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66

사단이 준 생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에 자리 잡게 하지 마라.
굳어지고 또 굳어지면
가룟 유다처럼 되지 않을 자신 없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6]

내가 노래하는 풍경 #65

우선 성공한 후에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식의
마음만 먹으면, 때가 된다면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흘러가는 물길을 생각처럼 쉽게 바꿀 수 없다.
대부분 흐르는 데로 살아간다.
물길을 바꾸려면 오늘의 작은 생각과 행동에서 부터다.
주님의 마음을 살피고, 거기에 대한 아주 작은 순종.
그것이 나의 미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5]

내가 노래하는 풍경 #64

사단을 대적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
흑암의 세력을 도발하는 행동은 나를 적대하는 세력을 키울 뿐인가?
그것은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밟지 않으면
잠자는 사자는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내 의도처럼 사단은 정전(停戰)협상을 받아 들일 것인가?
하지만 사단은 잠자는 사자와 같지 않다.
사단은 먹이를 움키려고 애쓰는 굶주린 사자와 같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사단은 이미 나의 대적이다.
진짜 전쟁은 어느 느와르 영화에서처럼
총부리를 서로 향한 채 비둘기가 날아 다니는
슬로우 비디오를 연출할 만큼 감상적이지 않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을 묶을 때
그는 예수님의 이름 아래 굴복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은 왕의 이름이며
그의 한 방울의 피는 사단을 굴복시키고도 남는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4]

내가 노래하는 풍경 #63

다윗은 왕이었지만
나단의 지적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왕권을 위한다면
사울처럼 범죄 한 그 순간에도 사무엘이 자신을 선대하고 있다는 모양을
백성들에게 보이려 한 것처럼
다윗도 품위를 유지했어야 옳지 않은가?
그는 중대한 길목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옳은 결정을 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의 오늘을 살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3]

내가 노래하는 풍경 #62

스마트폰,
너무 유용하지만,
한편으로 시간을 죽이기 가장 적합한 도구다.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는 도구다.
내게 빈 시간은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었지만
온갖 뉴스와 정보와 볼거리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시간은 효율성을 쫓아 밀려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
이 땅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대화가 비효율적인가?
거룩한 낭비를 찾고 지켜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2]

내가 노래하는 풍경 #61

시대가 악한 만큼
쉽게 그리고 서서히, 진하게 얼룩진다.
내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시대의 사자는 나를 노리고 있다.
내 눈을 가리운 수건을 벗어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3)
전신 갑주는 특히 악한 날에 더욱 필요하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1]

내가 노래하는 풍경 #60

몰라도 되는 것은 끝까지 몰라도 된다.
시대에 뒤쳐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주파수가 많으면 집중하기 힘들다.
내가 알아야 하는 한 가지.
주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0]

노래하는 풍경 #59

타클라마칸 사막을
스무 시간 넘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세 시간 남았다는 안내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남은 세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기까지 했습니다.
떠날 준비를 하느라
벌써 옷들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세 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인데 말입니다.

시간은 상대적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인내를 다른 말로 바꾸면 스테미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넉넉함까지도…

[노래하는 풍경 #59]

 

#타클라마칸사막 #스무시간기차여행
#세시간도아쉬움 #시간은상대적
#무엇이넉넉한가 #기준을어디에둘것인가

내가 노래하는 풍경 #58

보혈이 나를 덮을 때
우리가 진정 정결케 됨을 믿는가?
주님 흘리신 보혈의 공로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보혈의 공로로 정결케 됨을, 의인이 되었음을 믿는 것보다
우리의 지난 죄악중 하나를 끄집어 내서
눈물 흘리며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나아가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는 너무 쉬운 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전자가 더 어렵다.
그것은 진정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혈의 공로를 너무 우습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정도로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죄인이 아닌가?
진정 우리는 죄인이다.
하지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 처럼 (요1:12)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니 피가 죄를 속한다는 (레17:11)
언약 가운데
우리의 죄를 죄 없으신 주님이 피를 흘려 속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독생자를 보내어
죄없는 당신의 피를 흘리신거다.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 말한다.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들중에
살인한자, 그것도 연쇄 살인한 자가 있을 수 있고,
간음한 자,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흉악범죄인들..
혹은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죄를 범한 많은 사람들이
진중에 있었겠지만
그들은 유월절에 모두 구원받았다.
자신의 행위가 아닌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값으로 말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한 행동이나 자격과 상관없이
그 이름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자가 구원을 얻는 것이다.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주님, 흘리신 보혈의 무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가볍지가 않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3)

[내가 노래하는 풍경 #58]

내가 노래하는 풍경 #57

많이 아파하던 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게 이런 감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의 깊이와 넓이를 잘 이해하게 해주세요.
더 많은 감정을, 내가 이해하고 경험한 후
같은 경험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주세요.

내가 아파본 후,
아픈 이에게 위로하면
그들은 아프지만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경험들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가진 아픔까지도.”

질척이며 서러운 마음과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찬란하게 기쁜 날에도.

[노래하는 풍경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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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마음 #그것조차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