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풍경 #462

내가 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을때
얼마나 아팠는지 아니?
내가 얼마나 가슴을 찢으며 눈물을 흘렸는지 아니?

그러나 나는 또한 기뻤단다.
왜냐하면
내가 그 핏값으로 너희를 얻었기 때문이란다.
내가 그 핏값으로 너희의 그 기쁨을 샀기 때문이란다.

너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야.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존재인지.

나는 기억한단다.
너를 만들 때 내가 너를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었는지.

스스로 쌓아두었던 벽들을
무너뜨리고 내게로 나오렴.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길을
어떠한 것도 막을 수 없다고 선포하렴.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라와 주기만 하면 돼.

그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를 바라봐 주며 나와주길 바라.
그렇게 우리 함께 갈 수 있겠니?
그렇게 우리 함께 하자.

<노래하는 풍경 #462>

노래하는 풍경 #461

산 같은 문제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풀어내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문제를 일렬로 줄 세우면 내 앞에 있는
단 하나의 문제만 있을 뿐입니다.

만일 내 능력을 벗어난 문제조차도
주님보다 크다 여기지 않겠습니다.

주님보다 큰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 만드신 것들 중에
주님 외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무한의 시간 위에 모든 문제를 올려놓습니다.
주님만이 영원합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사40:15)

<노래하는 풍경 #461>

노래하는 풍경 #460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전쟁이 있습니다.
많은 주님의 군사들 중에
저는 가장 작은
물맷돌 들고 가는 소년과 같습니다.

연약한 우리의 육체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함으로 인해
크신 주님을 의지하게 도와주세요.

날마다
주님 안에서 훈련받고 있습니다.
두려움 앞에 무너지지 않는 훈련
우리 자신에 집중하지 않는 훈련.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

<노래하는 풍경 #460>

노래하는 풍경 #459

주님의 군사로 부르셨다면
작은 물맷돌 하나 들고 나갑니다.

골리앗 앞에서
커다란 검도 아니고
방패도 아니고
대단한 갑옷도 아니지만
작은 물맷돌 하나 들고 나아갑니다.

아주 작은 물맷돌처럼
주님 주신 말씀과 지혜들이
내 심령 가운데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커다란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담대함으로 물맷돌을 던질 수 있게,
그 물맷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를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노래하는 풍경 #459>

 

노래하는 풍경 #458

초라하고, 부끄럽고
때론 쑥스러워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막내 같습니다.

하지만 내 감정에,
내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에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 일을 맡기신 주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거기에 집중하겠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458>

노래하는 풍경 #457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까?’
‘하나님은 왜 나를
한계 가득한 존재로 만드셨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내 삶의 한계앞에 절망했던 사람입니다.
어느 작은 예배당에 앉아서
날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런 나를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해 보세요.”

그런데 십 여년이 지나
이 기도를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한계앞에 서있을 때,
기다림의 시간 앞에 아파할 때에도
여전히 주님은 당신의 뜻을 가지고
쉬지 않고 일하셨음을
이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간속에도
나는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한계너머에 주님은 여전히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노래하는 풍경 #457>

노래하는 풍경 #456

고난과 고난이 이어질 수록
나는 더욱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되지만
보통의 나날이 지속되면
나는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존자로써 살아가게 됩니다.
자존자로 살아가는 시간이 오래되면
나는 굳어지고 딱딱해져 갑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이상하지요?

알면서도 그렇게 굳어져 갑니다.
하지만 나를 흔드실 때마다
다시 바짝 땅에 엎드리게 됩니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믿음의 주님을 붙들고
그 분의 뜻과 계획을 구하고 또 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문제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내게 주는 평안은 큽니다.
주님으로 인해 나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노래하는 풍경 #456>

 
 
 
 

노래하는 풍경 #455

오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
오늘 당신의 기쁘신 뜻이 무엇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걸음마다
그것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이루신다는 것을 전제한 말입니다.

아버지는 오늘도 우리를 통해
하실 당신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 말씀 앞에 서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서 당신에 기대어 살겠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455>

노래하는 풍경 #454

나는 도무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베란다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
학교 다닐 적에는 답안에 장난도 쳐보고
하루는 재미있었지만
그 재미가 며칠을 가지 않습니다.

허기진 세상에서
재미를 쫓거나
허무를 느끼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채울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또한 하루 이틀이 아니라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라면,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만족할 수 있겠다고 믿어 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 구걸하는 사람은
나의 모습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으로도, 은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주님이 채우셨습니다.
언젠가 촬영 때문에 미국에 있을 적에
주님이 내 마음에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솔로몬에게 물으신 것처럼
“너의 소원이 무엇이니?”

나는 그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주님이 보고 싶습니다.”
내 소원은 정말 그것이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주님을 보는 날에
우리는 그 기쁨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노래하는 풍경 #454>

 
 
 
 

노래하는 풍경 #453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편이고,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가진 마음의 방향을 살피려 합니다.
마음의 방향을 알게 되면
곧 그들이 걸어가게 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난 한 사람은
좋은 땅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공간과 비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거친 아스팔트 틈 사이로
맨드라미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이라면
땅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열매를 맺으려면
씨를 뿌려야 하며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건강한 싹을 띄우기 위해서는
좋은 땅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하는데
누군가는 다른 이를 위해
끊임없이 땅을 갈려 합니다.

<노래하는 풍경 #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