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풍경 #531

이 땅의 승리를
사모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땅의 안정을
사모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 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그 뜻이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풍경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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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30

내 상황이 어떠하던지
내 마음이 어떠하던지
주와 함께 함을 기뻐합니다.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해서 기쁩니다.
주님도 나와 함께 해서 기쁘시죠?”
 
 
<노래하는 풍경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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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9

넘어야 할 산이 있고
하나님께 붙들고
기도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 일들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일들 가운데서
일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
예측못할 미래의 결과를
알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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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8

너의 기쁨의 이유가 무엇이냐?
 
우리 안에 있는 예수그리스도
그 분으로 말미암는 기쁨입니다.
 
주님 주신 마음과
주님 주신 기쁨이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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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7

지혜있는 사람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요셉과 다니엘을 말합니다.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것입니다.
 
 
<노래하는 풍경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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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6

부모를 통해
아이들은 하나님을 그리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동시에 부모는 아이들에게 결핍을 가르쳐 줍니다.
 
아이들에게 결핍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게 되면 부모와 자녀 둘 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풍경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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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5

사람들은 결과를 봅니다.
이미 일궈놓은 곡물들을 봅니다.
하지만 그 열매들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싸움의 시작은 
언제나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을 입성할 때도,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용기있는 자가 
그 시작점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작고 연약하더라도
주님에 대한 믿음이
시작이었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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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4

“오늘 나와 함께 살자, 
오늘 나와 함께 걷자.
 

오늘처럼 내일을 걸으면 될거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내 자녀야, 내게로 오렴.

 
 
나와의 시간은 인고의 시간이 아니란다.

즐겁고 기쁜 매일이 될거야.
사람들은 그런 너를 보고 혀를 차겠지만
그런 모습은 성경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단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광경을 생각해 보렴.
나무를 자르고, 못을 치고,
옷깃으로 땀을 닦아내는 풍경도 생각해보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보았겠니?

하지만 방주에 탄 자만이 나의 구원에 참여했단다.
그들은 울며 방주의 닫힌 문 앞에서 후회했을거야.

 

하지만 그 때도 나는 울고 있었단다.
나를 이해할 수 있겠니?
방주가 완성될 때까지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그들이 내게로 돌아오기를, 회개하기를 기다려 왔는지 아니?
심판의 때보다 기다림의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길었단다.

 

너는 내 기쁨에 참여하렴.
많은 이의 마음을 두드리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렴.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막지 못한단다. (신 32:39) “
 
 
<노래하는 풍경 #524>
 
 
“안녕하세요? 드릴 게 있어서요.”

“네?”

그 분이 내게 주신 것은
문화상품권 세 장이 들어 있는 봉투였습니다.
고마움을 표시하며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얼마전부터 하나님이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순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내게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하나님이 오늘부터
늘 가지고 다니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가지고 온 날, 나를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헤어지며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선물을
받는 게 낯설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문화 상품권 세 장으로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이 내게 전해주셨다는 이 선물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받으면 될까요?
 
 

 

‘여수룬’은 똑바르다, 올바르다. 라는 뜻에서 나온 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여수룬으로 불린 이유는

그들이 선한 행동을 해서 불려진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여수룬은 기름져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해져서

하나님을 버리고 그 구원자를 업신여기게 될 것입니다. (신32:15)
 
이것은 모세의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래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지만,
이 노래를 기억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을 숨기게 되면
마침내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두고 보겠다고 하십니다. (신32:20)
하나님이 당신의 얼굴을 숨기시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 분과 관계가 단절되면

그저 역동적인 삶을 살지 못할 정도로 생각합니다.
선교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막연한 우리의 바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이 땅에 수많은 신이 있고, 그 신들이 이 땅을 떠받치고 살며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종교를 확장하는 취향을 가지신 분으로 여긴다면 
그저 우리의 관심을 받기 위한 질투의 화신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이 땅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나를 지으신 분이시며,
나의 주인이시며, 온 땅의 주인이십니다.
 
