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는 풍경 #13

123

끝이 있다.

이 말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가요?
나를 절망하게 만드는 어떤 것도
나를 완전한 절망으로 내몰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와 절망은 결국 분명한?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믿는 믿음이 문제를 더 오래 품게 만들 뿐입니다.

끝은 아니다.

이 말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그는 어쩌면 가룟유다처럼
자살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의 마지막을 경험한 베드로는
더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한 베드로는
믿음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걷게 만듭니다.
내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노래하는 풍경 #13]

#끝이있습니다

#문제는끝이있고

#절망은끝이있습니다

#끝은아닙니다

#끝은또다른시작입니다

#문제는영원하지않으며

#주님은영원합니다

내가 노래하는풍경 #12

122

사람들은 큰 것,
큰 명분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질적이고도
가장 작은 것들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쓰러질 때
아주 작은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어 방치하다 보면,
감히 손댈 수 없을 정도의
문제가 되고 맙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선택은
오늘 돌보지 않는
작고 소중한 것들 돌보는 것입니다.

하루가 가기 전에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보면?어떨까요?

[노래하는 풍경 #12]

#크고대단한명분대신
#익숙하고작은인사
#하루가가기전에
#따뜻한전화한통

내가 노래하는 풍경 #11

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기다리고 기다려서?낳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내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22:2)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났습니다.
그리고 모리아 땅이 가까웠을 때는
종들과도 헤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순종과 결단앞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아내와 종들의
설득과 방해를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아내인 사라는
말도 안되는 여정을 원천에 가로막았을 인물이었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위에 올려놓고
칼로 아들을 잡으려 할 때는
종들이 그의 주인에게 달려들어 막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못 이기는 척
칼을 내려놓았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만족시키고,
내 욕심도 만족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제 변명의 여지마저도 없애버립니다.
주님에 대한 이해와 신뢰..

[노래하는 풍경 #11]

#하나님도만족시키고
#내욕심도만족시킬수있는
#수많은가능성을
#원천에차단시킨다는것
#외롭고도결연하게
#주님에대한신뢰가아니면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

120

 

나는 나를 드리는 것이 두려웠다.

내 삶이 내 것이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겠지만 내 삶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이 얼마나 많은가.
현대의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빼앗기는 것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 속에 종속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 속에 살기에 그 한계를 깨닫지도 못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가 산 경험만으로 하나님을 해석하려 들지 말라.
사긴과 시간, 그 영원 너머까지도 주님께 속해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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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9

119

 

실패했을 때 낙심하지 않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흥왕했을 때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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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8

118

기적을 보면 믿음이 생기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걱정하지 않는가?
기적을 보거나, 경험하는 것과 믿는 것은 차이가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자연적 기적을 경험했다.
심지어 일용할 양식도 하나님께 그저 얻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신앙은 여전했고, 불평은 더해갔다.

집회를 통해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지만,
어떤 기적이나 은사만을 구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감각적인 현상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제한하는 것이다.

은사가 있지만 마음에 평강이 없는 사람도 많다.
주님조차 통제 못하는 고집 센 사람도 많다.

모든 행사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그 은혜가 드러난다.
은사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력한 은혜를 구하라.
그것은 사랑이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8]

노래하는 풍경 #7

117

 

낙후된 외국을 나가보면?
비로소 이른 밤을 알게 됩니다.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머무르던지,?
숙소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로는?
집으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덮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삶을 알게 됩니다.
거칠고 노곤한 육체는?
밤을 통해 쉼을 얻습니다.

단순하다는 말이 거칠고 험하거나
피곤하다는 말의 언저리에 있는 말은 아닙니다.
단순하다는 말은?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을 털어내고,
주님과 만나는 접촉면의 불순물을?
정돈한다는 의미와 가깝습니다.

한국으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풍요로움이 나를 안습니다.
온갖 단순하지 않는 요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선교지에서 만난 이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불편한 잠자리와 이동 수단,?
느린 인터넷 속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상점들..
도대체 거기가 더 좋을게 뭐란 말인가요?
더 좋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주님과의 친밀함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풍요로움이?
오히려 내 눈을 멀게 할까?
내 마음을 조심스레 살펴봅니다.?

[노래하는 풍경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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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래하는 풍경 #6

116

 

나를 닮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전체 중 극히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외식(外飾)자이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내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만일 모두가 나를 부정(否定)해도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이 긍정(肯定)한다면
나는 다행스러운 길을 걷고 있다.

[내가 노래하는 풍경 #6]

내가 노래하는 풍경 #5

115

결혼 후 나의 첫 변화는 쉼이었다.
지독한 일 중독자였던 때문에
내가 쉴 수 있는 명분, 혹은?주님의 말씀이 필요했다.

안식은 주님의 명령이다.

그것은 쉼이 재생산을 위한 휴식이라는
실용적인 관점을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은 영혼의 날인 동시에 육체의 날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헤셸은 <안식>에서
성경에서 ‘거룩함’이란 뜻을 지난 ‘카도쉬’라는 단어를 가지고
안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 최초의 거룩한 대상은
창세기에서 창조 이야기가 끝나는 대목에서 처음 발견된다.
바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혜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공간이 없는 시간을 소유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없는 공간은 소유할 수 없다.
사람은 공간을 넘어서지만, 시간은 사람을 넘어선다.
시간이 창조의 과정이라면, 공간의 사물들은 창조의 결과물 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진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안식일을 지켜야겠구나.’

율법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주님의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시간 속의 거룩함을 생각하다 보면
마치 이 하루의 전체가 빛으로 둘러싸인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된다.

직선운동으로의 우선순위로써 주님과의 만남 이후,
별개의 나머지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운동으로 주님은 모든 일의 중심에 서로 이어져 맞닿아 계신다.
마치 모빌에서 많은?이음새들이 그 중심축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노래하는 풍경 #5]

내가 노래하는 풍경 #4

114

다윗은 헤브론 왕을 거쳐 이스라엘 왕이 된다.
여부스족의 난공불락 예루살렘 요새까지 정복했다.
모든 일을 정리하고 난 후,
그가 한 일은 법궤를 옮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웃사가 죽게 되었고
그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옳은가?
하나님이 내게 기름 부으셨지만
사울 왕처럼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삼으신 일을 후회하고 계신 걸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 또한?한순간이다.
하지만 웃사가 죽고, 법궤를 머물게 한
오벧에돔의 집은 복을 받게 되는?것을 보게 된다. (삼하 6:11)

문제는 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
지난 잘못에 대해 회개하고
주님의 법도를 따르면 된다.
다윗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법궤를 옮기는 방식을 버렸다.
그것은 실용적이고,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방식을 따라
다시 법궤를 옮겼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대상15:13)

그는 다시 주님 안에 기뻐 춤추었다.
미갈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했다. (삼하6:21)

[내가 노래하는 풍경?#4]