 뜻을 신뢰합니다.

주님 이 기도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노래하는 풍경 #449>

노래하는 풍경 #448

한 발만 내딪으면
당신은 내게 은혜의 강물을 부으실텐데
나는 걸음을 내딪지 않고 있네요.

주님 죄송해요.
당신이 흘리신 그 보혈을
나는 또 얼마나 자주 덮어야만 할까요?

당신께 다가갈래요.
더 가까이 다가갈래요.
더 알고 싶어요.

그래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누군가 보다 더 죄송해요.
그래서 천국이 더욱 그립습니다.
당신을 못 박지 않고 살고 싶거든요.
주님의 영광, 주님의 나라,
주님만 나를 다스려 주세요.

<노래하는 풍경 #448>

노래하는 풍경 #447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누군가를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비현실적인 삶으로 이끄는것은 아닌가를 고민했습니다.

오늘 걷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또 한 걸음 가자.”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또 한걸음 걸어보려고 합니다.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말씀에 순종했을 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는 길을 걸을 때
그 길 위에 제가 던진
질문의 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447>

노래하는 풍경 #446

참 연약한 자를 모으셨습니다.
연약한 자들이 모였다면
연약함이 드러나야 할텐데
놀랍게도 거기서 주님의 크심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 위대함이라는 단어속에
주님의 섬세하심과 크심과 거룩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약한 손을 붙잡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노래하는 풍경 #446>

노래하는 풍경 #445

삶이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고
기대하던 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인생을 살며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신
주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는 풍경 #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