내 몸은 내 것인데,
그 분께 내 사랑과 헌심을 나누어 드리는 개념이 아닙니다.
내가 인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나는 원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나는 나의 것이다! 라고 선언하며
하나님과의 분리를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엄밀히 말해 독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인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주인을 통칭하면 우상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들은
그저 돌이나 나무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은
바로 구원자를 업신여기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온갖 재앙으로 그들에게 퍼붓고
당신의 화살을 모조리 그들에게 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32:23)
하나님의 화살이 다 할 때까지 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당신의 적대자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적대자가 되면 우리는 결코 살지 못합니다.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늘에서 화살을 쏜다고 생각해 보면
하늘은 화살로 가득차 암흑이 될 것입니다.
 
그 하늘이 땅에 박히면 살아서 서 있을 생명체도, 빈 자리도 남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을 때
이 땅의 모든 것은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은
자신이 겪고 있는 저주와 슬픔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외면한 결과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외면했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지 않았다고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그 곳에는 수많은 전갈과 독사가 있었습니다. (신8:15)
하지만 그들중에 전갈이나 독사에 물린 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했을 때
그들은 광야의 불뱀에 물려 진짜 죽게 되었습니다.
불뱀은 그들이 거닐던 곳에 늘 있어왔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보호받고 있었음을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죽을 것 같은 상황들은 

실제로 죽게 만드는 요소들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그들을 죽게 만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으며
구원자와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이 죽게 되었다. 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죽게 ‘내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패역했으므로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을 맞아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의 백성이 다 흩어져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할 수 없다.” (신32:26)

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벌하셨지만, 여전히 당신의 백성입니다.
이 모든 일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를 포함한
모든 나라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외치십니다.

“모든 나라들아,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 하여라.
주님께서 그 종들의 피를 흘린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고 
당신의 대적들에게 복수하신다.
당신의 땅과 백성이 지은 죄를 속하여 주신다.”

우리는 절대로 원수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패배시켰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신32:27)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여수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이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폐하여 졌다는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영원히 잃지 않으십니다.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의 언약은 그 분 스스로 성취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백성과 함께 
주님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회복의 구원사역에 대해
즐거워해야 합니다. (신 32:43)
 
이스라엘은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원수 한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 천 명을 물리치고,

둘이서 만 명을 도망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신32:30)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사사기의 지난 시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솔 군대의 사령관인 시스라와 블레셋 사람들과
모압 왕을 통해 그들을 치게 하셨다.” (삼상 12:9)

 
유다왕 요아스 때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하 24:24)

 

원수까지도 아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는 것에
하나님은 안타까워 하십니다. (신32:31)
 

 

“자기들이 왜 패배를 당하였는지를
깨달을 지혜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지,
깨닫기만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신32:29)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섬기던 그 신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너희의 피난처가 되게 하라.” (신 32:39)
 
하지만 그것들은 침묵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지금은 그 신들을 우리가 의지하는 무언가로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돈과 보험과 연금과 부동산, 여러 사상과 이념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것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 저울질 하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숨소리에 그 또한 거품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우리가 섬기던 우상들은
내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상은 헛된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인생의 짧은 면만을
골라 보고 조급해 하는 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물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살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말했듯이 이 이야기는 모세의 노래속에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밟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노래의 가사들을 실감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이 
여전히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사는 이들이
배부를 것을 아직 경험하지도 못한 이들이

과연 자신들이 배불러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노래는 자신을 위한 노래이기도 하지만,
자식들을 위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루어질 사건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며 

아프고 슬플 때에 이 노래를 기억하여
다시 하나님의 긍휼과 인애를 붙들 희망이기도 합니다.
 

문화 상품권 세 장으로 나는 집을 살 수도 없고

떵떵거리며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책 세 권정도를 살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일용할 양식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누군가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신 분이
내일도 나를 먹이실 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나는 매일 손에 잡히는 우상에게 무릎 꿇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마음을 나누시길
원하십니다.
 
 

“오늘 나와 함께 살자, 
오늘 나와 함께 걷자.

오늘처럼 내일을 걸으면 될거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내 자녀야, 내게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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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3

하나님 이것일까요?
아니면 저것일까요?
여러 선택속에
기도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지만
이미 내가 선택한 것을
마음에 결정해두고
기도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하나님께는 통보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노래하는 풍경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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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풍경 #522

내가 지은 죄는
누구와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만일 소돔에서의 죄를 비교하게 되면
심각한 죄악도 그 시대의 당연한 문화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모두들 괜찮다.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죄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면
나는 은혜받은 자가 됩니다.
수치감을 가지는 대신,
예수님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존귀한 자가 됩니다.
 
<노래하는 풍경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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