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풍경 #442

기도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을 때
기다리라는 말과
주님의 뜻과 계획, 시간을
신뢰하라는 말을 제외하고,

나는 질문했다.
과연 주님은 내 기도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
물론 주님이 내 아버지되시기에
심정적으로 동의되지는 않지만
한편에서는 내 기도에 침묵해도
과연 주님께 책임을 물수 있을 것인가?

그러다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 기도가 말씀위에 기초해 있다면
주님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인가?
말씀이 주님의 약속을 전제한다면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기도 뿐 아니라 내 인생이
말씀 위에 기초한다면
나는 날마다 주님의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노래하는 풍경 #442>

 

노래하는 풍경 #441

주님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워말라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말이
오늘 살아갈 인생에
얼마나 기쁨이 되는 말인가요?

<노래하는 풍경 #441>

노래하는 풍경 #440

마음에도 길이 있습니다.
길을 생각하지 않고
또 길을 만들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을 따라 가게 마련입니다.
또 하나의 길이 생기는 격입니다.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길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나는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노래하는 풍경 #440>

 
 
 
 

노래하는 풍경 #439

영적 상상력
그마저 동원할 수 없어서
사방이 칠흑같이 어둡다면

그때 나는 기억력을 동원해야 한다.
지금 내 삶에는 출구가 없지만
출구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는가?

앞은 막다른 곳, 뒤는 애굽의 추격
그때 주님은 어떻게 일하셨는가?

<노래하는 풍경 #439>

노래하는 풍경 #438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영적 상상력.

그 상상력이 부재하면
나는 눈 앞에 있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래하는 풍경 #438>

 

노래하는 풍경 #437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
자주 이렇게 말하지만
연약하기에 죄를 짓는 것일가?
연약하지 않아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강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

주님이 나를 건져 주셨고
나를 살게 하셨다.
이제 제법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내 뜻대로 살아보겠다.

주님의 주권에 맞서
나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선악과든 무엇이든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나는 살아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내 안에 있다.
그것이 두렵다.

<노래하는 풍경 #437>

노래하는 풍경 #436

밤하늘 사이로
은하수를 보았습니다.
함께 있는 이에게
은하수를 말해주었더니
밤하늘을 향해 플래시를
비추는 바람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불을 비추어야
보이는 것이 있고
어둠이 짙어져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밝고 화려한 불빛 때문에
도리어 보이지 않는 그 분과
들리지 않는 음성이 있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436>

 

노래하는 풍경 #435

주님,
마음이 참 아픕니다.
주님의 아픔 또한 생각합니다.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많은 어리석음과 실수 위에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헛되고 헛된 이 땅에서
헛된 것에 마음을 둔 것을 회개합니다.
나 또한 동일한 죄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는데
나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나요?

<노래하는 풍경 #435>

노래하는 풍경 #434

많은 일을 한다고
자랑할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주님이 가라고 하신 그곳에 서있게 해주시고
하라고 하신 그 일을 하게 해주시고
만나라고 하신 사람을 만나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주님이 이루시길 원하시는 뜻 가운데
그 점 하나가 되게 해주세요.

<노래하는 풍경 #434>

노래하는 풍경 #433

나는 이 찬양을
마음으로, 입술로 항상 부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얼마나 잘 그려낸 찬양인가요..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 손을 오늘도 꼭 잡고 가주세요.

<노래하는 풍경 #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