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135

여러 선한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애썼지만
그 어떤 행동으로도
나는 내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다.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피조성을 잊게 만들고,
인간을 속여 스스로 피조물의 신분을 떠나
자기를 하나님과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공격하게 만드는 악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선한행동,
그것조차도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로 알아야 하며,
주님께로 생겨난 동기에 기인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5]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4

부활절 성만찬,
떡과 잔을 보며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각했다.
‘하나님, 저는 이렇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아내와 아이는 나를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의 속사람을 열어 보였을 때
내 안에 부패하고, 더러움, 음란과 거짓을 만났을 때
그들은 나를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이런 내가 주님께 나아갑니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 나의 모습을 주님께 보였을 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 살과 피를 받아먹으렴.
내가 그래서 왔단다.
내가 그래서 너를 더욱 사랑한단다. (눅7:42)
내 생명으로 너를 살린단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는 이제 내 살과 피, 내 생명으로 살린단다.
왜냐하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내가 너를 온전하게 살릴 거야.
“나사로야 나오라.”고 내가 외쳤을 때
썩어서 냄새나던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가 살아나온 것을 기억하지?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너는 살게 된단다.

당시 유대인들은 나를 유월절에 죽이지 말 것을 정했단다.
왜냐하면 그 날에 죽이면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웠던 거지. (마26:5)
하지만 나는 그날 죽어야만 했단다.
왜냐하면 내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어야만 했기 때문이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제물인 짐승을 가져다가 그 머리에 안수를 한단다.
짐승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동이지, 이것은 짐승이 그 사람을 대신한다는 말이야.
곧,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는 행동이야.

출애굽 사건. 그 밤에 유월절 어린 양을 기억하니?
이스라엘을 구원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기억하니?
나는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처럼, 네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단다.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는 것이란다. (요10:18)
너를 살리기 위해서란다.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요6:5)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4]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3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조카 웜우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성도)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하루 24시간의 합법적인 소유자로서
매일의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라구. ”

이 지혜로운 악마가 말하는 것처럼
종국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단의 것이거나, 하나님의 것,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될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3]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2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24:49)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이 성에 머물라.”
이렇게 알기 쉽게 말씀하시면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라는 시기는 없다.

지금부터 열 흘 뒤에 내가 약속한 성령이 임할 것이다.
또는 적어도 몇 월 며칠까지는 이 성에 머물러라.
이렇게 말씀하실 수는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리신다.
아애 그 한계를 버리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값 주고 사신 내겐 그 시간마저도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2]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는 모양으로
내 삶이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랐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며 (민9:1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그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민9:18)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다. (민9:19)

이후 계속되는 절에서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는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않다가 떠오르면 행진했다. (민 9:22)

지금의 급박한 지식 정보 시대에 과연 이 말씀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낭비처럼 들릴까?
내 안에 계신 주님,
날마다 말씀해주세요.
인도해주세요.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1]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0

변질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된다.
에스겔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놀라는 것은 독자일 뿐, 당사자들은 너무나 느긋하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에스겔이 보는 환상과 예언은 먼 훗날에나 이루어질 것이다.” (겔 12:22)

구약 선지자였던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패망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30년 뒤에 이루어 졌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지 벌써 170여년이 흘렀다.

언젠가는 이런 일들이 생기겠지만, 결코 자신의 시대에
하나님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언은 앞으로 5년 뒤에 성취되었다.
더디 이루어 지는 심판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가?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 그 사랑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심판의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했다.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 -겔14:6
회개는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회개가 쉽다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힘들다.
회개는 자신의 삶 가운데 마음을 돌이키고,
실제의 삶을 돌이켜 하나님의 법 위에 서는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30]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9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주면
그를 믿겠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할까?

이스라엘의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곧 그 신현을 경험했다.
애굽에서 이미 그 땅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보았고,
홍해의 마른 땅을 건넜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경험했다.
그리고 매일의 양식, 곧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먹을 양식까지 얻었다.
말그대로 하나님이 먹이시고 기르시는 것을 경험한 백성이지만
성경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면 그들은 물 때문에 불평한다.

“그 불평한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출 17:7)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했지만 그들은 이렇게 질문하고 불평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9]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8

죄악 중의 괴수라고 자신을 마주 대한 바울에게는
더 이상 환란이나 기근이나 핍박이 문제 되지 않았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사형선고(고후1:9)까지도
그의 기쁨과 감사에는 관계하지 못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8]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7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저 고상한 지식과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마주 대하기 싫은 나의 실체를 만났을 때야
광대한 우주 속의 작은 씨앗 같은 하나님의 은혜 한 줄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얻게 된 지혜 중 하나가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 가리워져 있을 때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하다.)

사도바울에게서 비늘이 벗겨진 것처럼,
날마다 나를 가리운 허물들이 벗겨지기를 소원한다.
“에바다(_열려라)” 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소원을 따라서..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7]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6

나는 대단할 것 없다.
특별할 것 하나 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마음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 하시기에,
별반 다를 게 없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엡3:17)
내 안에 늘 그리스도가 거하시지만,
이 전에도 그리스도는 나와 함께 거하셨지만,
지금 이 시간 믿음으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초대하는 것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은 특별한 일상으로의 초대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